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공조 이후 상승했던 증시가 실물경제 위축 우려로 급락하는 등 주가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증시 비관론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 ||
정치권에서는 코스피지수가 800포인트 선까지 후퇴할 것이라는 이야기마저 돌고 있다. 한 야당 인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대통령이라는 이미지에 매달려 너무 허겁지겁 일을 처리하느라 일이 악화되는 느낌이다. 증시가 무너진다는 이야기가 정치권에서는 널리 회자되고 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당시 위기론에 대해 귀를 막고 지냈던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비관적인 증시 전망 자체를 접할 기회마저 잃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얼마 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금융위기가 장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보고서들이 나왔었다. 김형렬 NH투자증권 연구원이 내놓은 ‘부동산 금융위기를 겪은 주요국 사례’가 그중 하나다. 김 연구원은 이 보고서를 통해 과거 부동산 하락으로 금융위기를 경험한 7개국의 부동산 및 주식시장 회복기간을 조사한 결과, 이들 국가들은 평균적으로 부동산 침체가 4년 정도 진행됐고 증시 회복에는 평균 16개월의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미국발 금융위기도 이와 같은 부동산 거품 붕괴, 즉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촉발됐다는 점에서 보면 증시 회복까지 아무리 빨라도 앞으로 1년 넘게 남았다는 이야기다.
부동산 폭락으로 인한 금융위기를 겪은 국가들은 이 기간 동안 부동산 가격은 28% 하락하고 증시는 33%가 떨어지는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기준으로 본다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하락폭이 많이 남아 있는 셈이다. 특히 가장 심한 부동산 침체를 겪었던 일본은 부동산 가격 하락이 8년이나 지속됐고 증시가 회복되는 데까지 51개월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와 핀란드, 멕시코의 경우에도 증시가 회복될 때까지 11개월이 걸렸다. 증시 하락은 이제 초입단계에 불과한 것이다.
김 연구원은 “금융시장 침체 원인이 주식시장에서 형성된 거품의 부작용이 아니라 부동산 침체에서 시작된 위험이기 때문에 경기흐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융시스템 불안이 부동산과 자산 가치를 떨어뜨리고 부실채권 문제가 금융기관 유동성 위기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빠져든다”며 “부동산 침체에서 시작된 금융 불안은 손쉽게 해소되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박 연구원은 이어 “부동산 가격 급락은 소비와 투자부문 모두를 크게 위축시키고 있다”며 “미국 민간소비증가율 하락이 본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어 경기회복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갖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실제 부동산 가격 급락은 소비와 투자 부문에 강한 타격을 준다. 주식이나 부동산 가격의 거품 붕괴가 실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 분석한 국제통화기금(IMF)의 보고서 ‘거품이 터질 때’는 이를 잘 보여준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증시거품이 붕괴된 국가들의 경우 당시 민간소비가 평균 57.4%에서 55.2%로, 5.2%포인트 하락에 그친 데 반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 국가들은 민간소비가 61.5%에서 36.5%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경제성장률도 증시 폭락 때는 4.0%에서 2.6%로 줄어든 데 비해 주택가격 폭락시는 3.4%에서 0.8%까지 추락, 성장이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다. 단순 증시폭락일 경우 피해와 회복이 빠르지만 주택가격 폭락으로 인한 경우는 그 피해가 소비와 투자 등 전 방위적으로 번져나가는 것이다.
박소현 한국투자증권 연구원도 장기간 증시 침체를 각오해야 한다며 ‘실망할 준비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최근 세계 각국이 내놓은 은행 국유화와 글로벌 공조, 무제한 달러공급 선언 등에 대해서는 박 연구원도 금융시장이 확실하게 화답하는 등 시스템은 살렸다고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단지 시스템을 살렸을 뿐이며 이는 한시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유럽과 미국 정부가 유동성 공급 대책을 줄줄이 내놓고 있지만 이는 또다른 충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구제금융액은 7000억 달러로 국내총생산(GDP)의 5%에 해당하고, 유럽 주요국들의 2조 5000억 달러의 구제금융액은 GDP의 24%에 달해 각국의 재정적인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박 연구원은 “다시 시작된 저금리, 무제한 찍어내게 될 달러는 증시에 결국 부메랑이 될 것”이라며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유동성 공급은 단기적으로 주가를 강하게 밀어올리기도 했지만 결국 약세장 반등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 원래의 지점으로 회귀하는 것이 통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중장기 추세를 결정하는 것은 금융이 아니라 실물인 만큼 이를 고려하면 반등에 대한 기대치는 낮춰 잡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실물부문 침체가 해결되려면 생각보다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이번에는 버블이라는 현상이 또 다시 발생한 케이스다. 과거 닛케이지수와 나스닥지수는 버블이 꺼진 후에도 장기간 침체를 면치 못했다”며 증시 침체가 장기화를 경고했다.
장화탁 동부증권 연구원 역시 최근 ‘01년과 08년 경기후퇴 국면 비교’라는 보고서를 통해 현재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후퇴가 IT버블 붕괴로 급락하던 2001년과 비슷하다고 경고한 바 있다. 2001년 IT버블 붕괴 당시 미국이 경기침체에 대비해 금리를 인하하자 모든 국가들이 금리인하에 동참했다. 최근 부동산 버블 붕괴로 각국이 경기침체에 대비해 금리를 인하한 것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전체 경기선행지수도 당시와 비슷한 정도로 하락했다. 장 연구원은 이러한 유사점 등을 들어 “금융위기는 여러 조치를 통해 안정되겠지만 경기후퇴 국면은 이제부터 본격화된다. 아직까지는 인플레이션(물가상승) 그림자가 남아있지만 진정한 고민은 향후 디플레이션(통화량 축소로 인한 경기침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동석 삼성증권 연구원이 내놓았던 ‘선진국 금융위기 대응’도 발표 당시 글로벌 주가 급등으로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G7(선진 7개국)과 G20(G7+신흥 13개국)의 금융위기 공동대처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신 연구원은 G7의 금융위기 대응책에 대해서는 진일보한 조치로 평가하면서도 정부 지원을 받은 은행에 자금이 몰려 다른 금융기관이 파산할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는 점과 부실한 ‘국유화 은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화량 증가로 인플레이션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반대로 은행 국유화를 선택하지 않은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자본 조달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런 문제점들은 이미 사실로 드러나 아시아 각국에 대한 투자 자금 유출이 멈추지 않고 있으며 기업들의 유동성 확보는 더디기만 하다. 박 연구원은 G20회담에 대해서는 선진국과 한국 간 스왑라인(달러화 교환 예치 한도액) 확대가 결정되지 않아 외화유동성 부족에 따른 원-달러 환율 급등락이 불가피하다며 실망이라고 평가했다. 역시 이 문제도 연일 롤러코스터를 타는 환율을 통해 현실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