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농협이 대우조선 인수전에 뛰어들면서 농민단체부터 농민을 위한 사업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은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 | ||
그동안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농협은 그다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이제껏 각종 M&A에서 재무적 투자자로 빈번하게 이름이 오르내렸던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었다. 이는 재계의 시선이 ‘큰손’ 국민연금공단(국민연금)에 쏠려 있었을 뿐 아니라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농협도 적지 않은 손해를 입어 신규투자를 망설일 것이라는 분석 때문이었다.
여기에 새로운 회장 취임 후 조직 정비에 역점을 둔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는 전임 회장의 그림자를 벗겨내고 최원병 회장 시대를 열어나가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데 공을 들였다. 따라서 자칫 반발을 살 수도 있는 무리한 투자는 하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최 회장의 친정체제 구축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이상 농협이 올해 M&A 시장 최대 매물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을 그냥 지켜만 보기는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1조 원 이상을 투자할 계획이었던 국민연금이 갑작스럽게 참여를 철회하면서 농협의 몸값은 치솟았다.
기업들 입장에서도 국민연금이 빠진 상황에서 막대한 현금 동원력을 보유한 농협이 매력적인 재무적 투자자임에 틀림없다. 이 때문에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한화 GS 포스코가 농협을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고 한다. 결국 일찍부터 농협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한화가 역전을 노린 GS와 포스코를 제치고 승리를 따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기업들이 농협과 손을 잡으려고 했던 것은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일단 투자 조건이 국민연금이 내세웠던 것보다는 훨씬 좋았다고 한다. 무리한 조건과 고압적인 태도로 인해 인수 참여 기업들로부터 ‘국민 돈으로 너무 심하다’는 원성을 샀던 국민연금에 비해 농협이 제시한 것은 보통 M&A에서 이뤄지는 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농협의 상징성도 무시 못 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민연금이 M&A 참여를 포기한 이유 중 하나는 ‘공정성 시비’가 불거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다. 정부의 입김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국민연금의 선택에 따라 대우조선해양의 M&A 판도 자체도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 농협 유치에 성공한 한화그룹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빠질 것을 대비해 다양한 시나리오를 마련해 왔는데 차선책은 농협을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돈도 돈이지만 농협이 다른 곳과 제휴를 맺을 경우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라고 털어놨다.
농협의 대우조선해양 M&A 참여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그동안 농협은 신용사업 비중이 지나치게 커 ‘농민을 위한 경제사업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최원병 회장도 이를 개혁할 것이라고 취임 당시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바뀐 것은 없고 여전히 돈이 되는 금융 부문에만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 많은 농민단체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또다시 수천억 원에 달하는 돈을 M&A에 사용한다고 하니 농민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농협은 올해 상반기에 투자 실패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 자료에서 농협이 해외파생상품 투자로 올 들어 8월까지 1181억 원의 손실을 입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당기순이익이 큰 폭으로 줄었다고 밝혔다. 강 의원에 따르면 손실금액은 하반기에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농협은 직원들에게 특별성과급으로 총 614억 원을 지급했다. 농협 관계자는 “경제 위기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손실이다. 성과급은 노사 합의에 따라 지난해 결정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막대한 손실에도 불구하고 직원들이 ‘돈 잔치’를 벌인 것은 농협의 도덕적 해이가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관계자는 “농민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석고대죄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M&A에 거액을 투자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농협 내부에서도 대우조선해양 인수 참여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농협의 한 내부 인사는 “결국 참여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긴 했지만 반대의견이 만만치 않아 합의를 이루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 지역 조합장들 사이에서 비난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M&A에 불참하자는 목소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의사결정을 해 나가는 과정이었던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주문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