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현 CJ 회장 | ||
이미 ‘CJ 사건’을 바라보는 여론의 관점은 ‘살해교사’에서 ‘비자금’으로 옮겨간 상태다. 지난 9월 30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이재현 회장 소유의 차명계좌 및 비자금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고 논평했다. CJ의 상속재산 주장이 사실이라 해도 차명관리와 양도소득세 포탈 등 과세탈루가 정당화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CJ가 해당 재산을 언제 얼마나 어떻게 증여받았는지에 대해서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만큼, 수사당국의 시선이 범 삼성가 장손(이병철 창업주 장남 이맹희 씨의 장남) 이재현 회장을 향할 수밖에 없다고 관측되는 것이다.
경찰은 현재 자금관리팀장을 지낸 이 아무개 씨가 관리한 이 회장의 개인자금 180억 원이 임직원 42명의 차명계좌로 운용된 사실을 확인하고 돈 흐름을 캐는 중이다. 계좌추적이 마무리되고 CJ 임직원들이 소환되는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여부에 수사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경찰은 이 씨가 인천지역 온천개발사업 관련 부동산 구입 과정에서 씨앤아이레저산업 대표이사였던 정 아무개 씨 도장을 임의로 사용, 105억 원 은행대출을 받은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그런데 이 회사의 지분 100%가 이 회장 일가 소유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 회장이 42%, 아들(18)이 38%, 딸(23)이 20%를 보유하고 있다. 사실상 이 회장 개인회사의 자금 흐름에 이 회장이 얼마나 관여하고 있었는지에 대한 수사도 이뤄질 태세다.
경찰이 수사를 끝내고 사건을 검찰로 보내면 ‘재벌 게이트’로 더욱 확대될 가능성도 엿보인다. 지난 2003년부터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편법증여 의혹 수사를 진행해온 검찰은 전환사채 실권 과정에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 측과 신경전을 벌였던 이재현 회장과 CJ에 대한 조사도 꾸준히 해왔기 때문이다. 이건희 전 회장 일가의 편법증여 의혹 규명이 주목적이었지만 이 과정에서 이재현 회장 일가의 CJ 주요 계열사 지분증여 작업 등에 대한 상당한 자료를 구축해 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얼마 전 결혼한 이 회장의 맏딸 경후 씨는 지주사 CJ의 우선주 0.98%(5만 9500주)와 CJ제일제당 우선주 0.98%(2만 2015주)를 보유하고 있으며 CJ미디어 보통주 2.42%(45만 2968주)를 갖고 있다. 이 회장 장남은 CJ미디어 6.11%(114만 1965주)를 보유한 개인 최대주주다.
CJ는 지금껏 차명계좌 관련 상속세를 내지 않다가 지난 8월 세무서에 자진신고했다고 한다. 삼성특검 때 범삼성가로 유입된 이병철 선대회장 유산이 차명계좌·비자금으로 변질돼 있을 가능성이 주목받았었다. 때문에 삼성그룹 외 범삼성가에 있을지 모르는 차명계좌에 대한 조사 가능성이 거론돼 왔는데 이러한 기류가 CJ의 자진납세 배경 중 하나가 됐을 것으로 관측된다.
수사당국 주변에선 이번 CJ 사건 수사의 단초를 내부사정을 잘 아는 제보자가 제공했을 가능성을 눈여겨보기도 한다. CJ그룹 내 기밀사항이었을 차명계좌에 대한 수사가 신속하게 이뤄지는 등 내부 제보자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수사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앞선 현대차 비자금 사건과 삼성특검, 두 ‘재벌 게이트’를 떠올리게 하고 있다.
일각에선 이번 사건 여파가 이재현 회장으로 확대되면 차명계좌 논란으로 이미 홍역을 치른 이건희 전 회장의 항소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기도 한다. 가뜩이나 최근 사업 부진과 주가 하락으로 골머리 앓고 있는 이재현 회장을 덮칠 ‘검풍’의 세기가 어느 정도일지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