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된다’ 싶어 분수에 넘치는 행동과 결정을 해 지금 같은 불황에 부딪혀 꼼짝없이 당하고 있는 보통사람들. 10년 전을 회상해 보면 끔찍하기까지 하다. 어디 좋은 방법이 없을까. 어려운 시기일수록 작은 실천이 빛나는 법. 그리 대단하진 않지만 ‘김 대리’의 고민과 결정을 따라가보면 아이디어 하나는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김 대리’는 우선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가용 사용을 중단하기로 했다. 아무리 고유가라지만 그동안에는 출퇴근은 물론이고 가까운 곳의 쇼핑이나 나들이에 항상 자가용을 이용해서 움직였다. 연료비도 꽤 많이 들어갔다. 그래서 우선 출퇴근부터 지하철을 이용하기로 했다. 지하철역까지 10분 이상 걸리지만 운동도 된다는 데 위안을 삼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 푼이라도 더 아끼기 위해서 그동안 관심이 없었던 차량요일제를 신청했다. 옆자리의 박 과장은 “차량요일제 해봐야 에너지 절약에 별 도움이 안 된다”고 일갈했지만 그건 참 세상물정 모르는 얘기였다.
우선 자동차세가 서울을 기준으로 5%가 감면된다. 남산터널의 혼잡통행료 2000원도 50% 감면된 1000원이고 공영주차장 주차요금도 20% 할인된다. 교통유발부담금도 감면되고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배정시 가점이 부여된다. 그동안 ‘몇 푼이나 되냐’고 생각했던 혜택들이지만 작은 돈이 모여서 목돈이 되는 것이다. 차량요일제를 하면 한 달에 약 4만 원 이상이 절약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 대리는 휴대전화 통신요금제도 바꾸기로 했다. 컬러링을 포함한 부가서비스는 모조리 해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발신보다는 수신을 주로 하는 습관을 들이기로 정하고 전화카드를 한 장 샀다. 앞으로 외부에서나 개인적인 통화를 할 때는 전화카드를 이용할 예정이다. 그동안 생각 없이 보냈던 문자메시지도 인터넷을 통해서 하기로 했다. 카드 등 각종 포인트를 사용하면 문자메시지 쿠폰을 구입하기가 쉽다. 번거롭더라도 이렇게 줄여야만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이렇게 해보니 한 달 통신요금 2만 원 정도는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와! 벌써 6만 원이나 절약된다니 생각만 해도 힘이 난다. 외식비도 줄이기로 했다. 그동안 1주일에 한 번씩은 하던 가족들과의 외식은 당분간 하지 않을 생각이다. 한 번에 최소한 2만 원 이상은 들어갔으니 한 달에 아무리 못해도 8만 원은 줄이는 게 가능하다. “이게 무슨 궁상이냐”고 투덜거리는 아내에게 현재의 상황을 다시 설명해주기로 했다. 우리가 절약하고 아껴서 저축해야만 ‘추위’를 이길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신용카드도 자진해서 하나만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물론 교통카드 기능이 되어 있는 신용카드로 말이다. 외식을 줄이는 대신 아내와 아이들과 집 근처의 공원과 북한산에 자주 가기로 했다. 도시락 싸는 건 ‘당근’이다.
아이들의 학원도 꼭 필요한 한두 개를 제외하고는 중단하기로 결정했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학원을 중단할지는 결정을 하지 못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들의 사기를 꺾는 일이라서 아내와 아이들과 다시 이야기해서 곧 결정할 예정이다. 아이들은 내심 반기는 표정이다. 그간 아내의 성화로 학원에 치이던 아이들은 속사정도 모르는 채 좋다고 한다. 아마 아내의 심정도 김 대리와 마찬가지로 지금 숯이 되어 있으리라.
문제는 지금부터다. 절약으로 모인 자금은 우선 전부 1년 만기 적금에 가입하기로 했다. 그것도 이자소득세 혜택이 있는 신협 단위농협 새마을금고에 할 생각이다. 다들 가입 기간이 짧다고 하지만 1년 후에 모은 돈으로 다시 저축을 하든지 아니면 주택 자금에 조금이나마 보태려 한다. 부동산 경기 하락으로 이번에는 정말 내 집 마련 찬스가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내 집 마련 생각만 하면 답답하다. 왜냐하면 그동안 착실히 모아온 자금 중 일부를 조금이라도 수익을 더 내보겠다고 펀드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적금을 만들러 갔다가 은행 직원의 권유에 혹해서 해외펀드에 가입했는데 수익은커녕 지금은 거의 반 토막이 났다.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고민을 하고는 있으나 이것도 양단간에 결정을 해야 할 것 같다. 아직 만기까지는 좀 시간이 남아 있어 환율 변동도 보면서 결정하려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매일 환율정보 사이트와 뉴스를 통해서 펀드 수익률을 보고 있다. 적당한 시점이 오면 이익이 안 나더라도 그냥 환매하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원금보장이 되지 않는 위험한 곳에 재테크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뼈 빠지게 일하고 아내가 알뜰하게 절약해서 모은 돈이 그냥 눈앞에서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 정도로 화가 난다. 그러나 어쩌겠나.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손해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정리하는 걸로 마음먹었으니 편하게 생각해야지.
김 대리는 혹시 과다하거나 불필요한 보험이 없는가도 확인해 보았다. 그나마 보장성 보험과 장기보험 중심으로 적절하게 가입이 돼 있어서 다행이다. 만일 변액보험이나 저축성 보험이라도 아내가 김 대리 모르게 가입했으면 어쩌나 했는데 아내는 역시 현명한 여자다.
참 깜박 잊은 게 있는데 살고 있는 집에 전세 만기가 곧 돌아온다. 설마 전세보증금을 인상해 달라는 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에 주말을 이용해 단지 내 부동산업소에 들러보기로 했다. 다행히 아내는 오늘 낮에 다녀왔다고 했다. 매매는 매물만 있고 매수는 문의도 거의 없다고 했다. 전세는 그래도 아직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 옆의 아파트 단지가 리모델링에 들어간다고 해 이주를 준비하고 있으니 바로 옆인 우리 아파트의 전세가격이 어떻게 될지 장담을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김 대리는 다행이다. 평소 안전자산 중심으로 운영을 해오다보니 조금만 허리띠 졸라매고 노력하면 잘 극복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펀드에 가입한 금액도 많지 않다. 직접 주식에 투자해보라는 증권회사 친구의 권유도 거절했다. 사실 좋은 종목이고 정보가 있다고 해 적잖이 망설이다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거절했는데 천만 다행이다. 자, 다시 힘을 내 보자.
한치호 재테크 전문 기고가 hanchi10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