▲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기 위해 해외팀서 경험을 쌓을 계획이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삼성 이재용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외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는 이미 경영권 승계에 필요한 지분 확보를 마친 상태다.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를 보유, 당장 ‘삼성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삼성에버랜드’로 짜인 순환출자구조 장악이 가능하다. 삼성특검 1심 재판에서 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혐의 관련 무죄 판결이 나와 이 전무 마음의 무게도 덜어줬을 법하다.
이건희 전 회장이 물러나고 사장단협의회를 중심으로 한 계열사별 책임경영체제가 시작되면서 총수직 승계작업은 ‘올 스톱’된 상태다. 재계에선 이 전무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승계를 위한 명분 쌓기에 주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 쇄신안이 발표되던 지난 4월 22일 이학수 당시 전략기획실장은 “이 전무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경영권 승계가 이뤄질 경우 불행한 일이 될 것”이라 밝힌 바 있다. 현재 이 전무가 그룹 3대 총수직에 오르는 데 지분구조상 걸림돌은 없지만 경영자로서의 자질을 인정받는 데 주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전무의 역량 강화 무대는 삼성전자가 될 전망이다. 이 전무는 추석 연휴 이후 삼성특검 재판이 끝나는 대로 중국을 시작으로 삼성전자의 해외 전략지역을 돌며 다양한 경영 경험을 쌓을 예정이다. 재계 일각에선 이 전무의 근무지가 중국이 된 배경에 2008 베이징올림픽 개최와 현지 삼성 홍보관 개관 등의 특수를 감안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삼성전자 내에서도 소폭의 조직 개편과 인사가 있을 것으로 알려져 이재용 전무의 활동 반경과 회사 내 입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끈다. 이 전무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배인 이인용 전무가 삼성전자 홍보팀을 이끌고 있는 만큼 이 전무의 추석 이후 활약상을 삼성전자에서 어떻게 잘 선보이려 할지도 주목된다.
△현대·기아차 정의선
이재용 전무와 달리 현대·기아차그룹의 ‘황태자’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승계를 위해 당장 핵심 계열사 지분 확보가 절실하다. 이를 전망하려면 물류 계열사 글로비스 주가를 살펴야 한다. 정몽구 회장 외아들 정의선 사장이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려면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현대차’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 중 한 곳을 장악해야 한다. 그런데 정 사장이 가진 건 기아차 지분 1.99%뿐이다. 정 사장이 보유한 현대차 주식 총수는 6445주로 지분율은 0.01%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 사장은 그룹의 물량 지원 속에 무럭무럭 커가는 글로비스 지분 31.88%(1195만 4460주)를 지닌 최대주주다. 핵심 계열사들 중 주가가 가장 낮은 기아차 지분(9월 3일 현재 1만 3700원)을 추가 확보하기 위해 글로비스 주식을 팔 가능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돼온 시나리오다.
글로비스 주가는 9월 4일 현재 6만 4500원. 지난 7월 한때 6만 원 이하로 떨어진 적도 있지만 최근 6만~7만 원대를 꾸준히 오가고 있다. 미국발 금융쇼크와 유가 악재 속에 국내 주식시장이 된서리 맞은 것을 감안하면 ‘선방’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글로비스가 ‘정 사장의 기아차 지분 확보용 실탄창구’라는 인식 속에 그룹 차원의 글로비스 키우기 작업이 계속될 것이란 기대감 때문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정 사장 보유 글로비스 지분 평가액은 7700억 원가량이다. 이는 기아차 지분 16%를 사들일 수 있는 금액이다(세전 기준). 정 회장에겐 아들 정 사장에게 증여할 기아차 지분도 없다. 정 사장이 안정적으로 그룹 경영권을 승계하기 위해 기아차 지분을 20% 이상 보유하려면 글로비스 주가를 조금 더 끌어 올려야 할 듯하다.
△LG 구광모
LG그룹 승계구도와 관련해선 구본무 회장 양자의 구광모 씨의 ㈜LG 지분 추가 확보작업이 최대 관심사다. 그룹의 공식 언급은 없었지만 재계에선 구광모 씨가 LG의 4대째 장자 경영권 승계를 이어갈 것으로 보는 데 이견이 없다. 최근 1년 사이 구광모 씨의 ㈜LG 지분율이 크게 늘어남과 동시에 몇몇 방계 인사들의 지분율이 크게 하락했고 일부는 대주주 명부에서 아예 이름을 지우기도 했다. 이는 자연스레 구광모 씨에 대한 지분 몰아주기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관측으로 이어졌다.
