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경호 코레일 사장이 지난 14일 영장실질심사를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서고 있다. 강 사장은 이날 바로 구속됐다. 연합뉴스 | ||
지난 14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박용석 검사장)는 강경호 코레일 사장을 전격 구속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강 사장에 대한 구속 사유는 인사 청탁에 따른 금품수수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다.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외곽조직인 서울경제포럼 공동대표를 지내면서 김 아무개 전 강원랜드 레저사업본부장(구속)으로부터 유임 청탁 대가로 수천만 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공기업 수장이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는 정부 출범 초기부터 노무현 정권 때 임명된 정부 산하 단체장들이 줄줄이 옷을 벗거나 사정당국에 의해 조사를 받는 것 등과 관련해 볼 때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번 사태와 관련, 코레일 관계자는 “업무처리에 큰 동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코레일 조직 내에선 낙하산 논란까지 낳은 강 사장에 대한 검찰수사를 당혹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현 정부가 화두로 삼아온 ‘저탄소 녹색성장’의 중심으로 철도가 줄곧 꼽혀왔고 대대적인 지원계획도 잡혀온 터라 강 사장의 향후 거취에 따른 사업 차질에 대한 우려도 엿보인다.
사정당국 안팎에선 강 사장 구속 배경이 ‘기획사정설에 대한 물타기 일환’으로 거론되기도 한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이 벌여온 대형 수사들 중 상당수가 노무현 정권 실세 인사들과 연루된 것은 이미 공공연히 알려진 상태다.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 시절인 지난 2003년 서울메트로 사장을 시작으로 대선 활동에 이어 낙하산 논란을 부른 공기업 사장 취임까지, 이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온 강 사장의 구속으로 검찰수사에 대한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잠재우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셈이다.
강 사장의 금품수수 혐의를 포착해낸 검찰은 ‘현직 대통령 측근 조사까지 했다’는 명분을 취한 만큼 성역 없는 수사를 기치로 내세워 강원랜드 비자금 조성 의혹 관련 노 정권 실세들 조사에 박차를 가할 전망이다. 프라임그룹의 대우건설 인수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의 칼날이 이주성 전 국세청장의 적극 개입 여부로 향하면서 이와 연루된 노 정권 실세들 이름이 사정당국 안팎에서 심심치 않게 오르내린다. 김평수 전 교원공제회 이사장의 부실 투자 의혹 수사과정에서도 노 정권 실세들 이름이 등장한다. 특히 노무현 정부의 한 대표적 실세 인사는 이런저런 수사과정에서 워낙 그 이름이 자주 오르내리다 보니 ‘사정당국의 최종 타깃’이라는 말마저 나돌 정도가 됐다.
한편 검찰이 공기업 수사를 확전해 나가는 것이 ‘민영화된 공기업’에 영향을 미칠지에도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대검 중수부는 강원랜드의 열병합시설 공사를 수주한 케너텍 이 아무개 회장(구속)이 70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을 밝혀냈다. 이어서 지난 4일엔 비자금 용처 수사과정에서 금품 수수 의혹을 받고 있는 포스코건설 한 아무개 사장이 소환조사를 받았다.
검찰의 노 정권 실세들 조사가 포스코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은 앞서 남중수 전 KT 사장 구속사태 ‘학습효과’ 때문이기도 하다. 납품업체 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남 전 사장이 구속된 배경을 KT-KTF 안팎에선 남 전 사장이 ‘노 정권 사람’으로 비친 점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KT가 민영화됐다고는 하나 정치외풍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는 만큼 전 정권하에서 사장직에 올랐던 남 전 사장과 노 정권 실세들과의 관계 규명에 수사당국이 주목하는 것으로 비친다.
현 정부 출범 초기부터 정부와 포스코 수뇌부 간의 불협화음설이 퍼져온 것에 대해 포스코 측은 “대형 매물(대우조선해양)을 놓고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반 포스코 세력의 음해일 뿐”이라 못박아왔다. 이번 한 사장 소환조사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지만 검찰 수사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위기와 관련해 정부와 사정당국 안팎에선 기업수사를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 파급효과가 크지 않은 공기업들에 대해선 현 정부가 체질개선 의지를 분명히 해온 만큼 당국이 더욱 고삐를 당길 태세다. 포스코가 국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하면 정부와 사정당국의 칼날이 포스코 수뇌부를 비켜갈 가능성은 농후한 셈이다.
그러나 KT 수사 과정에서 납품비리와 관련해 노 정권 실세인사 이름이 거론돼오다 남 전 사장 구속에 이른 점을 눈여겨볼 필요도 있다. KT 수사는 지난 5일 남 전 사장이 구속되기 수개월 전부터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전체인력이 투입돼 진행돼 왔다. KT나 포스코 입장에선 정부가 공기업 사정을 통한 기강확립과 지난 정권 인사들 사정의 갈림길에서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두게 되느냐에 주목하고 있을 법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