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에 찬성하는 주공노조의 광고(왼쪽)와 반대하는 토공노조의 광고. | ||
포문은 주공이 먼저 열었다. 주공노동조합(주공노조·위원장 정종화)은 지난 9월 9일 토공노동조합(토공노조·위원장 고봉환) 위원장을 비롯한 네 명을 수원지방검찰청 성남지청에 업무방해 명예훼손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김동규 주공노조 수석부위원장은 “같은 노조끼리 법정까지 가는 것은 원치 않았다. 하지만 토공노조가 사실을 왜곡해 주공을 깎아내리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라고 고소 이유를 밝혔다.
토공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틀 뒤인 11일 “우리는 거짓을 말한 적이 없다. 주공이 통합에 대한 반대 여론이 커지자 그 타개책으로 고소한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9월 25일에는 주공노조 위원장과 부위원장을 역시 성남지청에 고소했다. 정현웅 토공노조 정책실장은 “주공에서 먼저 고소를 했기 때문에 방어 차원에서 한 것이다. 오히려 주공에서 허위 사실을 홍보해 우리가 피해를 입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노조의 공방에 대해 양사 관계자는 “노조가 하는 일이라 관여하지는 않고 있지만 통합 문제는 노조와 뜻이 같기 때문에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처럼 양 노조가 한 치의 양보 없이 법정 다툼까지 벌이게 된 배경에는 주공과 토공이 10년을 넘게 벌여 온 통합 논의가 자리를 잡고 있다. 1993년부터 시작해 그동안 총 여섯 차례 통합을 위한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통합을 원하는 주공과 통합에 반대하는 토공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통합 추진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인수위원회 때부터 여러 관계자들이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논의에 불을 붙였고 국토해양부 등 관련 부서들은 통합 방안 보고서를 발표하거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를 열기도 했다. 정부는 지난 8월 발표한 공기업 선진화 방안에서 ‘주공과 토공을 통합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통합으로 가기 위한 길은 여전히 험난하기만 하다. 특히 토공은 정부가 통합하는 쪽으로 최종 결론을 내리자 직원들이 1인 반대 시위를 하는 등 통합의 부당함을 알리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또한 주공을 비판하는 각종 자료들을 언론 등에 배포하며 홍보에도 열을 올렸다. 당시 토공노조는 “통합의 대상이 되는 주공이 앞장서서 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여러 차례 실패했던 ‘통합’이 다시 불거지게 된 것은 주공의 허위 논리에 정부가 속은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공노조가 토공노조를 고소한 것은 이 때쯤이다. 토공노조가 신문 광고 등에 허위사실을 게재해 ‘주공 명예가 훼손됐다’고 판단한 것. 또한 통합 절차가 늦어져 ‘업무를 방해받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지난 2006년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만든 통합 관련 문서를 토공이 위조했다는 것도 추가했다.
이러한 주공 입장에 대해 토공노조는 “억울하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광고한 내용 중에서 허위 사실은 단 한 건도 없었다는 게 토공 측 주장이다. 정확한 사실을 국민들에게 알렸을 뿐이란 것. 정현웅 실장은 “사실을 왜곡하고 있는 것은 주공이다. 겉으로는 국민의 이익을 위하는 체하지만 자체적으로 생존이 어렵게 되자 이익을 지키기 위해 통합을 외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공노조는 공문서 위조와 관련해서도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일부 홍보물 중 잘못 기재된 것이 있었지만 바로 수정했다”고 해명했다. 업무방해 부분은 “우리도 통합에 신경 쓰느라 업무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정현웅 실장은 “주공으로부터 광고 중단과 관련해 어떠한 공식적인 요청도 받은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주공의 주장과 다른 내용. 김동규 부위원장은 “말도 안 된다. 문서로는 아니지만 토공 측과 만날 때마다 이의를 제기했다”라고 반박했다.
주공노조에서는 토공노조의 맞고소에 대해 ‘적반하장’이라며 강하게 성토하는 분위기다. 주공노조의 한 관계자는 “광고를 비교해보면 알겠지만 우리는 토공을 비난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저쪽에서 계속 먼저 걸고넘어지니까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토공노조는 “주공이 통합에 대한 허위 사실을 홍보함으로써 토공의 명예를 훼손했다”라고 응수했다.
토공노조에 따르면 지난 9월 중순경 토공은 감사원에 ‘주공의 허위사실을 바로잡아 달라’는 내용의 진정서를 올렸다고 한다. 그 결과 9월 30일 감사원은 토공과 주공의 감사실장을 불러 주공 측에 주의를 줬고 주공 감사실장도 이를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주공노조에서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라며 부인했다.
이처럼 토공노조가 통합을 반대하는 이유는 주공의 적자 폭이 토공보다 훨씬 커 합칠 경우 토공의 이익이 주공의 손실을 보전하는 데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공에서는 “주공은 공공성이 강해 적자가 많이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공기업을 수익만 보고 판단할 수는 없지 않느냐”라고 반문하고 있다.
이에 대해 토공노조는 “이런 상황에서 통합할 경우 둘 다 망한다. 아무리 공기업이라지만 적자가 커질 경우 혈세만 축내게 된다”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설령 양측이 통합에 합의를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바로 인력감축 등을 포함한 구조조정 문제. 현재 주공은 ‘선 통합 후 구조조정’을, 토공은 그 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양측의 이해득실이 다르기 때문인 듯하다. 토공에 비해 규모가 큰 주공으로서는 일단 통합에 성공하면 조직을 장악, 구조조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인 것으로 관측된다. 반면 토공은 많은 난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구조조정 카드를 내밀어 최대한 통합을 늦추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김동규 부위원장은 “토공이 구조조정을 먼저 하자고 하는 것은 결국 통합을 미루거나 하지 않겠다는 속셈”이라고 공격했다. 이에 대해 정현웅 실장은 “우리는 구조조정 문제를 꺼낸 적이 없다. 아직 국회통과가 남아 있는 만큼 통합 자체를 막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