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병원 경제수석 | ||
불가항력적인 외부 변수에 의해 이 대통령 역시 어쩔 수 없다지만 날로 팍팍해지는 살림살이에 이 대통령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율은 30%선을 좀처럼 못 넘고 있다. 이에 청와대는 물론 한나라당과 정부가 모두 나서 최근 발생한 미국발 금융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눈앞에 닥친 위기로 인해 모처럼 당·정·청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청와대 경제팀은 손발이 모자라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9월 금융위기설’과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해 청와대에서 가장 바쁜 사람은 경제수석실 산하 김동연 경제금융비서관이다. 청와대 내 금융 관련 업무를 총괄하고 있는 김 비서관은 9월 위기설이 본격화된 지난 8월 말부터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보고 자료를 만드느라 전화 받을 시간도 없을 정도다. 실제로 지난 16일에도 김 비서관은 리먼브러더스의 파산보호신청에 따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서울 시내 호텔에서 긴급히 열린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에 참석, 정부 관계부처와 대책을 숙의했으며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황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일련의 금융 관련 이슈로 인해 고군분투하고 있는 김 비서관은 사실 청와대 입성 당시 ‘금융’이 아닌 ‘재정경제’를 담당했었다. 김 비서관은 경제정책과 재정분야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 그런데 경제정책 전문가가 금융정책 회의에 뛰어다니는 이런 일이 왜 발생했을까. 시계를 7개월 전으로 돌려 지난 2월 말 단행된 청와대 1기 비서진 인사를 보자. 당시 39명(추후 3명 발표)의 비서관을 발표하면서 경제수석실은 김중수 경제수석 아래 여섯 명의 비서진을 선임했다.
새 정부 출범 직후 재정경제비서관으로 명칭이 바뀐 재정경제1비서관에 김동연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기획관을, 금융비서관인 재정경제2비서관에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금융경제연구부장을 발탁했다. 지식경제비서관인 산업비서관에는 김동선 산업자원부 국장, 중소기업비서관에 송종호 중소기업청 창업벤처본부장, 농수산비서관은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국토해양비서관은 신혜경 전 중앙일보 전문기자가 선임됐다.
즉 1기 청와대 참모진에서 경제정책은 김동연 비서관이, 금융정책은 김준경 비서관이 각각 맡는 구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비서관의 이력을 보면 이 같은 청와대의 구상을 엿볼 수 있다.
김동연 비서관은 덕수상고와 국제대를 졸업, 행정고시(26회)에 합격해 옛 경제기획원 기획예산담당관실 사무관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사회재정과장, 재정협력과장 등을 거치며 기획예산통으로 이름을 날렸다. 반면 김준경 비서관은 정통 ‘KDI맨’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계산통계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석·박사를 마쳤다. 이후 미국 버지니아주립대 조교수, KDI 연구조정실장, KDI 부원장을 역임한 거시금융분야 전문가로 유명하다.
답은 간단하다. 국민과의 ‘소통’을 위해서였다. 촛불민심으로 국민과의 소통이 중요함을 깨달은 청와대는 홍보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수석비서관급인 홍보기획관을 신설하고 산하에 홍보1·2 비서관과 국민소통 비서관을 새로 두고 대통령직속 연설기록비서관 자리도 옮겨왔다. ‘작은 정부’를 외치며 성역처럼 지키려는 이명박 정부 입장에선 비서관 수를 늘릴 수 없었다. 야당과 국민들의 눈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이에 홍보기획관실 신설로 늘어난 비서관 세 자리를 다른 부분에서 줄여야 했다. 때문에 경제수석실에서는 재정경제와 금융을 합쳐 경제금융비서관으로 통합됐고 국정기획수석실의 국책과제 1·2비서관이 국책과제비서관으로, 교육과학문화수석실의 문화예술, 관광체육 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비서관으로 통합됐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명박 정부가 ‘작은 정부’라는 함정에 빠져 2기 청와대 참모진을 꾸리면서 정책 기능은 줄이고 정책을 보좌할 서비스 기능은 늘리는 우를 범했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기, 과거 정부처럼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면 비서관 두세 명을 늘리는 것에 대해 이처럼 눈치를 보며 편법을 쓰지 않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금융부분은 이번 9월 위기설, 미국발 금융위기와 상관없이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이명박 정부가 집중 육성하겠다고 공약한 분야 중 하나다. 그러한 이명박 정부가 금융비서관을 없애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한 것이다.
한 증권사 이코노미스트는 “금융이라는 산업은 평소에는 너무 조용해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보이지만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그야말로 생사를 걸고 덤벼들어야 하는 분야”라며 “촛불시위를 겪으면서 금융비서관 자리의 중요성을 잊은 듯한데, 이번 금융위기 사태로 판명됐듯이 금융비서관 자리는 항상 상황을 예의 주시해야 하는 ‘5분 대기조’인 셈”이라고 밝혔다.
어쨌거나 경제금융비서관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지게 됐다. 비록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했던 박병원 경제수석이 버티고 있지만 세부적인 경제정책은 물론 금융정책까지 모두 총괄해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전문가들이 ‘미국발 금융위기가 야구로 치면 3∼4회밖에 지나지 않은 상황’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것을 감안하면 김 비서관의 고군분투는 상당기간 계속될 듯하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courage@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