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GS 허창수 회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현대중공업 최대주주 정몽준 의원 | ||
GS는 포스코와 더불어 대우조선해양 예비입찰 당시 한화와 현대중공업에 비해 월등히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컨소시엄 파기 선언이 주는 충격이 꽤나 컸다. 재계순위 6위(공기업 및 민영화된 공기업 제외)인 GS는 지난 2004년 LG에서 분가할 때 허창수 회장이 ‘2010년 5대 그룹 진입’을 선언해 공격적 M&A 기대감을 품게 했지만 결과는 그에 미치지 못했다.
그룹 출범 직후인 2005년 인천정유 인수전에서 SK에 패한 데 이어 지난해 하이마트 인수전에선 더 높은 가격을 써내고도 유진기업에 빼앗기고 말았다. 올 초엔 대한통운 인수를 검토했다가 금호아시아나가 인수하는 것을 지켜보기만 해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허창수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대형 M&A 실패로 이어진다는 평가를 감수해야 했다.
허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을 앞두고 “전략적 선택을 했으면 모든 자원을 집중 투입하라”는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며 전에 없던 추진력을 보였다. 인수전을 통해 LG에서 분가한 이후 복잡한 지분관계로 사실상 ‘집단지도체제’하에 있는 GS의 의사결정 구조를 허 회장 중심 체제로 바꾸려는 의도로 풀이되기도 했다. 앞으로 하이닉스나 현대건설 같은 대형 매물들이 M&A시장에 나올 예정이라 조직 추스르기를 위한 허 회장의 M&A작업 검토는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나 컨소시엄 파기로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그르친 전력이 향후 벌어질 대형 인수전에 미칠 변수로 거론된다. 대우조선해양 대주주이자 매각주간사인 산업은행은 하이닉스와 현대건설의 주요주주로 채권단을 이끌고 있다. 예비입찰 때부터 가장 높은 가격을 써냈던 포스코를 후보군에서 제외해야 했던 산업은행의 ‘눈물’이 GS의 향후 M&A 전략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이번 인수전을 지켜본 금융권이 GS의 신뢰도를 향후 어찌 평가할지에 대한 갑론을박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GS와 더불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삼키기 일보직전까지 갔다가 좌절한 포스코의 충격은 더 커 보인다. 타 기업들과 달리 오너체제가 아닌 만큼 대형 M&A를 놓친 이구택 회장의 입지에 변화가 있을지에 대한 재계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포스코 안팎에선 ‘한보철강 사태’를 떠올리며 분위기 수습을 위한 내부 인적 쇄신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 회장 취임 초기인 2004년 한보철강 인수에 실패(현대차그룹이 인수)했을 당시 인수전을 주도했던 인사들이 좌천성 발령을 받았던 점을 상기시키는 대목이다.
포스코는 국민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투입된 대우조선해양을 가장 비싼 가격에 입찰하려 했던 만큼 매각주간사인 산업은행을 비롯한 금융권에 밉보일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대형 매물들을 고가에 팔아치우려는 여러 은행들에게 포스코는 여전히 높은 유동성을 지닌 우수고객이다. 문제는 이구택 회장의 지지기반인 주주들이다. 포스코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인수 이후 막대한 자금 투입이 불가피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주주들이 다소 회의적이었다”며 이번 인수 불발과 인사와는 관련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부실자산이 없고 현금 보유액 2조 원에 지난해 매출 7조 원을 올린 알짜배기 기업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전력을 쏟았다가 ‘한수 아래’로 봤던 한화에 빼앗긴 것이 이 회장의 향후 리더십에 변수가 되지 않을 거라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재계 관계자들은 “이 회장 취임 이후 한보철강을 현대차에 빼앗겨 현대차라는 주요 공급처를 잃게 생긴 점, 인도 등 해외진출 작업이 지지부진한 점에 이어 사활을 걸었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좌절된 것을 바라보는 외인주주들의 시각이 한결같을 거라 단언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2010년 3월까지 임기를 보장받아 박태준 명예회장 이후 두 번째 최장수 CEO라는 명예를 눈앞에 둔 이 회장. 내년 초 주주총회에서 그를 향할 시선에 대한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인수의향서 제출 마감일 하루 전인 지난 8월 26일 인수전 참여를 선언해 막차를 탔던 현대중공업은 당초 가장 풍부한 현금 유동성을 무기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현금 8조 5000억 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6조 원대로 추정되는 한화 측 입찰액보다 낮은 금액을 써내 인수전에서 탈락한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란 비아냥거림도 들려온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참여 선언 직전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현대건설 인수 포기’ 발언을 했지만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서 “역시 현대건설이 궁극적 목표였다”는 말도 낳고 있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주가 하락에 따라 자산가치 재평가가 이뤄지면서 ‘한화가 무리한 것이지 현대중공업은 제 값을 써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계열사 상장차익과 자산매각 등을 통해 자금을 마련하겠다던 한화보다도 못한 금액을 적어낸 현대중공업이 현대건설 채권단을 주도하는 산업은행에 어떤 ‘감흥’을 줬을지는 미지수다. 산업은행은 현대건설 지분 14.66%를 보유한 최대주주며 우리은행(14.36%) 외환은행(12.40%) 등이 현대건설 채권단에 포함돼 있다.
한편 재계에선 대우조선해양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을 계기로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하이닉스나 현대건설 같은 대형 매물 매각작업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더불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을 완주하느라 힘을 뺀 기업들과는 대조적으로 일찌감치 대우조선해양에서 발을 빼고 전력을 비축해온 ‘M&A 단골’ 두산과 STX를 향한 시선도 뜨거워지고 있다.
각각 재계 13위와 15위에 올라있는 두산과 STX에게 자산규모 15조 원의 하이닉스와 7조 3000억 원의 현대건설은 재계 10위권 도약을 꿈꿀 수 있는 매력적인 매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국내 경제를 강타한 가운데 최근까지 두 그룹을 둘러쌌던 유동성 위기설 여파가 얼마나 걷혔는지가 향후 대형 M&A 판도를 가를 듯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