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0월 21일 국무회의 석상에서 “지금 상황이 총괄적으로 볼 때 IMF 때보다 심각하다”면서도 “이 기회에 사고와 제도를 바꿔야 위기 뒤 선진국으로 도약할 기회가 온다”고 말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 누구를 옹호하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개인경제나 가정경제 생활도 이런 기회에 근본적으로 다시 살펴보고 혹시라도 잘못되었거나 낭비 요소가 있다면 바꾸어 보자는 것이다. 그래야만 경기가 호황 국면에 들어섰을 때 도약할 기회를 잡을 수가 있다.
‘김대리’는 이번 기회에 그동안 마음만 먹고 있었던 외국어와 자격증 공부를 확실히 하기로 했다. 우선 김 대리는 일본어나 중국어도 좋지만 다른 제3국의 언어를 배워보기로 했다. 평소에는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미뤄두었지만 더 이상 늦추다가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학원비는 고용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하는 ‘근로자 수강지원금 지원제도’를 이용해 마련해보기로 했다. 이 제도는 고용보험 피보험자인 재직근로자가 자발적으로 직업능력개발 훈련을 수강한 경우에 비용을 지원해 준다.
다행히 지원 대상이 되는 김 대리는 외국어와 함께 조리사 자격시험도 준비해볼 생각이다. 각각의 과정에 따라서 다르나 최고 80%까지 지원해주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인데도 그동안 김 대리가 게을러서 적극적으로 참여해보지 못했다. 현재의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현실화하면 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이 긴축경영을 할 것은 당연하고 어쩌면 김 대리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지도 모르는데 평소 너무 준비에 소홀한 것 같아 후회스럽다. 그러나 좋은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해볼 생각이다.
‘개인경제’적으로 자신의 능력 향상과 직업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면 ‘가정경제’적으로도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우선 아내와 상의해서 수입과 지출, 자산과 부채에 대한 전체적인 검토를 다시 하기로 했다. 우선 부채는 가급적 능력이 되는 대로 상환하기로 했다. 특히 캐피탈회사나 신용카드사에서 빌려서 갚지 못하고 있던 부채는 일부 적금을 해지해서라도 상환하기로 했다.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지인 A 씨의 경험담을 들었기 때문이다.
A 씨는 오랫동안 비상시 자금으로 활용해온 대출카드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 그는 너무나 황당한 연락을 받고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A 씨의 대출은 연 이율 25%에다 수수료까지 있는 고율이었다. 한도는 900만 원. A 씨는 보통 700만 원 정도 사용하고 있었고 연체 한 번 없이 상환도 꼬박꼬박 잘 해왔다. 우량고객인 셈. 최우수 고객군에 들어가 카드사에서 여러 가지 혜택을 준다고 하는 상황이었다. 불과 20일 전만 해도 대출 좀 더 하라고 전화로 권유도 하였는데 하루아침에 상황이 바뀌었다.
A 씨는 아침 출근시간에 난데없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금융환경의 변화로 대출한도를 30만 원으로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들어가 보니 한도가 50만 원이었다. A 씨가 전화로 물어보니 “금융환경이 어려워서 벌써 5일 전에 900만 원을 50만으로 줄였고 이번에 보낸 것은 50만 원을 30만 원으로 줄이는 것”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불과 열흘 만에 900만 원에서 300만 원도 아니고 30만 원으로 한도를 줄인다니! A 씨는 기가 차서 할 말이 없었다. 더 황당한 것은 점심을 먹고 오니 이 회사에서 보내온 우편물이 있었는데 내용은 금리를 연 27%로 올린다는 거였다.
A 씨는 “월말에 상환하지 못하면 연체가 되고 이 연체기록을 다른 금융기관들이 공유하는 순간 금융거래가 올 스톱될 텐데 그 여파는 생각만 해도 끔찍하기만 했다”고 말했다. 역시 금융기관은 ‘비가 오면 우산을 뺏어간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가 김 대리 옆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김 대리는 아내를 설득해서 비상금으로 만들어 놓은 적금 이외에는 전부를 대출 상환에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김 대리는 적립식 펀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서 가입을 권유한 은행 직원에게 상담을 했지만 대답이 시원하지 못했다. 그 직원이 무슨 죄가 있으랴마는 그래도 자기 생각보다는 나은 대답을 해주길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결국 납입 여부를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이게 무슨 간접투자 방식이란 말인가. 투자자가 잘 모를 때 그 길잡이가 되어 주어야 하는데 등대불이 꺼져 있으니 말이다.
김 대리는 일단 납입을 계속하기로 했다. 납입하는 금액이 적기도 하지만 이미 3년여를 납입했고 10년을 보고 계획했기 때문이다. 누구도 현 시장상황을 장담하기 힘들지만 여기저기 뉴스를 찾아서 분석해보면 김 대리가 계획한 기간 동안 다시 정상화가 되어 수익을 낼 만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달콤한 말로 현혹하는 금융상품에는 절대로 가입하지 않기로 스스로 다짐해본다.
김 대리는 이 기회가 내 집 마련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현재 주택청약예금에 가입한 것도 있고 해서 신규분양을 생각했으나 어쩌면 신규분양이 아니어도 절호의 찬스가 곧 올지 모른다는 생각이다. 연일 뉴스에서는 아파트 값 하락이나 거래 실종 같은 절망적인 뉴스를 내놓고 있지만 직장선배 B 씨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이런 시기가 바로 적기일 수도 있다.
B 씨는 10년 전 외환위기 때 미분양 아파트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케이스다. B 씨는 당시 미분양 신규 아파트를 무려 20%나 싸게 구입했다. 게다가 건설회사 부도로 입주가 지연되면서 베란다 새시, 인터콤 같은 부대옵션을 무료로 받은 것은 물론 이사비용도 50만 원이나 지원받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원래 분양가보다 2000만 원 가까이 싼 데다 옵션비용까지 250만 원 정도를 지원받아 아주 저렴하게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때보다 현재의 가격은 세 배가량 올라 있는 상황이어서 주거목적도 달성하고 투자가치로도 충분했다고 한다. B 씨는 “10년 전과 지금 상황이 다르고 현재 금융위기가 어디로 튈지 모르니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만 정보를 잘 찾아보고 시황을 알고 있어야 반등할 때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충고했다.
요즘 ‘주식이 반 토막이다’ 아니면 ‘각종 금융상품 손실이다’ 해서 절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서민들이 많다. 손해를 보려고 투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결혼을 해서 누구나 다 행복할 수 없듯이 재테크를 해서 누구나 다 돈을 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불황시기에는 더 그렇다.
지금이 재테크 시기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정상적이지 못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벌어들이고 있는 돈이 진정한 가치가 있는 돈인가를 생각하지 않고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얼른 가계에도 구조조정을 하자.
한치호 재테크 전문 기고가 hanchi10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