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본사가 30년간의 서울 태평로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 24일 서초동 ‘삼성타운’에 입주했다. 사진은 삼성타운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
삼성은 어느 해 못지않게 부산한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태평로 시대’를 마감하고 11월 24일 서초 삼성타운에 입주해 새 집 살림을 시작한 상태다. 지난 6월 말 이건희 회장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로 출범한 계열사별 독립경영체제 아래서 내년 사업계획을 수립하느라 연말 기분을 낼 틈도 없어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이건희 전 회장은 12월 중에 있을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이 전 회장에 대한 판결이 나오고 나면 정기 인사철이 다가온다. 예년대로라면 내년 1월에 그룹 인사가 이뤄질 듯하다. 수백 명 규모의 임원 인사가 예상되는 가운데 이 전 회장의 아들 이재용 전무의 경영권 승계구도가 구체화될지가 최대 관심사로 꼽힌다.
정기인사를 통해 그려질 삼성의 새 권력지형을 이건희 전 회장의 건강상태와 맞물려 예측하는 시각도 제법 많다. 지난 11월 19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선영에서 열린 고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 21주기 추모식에 이건희 전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삼성 측이 밝힌 불참 사유는 지난해와 같은 ‘감기몸살’이었다.
지난해 20주기 추모식 땐 김용철 변호사(전 삼성그룹 법무팀장)의 삼성그룹 차명계좌·비자금 폭로 여파로 이 전 회장이 두문불출했다 여겨지기도 했다. 당시 김 변호사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의 기자회견 이후 정치권에서 삼성특검 구성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던 때라 건강 문제를 명분으로 외부 행사를 자제했을 것이란 관측이었다. 효심이 지극한 이 전 회장이 내·외빈 250여 명을 초청해 20주기를 맞이한, 선친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 있는 자리에 나오지 않자 한때 중병설이 대두되기도 했지만 그가 특검 소환 때 모습을 드러내면서 이내 잠잠해졌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상황이 바뀐 올해 21주기 추모식 불참은 이 전 회장의 건강에 대한 궁금증을 지난해보다 더욱 증폭시킨다. 이 전 회장은 이미 지난 10월 삼성특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고 상고를 포기한 상태에서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불법 경영권 승계 의혹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은 터라 12월 중순 대법원 판결 내용에 더 큰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지난해에 비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이 전 회장의 선친 추모식 불참은 지난해와는 달리 실제로 건강상의 이유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재계의 관측을 부채질하고 있다.
▲ 이재용 전무 | ||
이렇다 보니 내년 1월로 예상되는 그룹 정기인사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이 전 회장 건강에 대한 논란은 경영권 승계 시기 조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지난 4월 22일 삼성 쇄신안 발표를 통해 이건희-이학수 ‘투톱’이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면서 이 전무의 경영권 승계 시점이 화두에 오르게 됐다.
이재용 전무는 삼성 쇄신안 발표 이후 ‘백의종군’ 차원에서 해외근무에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 고문으로 물러난 이학수 전 전략기획실장 계보로 여겨지는 인사들이 아직도 그룹 내 주요 포스트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이번 인사를 통해 ‘이재용 시대’를 대비한 세대교체 작업이 이뤄질 경우 이 전무의 중앙무대 컴백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재계에선 관측하고 있다.
이외에도 12월 중 이 전 회장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 삼성에서 여론 환기를 위한 대대적인 사회공헌 계획을 추진할 것이란 소문도 있다. 삼성은 이미 쇄신안 발표를 통해 차명계좌 금액 중 이 전 회장의 탈루 양도세 납부와 국세청의 상속세 누락분 과세 이후 잔여분을 유익한 일에 사용하기로 밝힌 바 있다. 특검 재판이 무사히 끝나고 나면 삼성이 거액 기금 조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지원 등 경제위기 극복에 앞장서는 재계 서열 1위다운 행보를 펼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