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상장사 수사가 전 정권에 대한 보복성으로 비쳐지는 가운데 정치적 배경설을 희석시키기 위한 수사까지 병행된다는 의구심이 일자 증권가에선 증시에 미칠 악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 ||
검찰은 지난 6월 LG가 방계 3세인 구본호 씨를 시작으로 박용오 전 두산그룹 회장의 차남 박중원 씨, 현대가 3세 정일선 형제, 한국도자기 창업주의 손자 김영집 씨 등 재벌가 자제들에 대해 전 방위로 주가조작 혐의 수사를 벌여왔다. 이 와중에 이명박 대통령의 셋째사위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도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한데 재벌가와 기업들에 대한 수사의 칼날은 어느 틈엔가 슬슬 전 정권과 관련한 업체들을 향해 옮겨가고 있다.
문제는 정치권에서 ‘보복수사’라는 말이 나오면서 지금까지 해온 검찰의 수사가 ‘물타기’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비판을 접한 검찰이 정치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수사 대상을 확대할 경우 가뜩이나 위축된 기업과 증시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주식시장에서는 재벌가 자제 주가조작 수사를 벌이던 검찰이 최근 한국석유공사와 에너지 개발업체들의 비리 쪽으로 수사 초점을 옮기면서 전 정권과 관련된 업체들이 공포에 떨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인도네시아 유전 공동개발에 나서고 있는 케이씨오에너지는 지난 8월 28일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케이씨오에너지가 러시아 유전개발 사업을 고의로 부풀렸는지, 이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또는 주가조작 등을 벌였는지에 대한 수사의 일환이었다.
케이씨오에너지는 지난 2005년 철도공사의 러시아 유전개발과 관련, 정부 및 여권 실세 등이 개입했다는 의혹 때문에 특검을 했던 ‘오일 게이트’ 사건의 핵심인 전대월 씨가 대표로 있는 회사다. 당시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등의 혐의로 수감생활을 했던 전 씨는 지난해 5월 자동차부품업체인 명성을 인수한 뒤 회사 이름을 케이씨오에너지로 바꾸고 자원개발 사업을 벌여왔다. 이로 인해 당시 300원대이던 주가는 3000원대까지 치솟았지만 검찰 수사가 벌어지면서 현재는 500원대로 내려앉았다.
이라크 쿠르드 자치정부와 유전개발 및 생산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자원개발 사업을 진행해오던 유아이에너지도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유아이에너지와 계열사가 해외유전 개발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정황이 포착됐다며 검찰은 각종 사업 관련 서류 및 회계장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압수해갔다. 이 업체의 대표는 김대중 정부 당시 각종 이권에 개입해 물의를 빚었던 ‘최규선 게이트’의 장본인 최규선 씨다. 최 씨는 현재 이라크 유전개발 입찰을 위해 컨소시엄 구성 과정에서 회사 돈을 빼돌려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고 사업성을 부풀려 주가를 조작한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다. 이에 지난 8월 4000∼5000원대를 오가던 유아이에너지 주가는 9월 들어 1000원대 중반으로 하락했다.
에너지 전문기업 케너텍도 검찰의 수사선상에 올랐다. 강원랜드로부터 열병합발전시설 공사를 수주하면서 관계자들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다. 또 강원랜드가 공사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수십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 케너텍이 지원했는지 여부도 수사 대상이다. 지난 8월 1만 3000원대까지 올랐던 케너텍의 주가는 9월에는 7000원선으로 떨어지며 반 토막이 난 상태다. 강원랜드의 주가도 8월 2만 4000원선에서 9월 1만 4000원선으로 1만 원 이상 빠졌다.
애경그룹은 지난 4일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해 애경백화점 경영전략팀과 재무팀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서류를 압수당했다. 지난해 5월 애경백화점 주차장 부지에 주상복합상가를 분양하면서 직접 분양시 4000억 원대의 수익을 얻을 수 있음에도 시행사인 나이스에비뉴를 통해 890억 원의 수익만 거뒀던 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위장계열사를 차려놓고 수익 일부분을 비자금화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애경백화점 측은 “나이스에비뉴는 애경그룹과 전혀 관련 없는 분양업체로 비자금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기업들에 대한 수사에 대해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가조작에 대한 수사로 시작된 검찰 수사가 어느 틈엔가 전 정권과 관련된 업체들로 확대되고, 또 이를 희석시키기 위한 수사까지 진행되고 있다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며 “전 정권과 관련된 업체들을 무차별적으로 수사한다고 하면 정부공사 입찰을 받았던 기업들 중 살아남을 업체가 몇 개나 되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재벌가 자제들 수사는 이런 약점을 가리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 사위도 수사했다는 핑계를 대는 것에 불과하다.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검찰이 이런 비난을 가라앉히기 위해 기업들에 대한 수사를 확대해 가뜩이나 어려운 기업들의 숨통을 죄지나 않을까 걱정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런 걱정에도 검찰의 수사는 더욱 확대되고 있어 기업들은 숨죽이고 다음 희생양이 누가 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호남이나 부산 연고로 지난 정권에서 성장한 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호남권을 배경으로 성장한 프라임그룹은 지난 2일 본사와 계열사 7곳이 압수수색을 당했고 백종헌 프라임그룹 회장은 출국금지됐다. 프라임그룹 계열사인 프라임엔터의 주가는 3000원대에서 검찰 수사의 여파로 하한가까지 추락하며 1000원대로 주저앉았다. 지난 2006년 부당대출 의혹과 관련, 검·경의 잇단 수사를 받고 무혐의 처리됐던 부산자원은 지난 3일부터 이틀간 다시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2004∼2007년 폐기물 매립장 조성 자금 마련과정에서 산업은행과 교직원공제회, 사학연금 등으로부터 각각 650억, 550억, 400억 원을 불법으로 대출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또 토지공사로부터 시가 250억 원 상당의 폐기물 매립지 토지를 낙찰 받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는지도 수사대상이다.
이렇게 ‘검풍’의 위력이 점점 강해지자 재계와 증권가 분위기는 뒤숭숭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정치권과 언론에서 검찰의 수사가 정치적 배경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데 주목하고 있다”며 “검찰이 이를 무마하기 위해 수사 초점을 다른 여러 기업을 옮길 가능성이 커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주가조작 세력이나 각종 비리를 저지른 경영인들이 이번 수사로 근절된다면 좋은 일이 되겠지만, 만약 검찰 수사가 정치보복과 물타기를 위해 이뤄진다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증시가 가뜩이나 얼어붙은 상황에서 계속 저인망식 수사를 벌일 경우 살아날 기미를 보이는 증시에 물을 끼얹고 애꿎은 기업들에게 불똥을 튀기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