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러더스 파산보호신청이라는 쓰나미가 가져온 물벼락은 국내 증권사 직원들에게 쏟아질 태세다.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세계 각지에 있던 리먼브러더스 각국 법인들은 이러 저리 쪼개져서 다른 나라 증권사에 팔려나가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 이 중 리먼브러더스 아시아법인은 지난 9월 22일 일본 최대 증권사인 노무라증권에 낙찰됐다. 노무라증권은 공격적인 입찰로 스탠더드차타드와 바클레이스 등 경쟁사를 따돌리고 인수에 성공했다.
문제는 노무라증권이 리먼브러더스가 보유하고 있는 아시아 금융 전문가들을 대거 영입하는 바람에 터졌다. 이미 노무라증권 내에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직원들이 있어 자리가 겹치는 일이 발생한 것이다. 노무라증권은 최근 직원들에게 자사 직원과 리먼브러더스 출신 직원 중 경쟁력이 강한 전문가만을 남기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노무라증권 한국 직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세계 4위 IB 출신 전문가와의 경쟁에서 이겨낼 만한 직원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에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런 걱정은 다른 증권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우선 노무라증권이 리먼브러더스 아시아법인을 인수했다고는 하지만 리먼브러더스 전 직원이 노무라증권에 남는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이들 가운데 우수 인력들은 최근 IB 진출을 위해 인재 영입에 목마른 국내 증권사들로 자리를 옮길 가능성이 크다. 증권가 ‘인력 도미노 경보’가 울리고 있는 것이다. 올 들어 해외 증권사 한국 법인에 근무하던 임원들이 잘나가던 것도 세계적인 IB를 꿈꾸는 국내 금융권의 러브콜 때문이었다는 점도 이런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준다.
비록 리먼브러더스 인수건으로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민유성 행장이 산업은행장에 임명된 것도 리먼브러더스 한국법인 대표였던 경력이 크게 작용했다. 삼성증권이 올해 영입했던 권경혁 전무는 메릴린치 글로벌 유동성 및 리스크관리그룹 최고운영자 출신이며, 투자금융을 맡은 박성우 전무는 모건스탠리에서 옮겨왔다. 미래에셋증권의 김종원 이사는 리먼코리아 세일즈부분 대표 출신이며, 한국투자증권의 권권우 부장은 도이체뱅크증권에서 영입된 케이스다.
두 번째는 리먼브러더스 아시아법인 직원 상당수가 노무라증권에 남는다면 이번에는 노무라증권 직원들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는 점이다. 최근 세계 금융위기 속에서 홀로 고고하게 순항하고 있는 일본 최대 증권사 출신 인재라는 점에서 이들도 국내 증권사에게는 상당한 매력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영입되면 국내 증권사 직원들이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고, 이들은 다시 다른 증권사 동료들의 자리를 노리게 되는 악순환 고리에 빠지게 되는 셈이다. 반면 증권사들은 우수한 인재를 손쉽게 영입할 수 있고, 자사 내 실력 없는 직원을 정리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지게 된 셈이다.
한 증권사 직원은 “요즘 증권사 직원들 사이에 리먼브러더스 파동으로 인한 인력 시장 혼란이 벌어질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지금은 파장이 수면 아래에 있어 잘 보이지 않지만 6개월쯤 뒤에는 증권사에 엄청난 후폭풍이 몰아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요즘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보고서는 ‘하락할 수 있지만 오를 수도 있다’든지, ‘오를 수도 있지만 하락할 수도 있다’든지 하는 식의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한 내용이 대부분이다.
모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최근 널뛰는 글로벌 증시로 인해 지수가 계속 전망을 벗어나면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다. 그는 “몇 년 전 주식시장이 침체에 빠져들었을 때 지수 전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선배와 동료들이 회사에서 해고당했던 기억 때문에 요즘 같은 장은 아주 죽을 맛”이라고 털어놨다.
여기에 회복기미를 보이던 주식시장이 리먼브러더스 파산보호신청 사태로 되살아난 금융위기에 발목을 잡힌 것도 증권사 직원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증권가에는 ‘그렇게 많은 돈을 받은 증권사 직원들 중 집을 가진 사람이 별로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월급과 성과급 대부분을 주식에 쏟아 부었다가 하락장에서 날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실제로 증권사 직원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상당액을 주식투자에 쏟고 있다. 하지만 증시 상승과 하락은 ‘신의 영역’. 최근 지속된 하락장에 깡통이 된 통장을 보고 한숨 쉬는 증권사 직원들이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이들 증권사의 수당 구조도 직원들의 어려움을 더한다. 대부분 증권사 직원의 수당 구조는 기본급보다 성과급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증시가 활황일 때는 통장에 들어오는 금액이 어마어마하다. 증시가 고공비행을 할 때면 증권사 직원 배우자들이 통장에 ‘0’자가 하나 더 찍혔다며 회사에 확인하는 일이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실제 지난해 증시가 활황일 당시 한화증권 강남지역 지점에 근무하는 영업직원은 무려 20억 원의 성과급을 받아갔다. 다른 증권사 영업직원들도 최고 4억∼5억 원에 이르는 성과급을 받았고 미래에셋증권 본사의 일부 대리급 직원은 연봉보다 많은 보너스를 챙기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처럼 증시가 불황에 빠져들고 투자자들의 발길이 끊기면 보너스를 챙기기는커녕 투자자들의 항의 전화에 시달려야 한다. 이러한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인지 증권업계의 한 현직 최고위 간부는 아들이 증권사에서 일하고자 했을 때 말린 일화로 유명하다.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라며 아들이 친하게 지내는 선배까지 동원해 말렸지만 아들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고 아들은 현재 모 증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다.
일부 증권사 직원들은 수당 감소와 투자자 항의뿐 아니라 우리사주로 받은 주식의 주가 하락이라는 설상가상의 상황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수수료 인하 경쟁과 증시침체, 수익성 악화로 증권사 주가는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어 이들의 한숨은 더 커지고 있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