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에서 바라본 삼성 본관의 모습. 가운데 흰 건물. | ||
국감 자료에 따르면 공정위 조사를 앞둔 삼성 계열사들은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문제가 될 만한 자료에 대한 폐기·조작을 하는 동시에 공정위 조사관들의 자료 접근 차단을 위해 만전을 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5년 6월 삼성전자에 대해 실시한 ‘IT벤처분야 하도급 거래 실태 현장 확인 조사’ 당시 공정위 조사관은 제출받은 기업관리자료 내용에 의심을 품고 회사 보관 원본과의 상호 대조를 요구했다가 거부당했다. 이에 공정위 관계자들은 주요 사안 보고용으로 활용되는 사내 전산 통신망 열람을 요구했으나 삼성전자 직원은 회사 기밀 및 개인정보 보호 이유로 불응했다.
삼성 직원들의 제지를 뚫고 직원 컴퓨터를 들여다보게 된다 해도 조사가 녹록치 않았다. 지난 2004년 11월 ‘삼성전자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위반’ 관련 조사 당시 공정위 조사관이 직원 컴퓨터를 검색하던 중 사내 전산 통신망 가동이 갑작스레 중단된 일이 있었다. 이 통신망은 중앙통제가 가능한 터라 조사관이 컴퓨터 속 내용을 들여다보는 것을 원천봉쇄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도급 업체 관련 서류에 문제될 만한 사항을 삼성 직원이 수정액으로 지운 뒤 이를 복사해 공정위 조사관에 제시한 것이 나중에 발각된 일도 있었다. 이 일로 삼성전자와 관련 직원에게 각각 2000만 원씩 과태료가 부과됐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입수한 중요 서류를 탈취해 파기한 일도 있었다. 지난 2005년 4월 공정위의 ‘삼성토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조사 당시 삼성토탈 사옥 안에서 벌어진 일은 ‘럭비 경기’를 떠올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공정위 조사관들이 현장조사를 통해 확보한 증거자료를 12층 회의실에서 검토하던 중 삼성토탈 한 직원이 문제가 될 법한 문서 한 장을 공정위 조사관으로부터 낚아채 재빨리 다른 직원에게 건넨 것이다.
이 문서를 전달받은 삼성토탈 직원은 공정위 조사관들이 옷자락을 붙잡는데도 뿌리치고 회의실 밖으로 뛰쳐나가 복도에 서 있던 다른 직원에게 넘겨줬다. 자료를 건네받은 삼성 직원이 비상구를 향해 뛰어나가는 것을 본 공정위 조사관들이 그를 쫓으려 했으나 다른 삼성 직원들이 온몸으로 막아섰다. 결국 도주한 직원은 공정위 조사관들이 옴짝달싹 못하는 사이 7~8m쯤 뛰어가 자료를 다른 동료에게 건넸다.
최종적으로 전달받은 삼성토탈 직원은 해당 자료를 모두 찢어버렸다. 허탈해진 조사관들은 찢어진 문서라도 달라고 수차례 독촉을 했지만 삼성토탈 직원들은 불응했다. 공정위 조사관이 빼앗긴 자료가 삼성토탈 직원 4명과의 몸싸움 끝에 파기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0초에 불과했다. 결국 조사방해 행위에 참여한 직원 중 한 명은 과태료 5000만 원을, 나머지 세 사람은 각각 4500만 원씩을 부과 받았다.
삼성 직원들의 공정위 조사에 대한 조직적 방해 행위는 철저한 사전준비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공정위 측은 말한다. 이는 2004년 11월 공정위 조사를 앞두고 삼성전자가 내부 통신망을 통해 직원들에게 배포한 ‘공정위 조사 대비 요령 지침’을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대외비’ 문구가 명기된 이 지침서는 크게 사전 준비사항과 조사관 도착, 조사단계, 조사장 및 상황실 관련, 이렇게 네 항목으로 나뉘어있다.
‘사전 준비사항’에 따르면 직원들은 공정위 조사 이전에 조직도와 전화번호부, 부서별 업무분장표를 모두 삭제해야 한다. 전 직원의 컴퓨터를 점검해 문서파일을 정리하고 ‘휴지통 비우기’도 확실히 해야 한다. 공정위 조사관들의 직원 컴퓨터 조사를 통한 자료 확보를 최대한 어렵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 보관 중인 전 문서 또한 일일이 검사한 후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은 반드시 폐기하도록 하고 있다.
‘조사관 도착’ 항목엔 “내가 공정위 조사관”이라고 밝혔다고 해서 절대 사업장 내 출입을 허용해서는 안 되며 무조건 해당조사 관련 공문을 꼼꼼히 확인한 뒤 입장을 유도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아울러 조사관 도착 즉시 경비실에서 1차로 연락을 취해야 할 부장·과장급 직원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명기돼 있다.
‘조사단계’에 이르면 조사관이 수검기간 동안 사내에서 이동할 경우 일 대 일로 붙어 관리를 해야 하며 자신이 맡은 분야 이외의 것은 절대 답해선 안 된다고 지침서는 당부한다. 공정위 조사관들과 면담한 직원들은 즉시 면담일지를 작성해야 하고 면담자들 간 정보를 공유해야 하며 매일 수검 종료 후 수검일지를 만들어 상황실로 송부하게끔 돼 있다. 마지막으로 ‘조사실 상황 관련’ 항목엔 공정위 조사 대응 수검 상황실을 운영하면서 공정위가 면담자로 지정한 직원은 출퇴근시 반드시 상황실을 거치도록 하고 있다.
공정위는 삼성 직원들이 조사에 앞서 정해진 지침에 따라 실제상황을 가정한 모의훈련을 가졌던 사실로 파악하고 있다. 조직적인 방해행위는 결국 철저한 사전준비를 통해 가능했던 셈이라고 공정위 관계자는 덧붙였다.
직원 교육용 ‘조사 대비 요령 지침’
△ 사전준비사항
조직도와 전화번호부, 업무분장표 삭제, 컴퓨터 문서 파일 정리ㆍ휴지통 비우기
△ 조사관 도착
조사관 사업장 내 출입 막고 공문 확인 후 입장 유도… 부장ㆍ과장급 직원에게 연락
△ 조사단계
수검기간 동안 조사관과 함께 활동하며 면담일지 작성… 수검일지 상황실에 송부
△ 조사실 상황 관련
수검상황실 운영하며 공정위가 정한 면담 직원은 출퇴근시 상황실 거쳐야…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