▲ 정의선 기아차 사장은 기아차 지분 확보를 위해 글로비스 지분을 활용할 전망이다. | ||
구광모 씨가 보유한 LG이노텍 지분은 0.35%(4만 2000주)에 불과하다. 평가액은 현재 20억 원 수준. 아직 그룹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지 않고 있는 구광모 씨는 한 해 60억 원 정도 되는 주식 배당금 외에 별도의 큰 수입원이 없어 보인다. LG그룹이 구광모 씨의 ㈜LG 지분 늘리기를 위해 LG이노텍 주가를 단시간 내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려 할지, 아니면 주머니 두둑한 집안 어른들이 나서줄지 관심이 쏠린다.
△롯데 신동빈
롯데그룹은 이미 일본 롯데는 신격호 회장 장남인 신동주 부사장이 맡고 차남 신동빈 부회장이 한국 롯데를 맡는 것으로 승계구도의 큰 틀을 갖춰놓은 상태다. 그런데 이와 관련, 일각에선 신 부회장의 누나 신영자 부사장의 향후 거취를 거론하기도 한다. 신 부사장은 롯데쇼핑 경영에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해오며 신 부회장의 비교대상에 곧잘 오르곤 했다.
재계에선 유수의 재벌들이 후계구도 확립 과정에서 ‘황태자’와 마찰을 빚을 수 있는 형제를 분가시킨 전례에 빗대어 롯데 총수일가를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신영자 부사장과 더불어 신 회장이 서미경 씨 사이에서 얻은 딸인 신유미 씨가 각각 롯데후레쉬델리카 지분율을 9.31%로 끌어올리면서 이 회사를 축으로 한 ‘딸들 분가설’이 힘을 얻기도 했다.
지난 6월 16일 롯데후레쉬델리카는 공시를 통해 좌상봉 호텔롯데 대표이사와 김병홍 푸드스타 대표이사가 등기임원에서 빠지고 이재혁 전 롯데리아 대표이사와 김기석 롯데브랑제리 감사가 그 자리를 메우게 됐음을 알렸다. 좌상봉 대표는 신동빈 부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신 부회장 측근이 등기임원 명부에서 빠진 것은 신 회장 두 딸들 영향력이 확대된 롯데후레쉬델리카가 그룹 울타리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높인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분가와 관련, 롯데 측의 공식 언급도 없었을 뿐더러 지분구조상 분가 작업도 수월치 않아 보인다. 롯데후레쉬델리카 지분구조에서 신영자 부사장과 신유미 씨의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 81.38%는 호텔롯데 등 롯데 핵심 계열사들 몫으로 돼 있다. 이 회사의 대부분 매출은 롯데 계열사들과의 거래에서 발생한다는 점도 독립 행보를 녹록치 않게 만들 대목이다.
△금호아시아나 vs 한진
물류업계 라이벌 금호아시아나와 한진은 추석을 앞두고 대조적인 승계 행보를 통해 관심을 끌었다. 장손의 입지에 대한 상반된 잣대 적용이랄까.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선 총수일가 3세인 박재영-박철완-박세창-박준경 형제가 지난 7월 지주사 격인 금호산업 지분율을 늘렸다. 그런데 양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장손인 박재영 씨는 1만 8500주를 늘린 반면 나머지 3형제는 각각 두 배가 넘는 4만 1630주를 늘려 대조를 이룬 것. 장손인 고 박성용 회장의 아들 박재영 씨의 금호산업 지분율은 3.04%(보통주 기준). 미국에서 영화 공부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박재영 씨의 경영참여 가능성이 희박해 보이는 가운데 총수일가의 지분 공동분배 원칙에서도 점점 제외되고 있다. 고 박정구 회장의 아들 박철완 아시아나항공 전략경영팀 차장의 지분율은 6.11%로 장손의 두 배가 넘는다. 박삼구(그룹 회장)-박세창(그룹 전략경영본무 상무) 부자가 보유한 지분도 6.11%이고 박찬구(화학부문 회장)-박준경(금호타이어 회계팀 차장) 부자 몫 또한 6.11%다. 일각에선 박재영 씨가 지분 공동분배 구도에서 배제되는 대신 선친이 그토록 아꼈던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을 물려받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진은 ‘장손 기 살리기’에 한창인 것으로 보인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상무가 지난 8월 인사를 통해 자재부 총괄팀장에서 여객사업본부 부본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객사업본부는 대한항공의 매출비중 50%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부서다. 이는 조 상무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조원태 상무는 임원 승진 속도에서 자신을 앞질러온 누나 조현아 상무와 경영자질 측면에서 곧잘 비교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아들의 위상 강화가 진행되자 조 회장 딸들에 대한 재계의 관심사는 분가 시점으로 옮겨졌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