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몇 외국인들은 공매도를 통한 이득을 얻기 위해 괴담뿐 아니라 불법적인 방법도 공공연히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 ||
그런데 이 회사 주식이 9월 중순 들어 뛰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실적이 좋아진 것도 아닌데 코스피지수보다 10% 가까이 더 올라섰다. 주가가 널을 뛴 이유가 뭔지 살펴보던 A 씨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공매도’라는 주식 투자 방법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던 걸까.
공매도란 자신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을 남에게서 빌려 파는 것을 말한다. 주식시장에서 매수 주문이 많은데 실물 공급은 모자란 주식의 수를 늘려줘 유동성을 높여주는 순기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 증시에서 드러났듯이 시장이 불안할 경우 치명적인 독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공매도 거래의 90% 정도를 외국인이 사용하는 데서 드러났듯이 공매도로 이득을 보는 국내 투자자는 거의 없다. 이런 공매도 시장은 매년 확대되고 있다.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 액수는 2006년 6조 3624억 원에서 2007년 15조 8730억 원으로 두 배 이상 급증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9월 22일 현재 26조 9210억 원에 달한다.
지난 7월 이후 증시가 침체기를 보일 때 공매도가 많이 이뤄진 종목들을 살펴보면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로 인해 얼마나 큰 손해를 보게 됐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7월 이후 석 달 가까운 기간 동안 공매도 액수는 12조 2601억 원으로 올해 공매도 전체액수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공매도가 이뤄진 종목은 LG전자로 그 금액이 무려 1조 1876억 원이나 된다. 그 뒤를 이어 현대중공업(8497억 원), 포스코(6738억 원), 삼성전자(6679억 원), 국민은행(6215억 원), 하이닉스(4883억 원), 현대차(4542억 원)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줄줄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이들 기업들은 공매도로 인해 9월까지 주가가 하락을 면치 못했다. LG전자의 주가는 23.50%나 떨어졌고, 현대중공업은 29.25%, 포스코 12.59%, 삼성전자 20.44% 등 평균 20%대의 하락을 보였다. 이 정도 주가가 하락할 정도로 이들 기업이 취약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 기업들은 최근 불경기 속에서도 오히려 상당한 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LG전자는 올 3분기에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자그마치 334.85%나 높은 4018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두는 어닝서프라이즈(시장의 예상치를 훨씬 상회하는 실적)를 기록할 것으로 증권사들은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도 역시 지난해보다 22.48% 늘어난 5185억 원의 영업이익이 예상되고 있다. 포스코 역시 올해 3분기에 지난해보다 42.75%나 늘어난 무려 1조 5315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둘 전망이다.
이들 기업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수출기업들인 데다 최근 환율 상승 호재까지 겹쳐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하락장에서 많이 사 모은 블루칩들이다. 하지만 공매도 하나에 개인 투자자들은 주가 하락으로 울분을 터뜨렸고 외국인들은 샴페인을 터뜨렸다. 이처럼 건전한 국내 주식들의 주가를 한 번에 날려버리고 외국인 투자자들만 배를 불리는 것이 가능했던 가장 큰 요인은 증권가에서 빠지지 않는 괴담을 이용한 덕택이다.
실제로 지난 1일 증시 개장 직후 갑자기 증권가에는 LG전자의 8월 휴대전화 부문 영업이익률이 8%대로 떨어졌다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LG전자 휴대폰 부문 실적이 7월에 비해 8월에 떨어질 것이라는 시장 예측을 교묘히 이용해 ‘영업이익률 8%’라는 수치를 조작해 넣은 악성 루머였다. 현금성 자산을 1조 5000억 원이나 보유한 하이닉스도 지난달 갑자기 자금난에 봉착, 전환사채 발행규모를 늘렸다는 루머가 돌았다. 이도 9월 만기가 도래하는 전환사채 리볼빙(만기연장)을 위해 추가로 전환사채를 발행하려던 하이닉스 측의 행보를 교묘하게 이용한 공매도 세력의 음모로 관측됐다.
외국계 증권회사들도 공매도 세력을 돕는 괴담 생산에 일조했다는 의혹이 있다. 모건스탠리는 유동성 위기설을 겪은 두산건설에 대해 “하반기에 재정상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고 혹평했고, BNP파리바 메릴린치와 노무라증권 등은 밥캣 유상증자에 참여키로 한 두산인프라코어의 투자의견을 하향조정했다.
외국인들은 공매도를 통한 이득을 얻기 위해 이런 괴담뿐 아니라 불법적인 방법도 사용했다. 현재 우리나라 증시에서는 기관으로부터 주식을 빌려 파는 커버드 공매도(Covered short selling)만 허용하고 있다. 즉 공매도를 하기 전에 우선 주식을 빌려 놓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매도주문 당시 주식을 빌려 놓지 않고 매도가 체결된 이후 결제일 직전에 빌리는 네이키드 공매도(Naked short selling)를 사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처럼 괴담과 불법 등을 통해 외국인 투자자들이 배를 불리는 동안 정부는 외국의 눈치만 살피느라 아무런 대책도 강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최근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스위스, 캐나다, 호주, 네덜란드 등이 공매도 금지 조치를 단행한 뒤에서야 우리 정부는 지난 9월 24일 공매도 제도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앞서 A 씨처럼 이미 막대한 손해를 본 많은 개인투자자들은 정부의 뒤늦은 조치를 비난하고 있다. A 씨는 “주식을 깊이 공부하지 않은 일반인들이 공매도가 뭔지 알겠느냐. 거기다 우리 같은 개미들은 하지도 못하는 투자방식 때문에 결국 외국인만 배를 불리고 일반 투자자들만 피해를 보게 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