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편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어려운 업종이 바로 사채업(대부업)이 아닐까 한다. 쉽고 잘 되는 업종이라면 누구나 들어와서 성공을 했을 것이나 명동 주변에서도 짧은 시간에 새로 생기고 없어지는 사무실이 부지기수다. 정확한 시장 규모를 파악하기 힘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은행에서 명예퇴직을 한 A 씨는 옛 명문 실업고를 나온 학력으로 주변에 선후배가 금융기관에 많이 포진해 있다. A 씨는 자신의 경력과 인맥을 배경으로 명동에서 자그마한 어음중개 사무실을 개설했다. 처음에는 저축은행 여러 곳과 계약을 맺고 메이저급 명동 사무실과도 협력관계를 터놓고 어음할인중개업을 시작했다.
사무실은 처음부터 생각보다 활발하게 움직였다. 나중에는 직원도 서너 명을 거느릴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사업이 행복하게 잘 되는 것도 1년뿐이었다. 자신이 중개했던 중견건설사의 어음이 부도처리되고 만 것. 7억 원이라는 거액을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됐다. 만일 자신이 책임지지 않는다면 그 다음 일은 불을 보듯이 뻔했다. A 씨는 결국 자신이 1년간 벌었던 돈은 물론이고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를 제외한 평생 직장생활로 모은 돈을 다 쏟아 부어야 했다.
그렇게 데였음에도 그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고 판단한 A 씨는 당시에 선풍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던 상품권 소매업에 나섰다. 우선 직원들은 다 정리하고 아내와 같이 사무실을 끌고 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도 3개월. 상품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면서 사무실을 유지할 수 없었다. 결국 A 씨는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지금은 남의 사무실에 직원으로 들어가 부동산담보대출을 소개하는 하급직원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런 A 씨가 필자에게 해준 말이 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명동은 아니지만 B 씨의 사례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B 씨는 직장을 그만둔 후 갖가지 업종의 일을 다 해보았다고 한다. 24시간 편의점, 분식점 등등 불과 4~5년 사이에 10여 개의 업종을 해보았지만 벌이도 신통치 않고 대출금 갚는 것도 수월찮았다. 그러던 중 서울의 도매시장에서 장사를 하는 한 친척이 시장에서 일수놀이라는 것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그는 실제로 한 달여를 친척의 가게로 출근하면서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나름대로’ 면밀히 살펴보았다. 신협 새마을금고 같은 서민금융기관도 매일 카트를 몰고 와서 직원들이 파출수납을 해주고 있었으며 사채업자들도 여러 명 눈에 들어왔다. 그중에서 친척이 거래하는 업자와 친하게 되었고 시장에서 하는 사채업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 업자는 “시장에서 상인들은 서로의 사정을 잘 안다. 그러니 상인 몇 명만 내 편이 되어 준다면 장사하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았다.
이런 말들에 힘입어서 B 씨는 도매시장에서 사채업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시장 인근에 조그만 사무실도 얻고 친척의 도움도 받고 해서 상인들을 상대로 소액의 대출을 하기 시작했다. 자금도 모으기 시작했다. 전 직장의 동료, 동창 등 주변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설명하면서 투자를 권유했다. 돈벌이가 된다는 솔깃한 말에 사람들이 투자금을 선뜻 내놓았다.
그러나 과욕은 화를 부르는 법. 처음에 잘 되는 듯했지만 주변에 대형할인점이 생기면서 도매시장 상인들이 부도가 나거나 야반도주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다. B 씨의 채무자들 중 일부도 점점 부실화되더니 급기야는 B 씨가 부도나는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B 씨는 다른 사람들에게 감언이설과 높은 이자를 약속하고 무조건 자금을 끌어왔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 결국 B 씨는 야반도주를 감행하게 된다. 성난 채권자들이 경찰에 고소를 해 B 씨는 사기죄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B 씨는 시장의 내막도 잘 모르면서 덤벼들었다가 망한 대표적인 케이스다. 나중에 알고 보니 B 씨의 친척은 자신이 돈이 필요하니까 B 씨를 꼬드긴 것이고 B 씨한테 소개해준 업자에게도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얘기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더니 가까운 친척에게 당한 꼴이 됐다.
물론 A, B 씨처럼 사금융 시장에 들어온 사람들이 늘 실패만 하는 것은 아니다. C 씨는 성공한 업자 중의 한 사람이다. 15년 가까이 이 업종을 해서 거의 100억 원이 넘는 재산을 모았으니 말이다. 그러나 C 씨의 고백을 들어보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고 마음고생이 심한지 하나도 부럽지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고급 외제차를 타고 강남의 고급 빌라에 잘 차려 놓고 살지만 늘 마음이 불안하다고 한다. 업종에서의 치열한 경쟁과 자금회수에 대한 압박감에 잠을 제대로 못 이룬 밤이 부지기수다. 언제 이 재산이 다 없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이 항상 머릿속을 헤집는다고 한다. 사정기관도 무섭고 세무서도 무섭단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직원들이 한 자영업자에게 법을 무시하고 신용으로 고리의 대출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자도 잘 안 내고 해서 채권추심 직원들이 그 자영업자한테 가서 다소간 위협적인 행동과 말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채무자는 유력 정치인의 아들이었다. 결국 C 씨는 이자는커녕 원금은 물론이고 이 사건을 무마하는 데 큰돈을 써야만 했다. 그런 C 씨가 필자에게 한 말이 걸작이다.
“사채업은 아무나 하나~, 어느 누가 쉽다고 했나♪”
한치호 ㈜중앙인터빌 상무 one1019@cho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