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바닥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추락하고 있다. 세계 증시 중 어느 한 곳도 살아남은 곳이 없을 정도로 초토화된 상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국내외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이 -30%를 밑도는 것은 예사다. 상황은 이렇지만 모든 타깃은 미래에셋과 박현주 회장에게 쏠리고 있다. 업계 1위라는 점과 국내 펀드시장을 사실상 이끌어왔다는 점에서 ‘승자의 저주’에 빠진 셈이다.
그러나 박 회장이 투자 중심으로 삼아온 중국시장이 몰락했다는 점에서 단순히 ‘승자의 저주’로 돌리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중국 주식형 펀드의 연초 이후 수익률은 -55%로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 투자해온 인사이트 펀드의 수익률도 1년 만에 -50% 이하로 반토막이 났다.
최근에는 JP모건의 보고서 한 장에 ‘미래에셋 공포’라 불릴 정도의 상처를 입었다. JP모건은 지난 20일 미래에셋증권의 목표 주가를 무려 52%나 하향 조정했고, 이로 인해 당일 미래에셋증권 주가는 하한가인 6만 9700원까지 폭락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보유한 주식들마저 유탄을 맞았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이 3월 기준으로 5% 이상 보유한 주식 중 대표주인 동양제철화학과 대한해운, KCC 등은 5∼14% 정도씩 떨어졌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JP모건의 보고서는 시작에 불과할 수 있다. 다른 외국계 증권사도 곧 미래에셋증권 목표주가를 낮출 가능성이 있고, 이 경우 국내 증권사들도 미래에셋증권 목표주가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렇게 되면 미래에셋 자체에 대한 신뢰도 하락을 가져와 미래에셋 펀드에 대한 대규모 환매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박 회장에 대한 투자자와 시장의 신뢰뿐인데 최근 박 회장에 대한 신뢰가 예전만 같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라며 “잇단 악재에도 말을 아끼고 있는 박 회장의 행보가 오히려 미래에셋에 타격을 가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보탰다.
펀드 수익률 악화와 미래에셋에 대한 신뢰도 상실은 1년 6개월 동안 수탁고 1위 자리를 지켜오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을 권좌에서 밀어내는 결과도 가져왔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17일 기준으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전체 펀드 수탁고(순자산총액)는 37조 6468억 원으로, 10월 들어 7조 4691억 원이 감소했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에 밀려 2위에 머물던 삼성투신운용의 펀드 수탁고는 10월 들어 14조 7486억 원 늘어난 47조 216억 원을 기록, 1위에 올랐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주가 폭락으로 펀드 수탁고의 80%를 차지하는 주식형 펀드의 순자산이 줄어들면서 삼성투신에게 권좌를 빼앗기게 됐다.
이런 ‘숫자’보다 더 좋지 않은 것은 미래에셋과 박 회장을 바라보는 시장과 투자자의 눈이 싸늘해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상춘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의 실언은 설상가상이었다. 한 부소장은 16일 MBC <100분 토론>에서 손석희 성신여대 교수의 “펀드가 반토막난 투자자들은 어떻게 하면 되느냐”는 질문에 “작년 12월 초와 올해 1월 초 이런 위험에 대해 사전에 많이 경고를 했다”며 “그런 상태에서 지금까지 환매를 못한 것은 개인의 탐욕이나 기대심리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동안 장밋빛 미래를 펼쳐왔던 미래에셋 수뇌부가 손해를 모두 투자자에게 돌리는 듯한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상황이 악화되자 미래에셋은 다음날 바로 공식 해명자료를 내고 한 부소장을 직위해제했다. 강창희 연구소장은 당시 해명자료를 통해 “본의 아니게 한 개인의 의견이 저희 연구소의 공식 입장인 것처럼 비추게 됐다”며 “연구소 설립 취지와 맞지 않게 개인적 의견을 피력해 투자자 여러분의 심려를 끼친 한상춘 부소장을 직위해제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강 소장은 “한 부소장이 장기투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미래에셋의 입장과 달리 부적절한 표현을 써서 투자자 여러분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 드린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여기에 정치권도 미래에셋과 박 회장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설정액이 5조 원에 달할 정도로 많은 자금을 유치했던 인사이트펀드의 수익률이 반토막 날 때까지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특히 박 회장의 ‘몰빵’ 투자가 이런 대규모 손실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박 회장에 대한 정치권의 비난은 더욱 커지고 있다. 아예 국회 정무위 소속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미래에셋을 겨냥, “특정 국가에만 투자하는 것을 제한하는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 개정안을 정기국회 중에 입법 발의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래에셋 인사이트펀드의 국가별 투자 비중은 6월 말 기준으로 중국이 61%에 달하고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태평양지역(중국 일본 한국 인도 말레이시아 태국 싱가포르)이 87%에 이를 정도로 특정지역에 몰려있다. 비록 펀드시장 혼란을 우려해 막판에 빠지기는 했지만 국정감사 증인에 박 회장 등 미래에셋증권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경영진을 넣으려는 시도가 있었을 정도로 정치권의 칼끝이 예사롭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도 박 회장은 시장과 관련한 어떠한 코멘트도 하고 있지 않아 투자자들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미래에셋그룹 관계자는 “투자자들의 불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국내외 펀드 등의 운용은 최현만 부회장과 구재상 사장이 맡아하고 있고 박 회장은 해외영업망 확대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미래에셋은 지난해 7월 중국 본토 진출을 위해 베이징에 현지 사무소를 개설한 데 이어 12월에는 외국계 최초의 베트남 현지 합작법인인 미래에셋증권 베트남법인을 설립했다.
또 선진시장인 영국과 미국은 물론 이머징마켓인 인도와 브라질에도 현지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도 “박 회장이 무슨 이야기를 한들 지금 시장이 달라질 것이 없지 않느냐.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지금 상황에서 환매하면 크게 손해가 나니 증시가 오를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것일 텐데 그런 발언에 만족할 투자자가 있겠느냐. 차라리 안하느니만 못해 발언을 하지 않는 것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비판도 적지 않다. 투자자 대다수가 박 회장의 입을 바라보는 상황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박 회장과 미래에셋이 수렁에서 탈출하는 길은 지금 반토막이 난 펀드의 수익률을 빠른 시일 내에 플러스로 되돌리는 것밖에 없다. 그래야 다들 ‘역시 박현주’라며 칭송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성격 급한 우리나라 사람들 입장에서 박 회장에 정말 등을 돌리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며 “문제는 현재 글로벌 증시 침체가 단기간에 끝날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박 회장 입장에서는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어 고민이 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의순 언론인
※이 기사가 실린 <일요신문> 859호가 발매된 27일, 미래에셋증권은 박현주 회장이 지난 24일 열린 전국지점장회의에서 현재의 주가폭락과 관련 “100년에 한 번 있을 만한 절호의 투자기회일 수 있다”는 등의 공식 발언을 했다고 밝혀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