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주 전 사장 구속 사유는 배임수재다. 지난 2006년 11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중계기 납품업체 B 사 대표 전 아무개 씨로부터 ‘납품업체로 선정되도록 도와달라’는 청탁과 함께 수표 200장(10억 원어치)을 한꺼번에 받는 등 1년여 동안 모두 24억 원을 받은 혐의다.
조 전 사장은 지난 9월 22일 구속된 직후 KTF 사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났다. 자신이 몸담아온 조직에 끼칠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충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비리 혐의로 수사를 받았던 몇몇 대기업 고위 인사가 자리를 지키며 항전하려 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그러나 이는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수사당국이 확보한 정황이 예상보다 훨씬 더 견고했음을 조 전 사장이 직감했다는 관측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조 전 사장이 구속된 다음날인 9월 23일 검찰은 KTF 광주마케팅본부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KTF 본사와 지역본부가 신규 가입자를 유치할 때 대리점에 지원하는 돈을 과다계상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정황을 확보한 검찰이 즉각적인 행동에 나선 것이다.
이 압수수색에 대해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제보에 의한 것”이라 밝혔다. 검찰의 압수수색 과정이 마치 내부구조를 훤히 들여다보듯 치밀하고 신속하게 진행된 점으로 미뤄보아 조직 내부자의 구체적인 제보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KTF 내부 상황을 꿰뚫고 있는 인사의 믿을 만한 제보가 아니면 비자금 조성 방법 확인과 더불어 광주본부를 ‘찍어’ 수색을 실시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청사 주변에선 이번 수사의 범위가 우선 KTF를 넘어 KT에까지 미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KTF의 모기업인 KT는 KTF와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조직이다. 남중수 현 KT 사장은 KTF 사장을 거쳐 지난 2005년 8월 KT 사장에 오른 인물이다. 남 사장의 KTF 사장 재직 당시 부사장이었던 조 전 사장은 남 사장 후임 KT 사장 후보로 곧잘 거론돼 왔다. 최근 두 회사는 유·무선 시장에서의 경쟁력 제고 차원의 통합 작업을 벌여오기도 했다.
검찰은 아직 다른 KTF 관계자의 소환조사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통신업계 납품비리가 조 전 사장의 경우에만 국한돼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검찰도 조 전 사장 외에 KT-KTF 내 다른 고위층 인사의 비리 정황 확보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진다.
차기 KT 사장 후보로 거론됐던 조영주 전 사장은 KT-KTF 조직 내에서 신망이 두터웠던 인물이다. KTF 내에서 처음으로 내부 승진으로 사장에 올랐으며 지난 2002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과 일본 간 글로벌 화상통화를 세계최초로 성공시켜 ‘IT 코리아’의 위상을 드높였고 ‘SHOW’(쇼) 브랜드를 통해 3G(3세대 휴대전화) 분야에서 KTF가 SK텔레콤을 밀어내고 1위에 오르게끔 만들었다. 스스로를 CEO(최고경영자)가 아닌 CSO(고객 섬김 전문경영인)라 칭할 만큼 낮은 자세를 강조하고 임직원들 앞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색소폰 연주 등을 하며 직원들 기 살리기에 앞장선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렇듯 업계에서 입지전적인 인물로 각인돼온 조 전 사장은 하루아침에 파렴치한으로 전락해버렸다. 특히 조 전 사장이 납품업체에 ‘친인척 생활비까지 대라’고 했던 정황이 검찰에 의해 알려지면서 그가 구축해 놓은 ‘고객 섬김’ 이미지는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 상태다.
이렇다 보니 조 전 사장이 과연 KTF의 비리를 혼자 모두 끌어안고 갈 것인지에 관심이 쏠린다. 검찰은 조 전 사장이 받은 돈이 정치권에 흘러들어갔는지에 대해서도 본격 수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안팎에선 조 전 사장 조사 과정에서 KT-KTF 고위층과 일부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추궁이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조 전 사장과 고교 동문인 노무현 정권 실세 인사에 대한 이야기가 정·관계에서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는 것도 이런 까닭에서다. 정치권 일각에선 KT 고위층 인사와 돈독한 관계에 있는 여당 중진급 정치인이 KTF 수사가 KT로 확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퍼져 있기도 하다. 정·관·재계 인사들 사이에선 ‘조 전 사장의 협조 여부에 따라 그의 여죄가 불어날지, 아니면 다른 고위 인사를 향하면서 수사국면 전환을 이뤄낼지가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압수수색을 가능케 한 제보자가 남중수-조영주 라인을 필두로 한 KT-KTF 기득권층에 서운함을 가진 인사일 가능성에 주목하는 시선도 있다. 이는 정몽구 회장 구속 사태를 불렀던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비교되기도 한다. 수사의 발단이 정 회장의 ‘인사 칼날’을 맞은 내부 제보자였다는 이야기가 검찰청사 주변에 넓게 퍼졌던 까닭에서다. 당시 정 회장은 ‘비자금 용처를 끝내 밝히지 않고 구치소로 향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지난 정권 때 임명된 정부 산하 단체장들에 대한 사퇴 종용이 이뤄지면서 ‘민영화된 공기업’ KT에 대한 이야기도 곧잘 흘러나왔다. 정부 입김을 무시할 수 없는 KT 사업과 조직 성격상 노무현 정권 당시 사장직에 오른 남중수 사장에 대한 현 정부의 정서가 어떠한지에 대한 평가는 그동안 정보관계자들 사이에서 단골메뉴로 자리잡아왔다.
검찰 국정원 경찰 등 정보당국에서 수집해온 첩보들 중 KT-KTF 고위층과 노 정권 실세들과의 교류에 관한 내용도 제법 많았다고 한다. 이런 까닭에 검찰의 이번 조 전 사장 구속수사는 KTF는 물론 KT 고위층과 더불어 현 정부에 맞각을 들이대온 정치세력을 아우르는 대규모 사정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돌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선 벌써부터 수사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현 정부에 우호적 활동을 펼쳐온 인사가 KT 혹은 KTF의 고위직에 입성할지 모른다는 관측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다. KT-KTF 통합 작업도 ‘통합 뒤 발생할 구조조정 여파가 일자리 창출을 통한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려는 현 정부의 눈에 곱게 비치지 않았을 것’이란 이야기가 나오면서 불투명해지고 있다.
남중수 사장이 KT 사장직에 오른 이후 주주들의 평가가 우호적이고 현재까지 드러난 검찰의 수사범위도 조 전 사장의 KTF 사장 재임기간에 맞춰져 있어 조 전 사장 수사 여파가 KT에 미칠 것이라 단정 짓기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민영화된 지 6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정치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KT 주변에 자리 잡은 불안한 기운이 금세 사라질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한편 조영주 전 사장 수사의 불똥이 다른 대기업에 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KTF와 납품업체 간의 뇌물 관행 조사를 통해 수사당국이 이동통신사업에 참여 중인 국내 유수의 재벌들과 납품업체 간의 관계를 살필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는 셈이다. 조 전 사장이 마케팅 비용 부풀리기 의혹을 받는 터라 광고대행사들에 대한 조사 여부도 관심을 끌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