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 등 레토르트식품 부문 1위인 오뚜기. 식품업계 1위 CJ제일제당도 그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국내 식품업계 1위에 걸맞지 않은 CJ제일제당의 하소연이다. CJ제일제당은 지난해 연결 기준(CJ대한통운 제외) 매출 7조 1075억 원, 영업이익 5011억 원을 거두며 업계 최초로 매출 7조 원과 영업이익 5000억 원을 동시 돌파했다. 식품 업계 2위권인 롯데칠성음료나 농심이 2조 원 안팎의 연매출을 올리는 것을 감안하면 CJ제일제당은 압도적 업계 선두다.
생명공학부문을 제외한, CJ제일제당의 지난해 식품사업부문 매출액은 3조 8850억 원, 영업이익은 2062억 원이었다. 여전히 다른 업체들과는 큰 격차를 보이는 1위다. 반면 오뚜기의 경우 지난해 연결 기준 1조 6866억 원의 매출과 1087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단순 매출에서 CJ제일제당은 오뚜기의 4.2배에 달한다. 식품만 따져봤을 때도 2.3배다.
그러면 “오뚜기가 너무 세다”는 CJ제일제당의 볼멘소리는 단순한 엄살일까. 그렇지 않다. 적어도 ‘레토르트식품(Retort Food)’에서만큼은 이런 얘기가 전혀 과장되지 않았다. 5000억~6000억 원으로 추산되는 국내 레토르트식품 시장에서 오뚜기는 80% 안팎의 점유율을 자랑하는 부동의 1위 업체이기 때문이다. 레토르트식품은 내열용기에 밀봉한 조리가공 식품을 고압솥(레토르트)에 넣고 가열·살균해 장기간 보존할 수 있도록 만든 제품을 일컫는다. 오뚜기의 ‘3분카레’가 대표적이다.
CJ제일제당은 1인 가구 증가 등으로 이 시장의 성장성이 주목을 받자 지난 2009년 이 시장에 진출하며 당해 연도 시장 점유율 30% 목표를 세웠다. CJ제일제당은 레토르트식품부문에서 카레 외에도 덮밥, 즉석 국, 죽류 등 다양한 영역에 수십 종의 제품을 시장에 내 놓았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CJ제일제당의 시장점유율은 여전히 10% 내외에 불과하다.
CJ제일제당의 ‘인델리 커리’ 제품.
이에 대해 CJ제일제당 측은 “선택과 집중을 위해 사업 조정에 나서는 것은 맞지만 사업 철수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결국 CJ제일제당이 지난 2009년 적극적인 시장 진출을 통해 이 시장에서 오뚜기와의 정면 승부를 예고했지만, 완패를 당한 셈이 됐다. 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의 고전을 식품업의 특성에서 찾고 있다. 선점 효과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CJ제일제당 관계자도 “빨간색의 프리미엄 카레 제품을 앞세워 승부를 벌였지만 ‘카레는 노랗다’는 고정관념을 깨기가 어려웠다”고 분석했다.
실제 CJ제일제당은 지난 2009년 자사의 카레 제품인 ‘인델리 커리’의 출시에 맞춰 내보낸 광고를 통해 “노란 카레, 노란 카레, 하늘도 노랗다!”고 오뚜기의 노란색 카레를 공격했다. 이에 오뚜기도 “카레는 노랄수록 좋은 거 아시죠?”라는 광고 카피로 맞불을 놓으며 때 아닌 카레 색깔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CJ제일제당의 이 같은 공격적 마케팅에 대해 색깔 대립 구도를 만들어 국내 카레시장을 양강 구도로 만들려는 의도가 있다는 해석을 내 놓았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한때 CJ제일제당이 식품업계 압도적 1위로서의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자사가 만드는 모든 제품에서 업계 1위를 하겠다는 욕심을 가졌다”며 “하지만 식품산업의 특성상 단순히 규모의 경제만으로는 기존 판세를 뒤집는 것이 힘들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