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7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 이렇게 말했다. 이 대통령의 이 말은 당시 금융위기 극복에 대한 자신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돼 세간의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경제대통령’을 표방한 이 대통령의 이런 자신감을 믿고 펀드에 투자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쪽박’을 찼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펀드를 사겠다고 한 9월 17일 이후 국내외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30%대에 머물고 있다. 이익은커녕 1000만 원을 투자했었다면 300만 원을 날렸을 판이다.
한국펀드평가사가 9월 17일 이후 국내외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11월 21일 기준)을 조사한 결과, 국내주식형 펀드는 평균 -28.94%로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동안 코스피지수는 0.32% 하락에 그쳤는데도 주식형 펀드의 수익률은 열 배 이상 떨어지는 이상 현상을 보인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 들어 수혜주로 꼽히던 대형 수출주들이 최근 글로벌 경기침체로 주가가 급락한 데 비해 무시당해왔던 중소형주들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주식형 펀드들이 대부분 대형주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기 때문에 펀드 수익률이 급감할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개별 펀드별로 살펴보면 국내주식형 펀드 가운데 설정액 50억 원 이상인 435개 펀드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다. 435개 펀드 중에서도 ‘한국셀렉트배당주식1(C)’ 펀드만이 9월 17일 이후 수익률 -18.92%로 -10%대의 가장 양호한(?) 수익률을 보였을 뿐 나머지 펀드는 모두 20% 이상의 손해를 봤다. 이 가운데 ‘기은SG그랑프리포커스금융주식’ 펀드(-37.58%), ‘유리웰스중소형인덱스주식(C/C)’ 펀드(-36.41%) 등 30% 이상 손해를 기록한 펀드도 203개에 달했다. ‘삼성금융강국코리아주식전환형자2’ 펀드는 9월 17일 이후 수익률이 -40.68%로 가장 낮았다.
해외에 투자했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해외주식형 펀드의 경우 평균 수익률이 -30.50%였다. 이 가운데 러시아 주식형 펀드에 가입했다면 -62.08%로 원금의 절반 이상을 까먹었을 테고, 브라질(-38.02%), 중국(-32.33%), 인도(-29.21%) 등 이른바 브릭스(BRICs) 지역 주식형 펀드를 샀다면 밤잠을 설쳤을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의 말을 듣고 ‘JP모간러시아주식종류형자 1C’ 펀드에 가입한 사람이라면 땅을 치고 후회했을지도 모른다. 이 펀드의 수익률은 9월 17일 이후 -72.09%에 달해 원금의 3분의 2 이상을 날렸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해왔던 헬스케어섹터 펀드마저 이명박 대통령의 펀드 가입 발언 이후 수익률이 -21.41%로 곤두박질쳤다. 이처럼 해외 주식형 펀드는 전 세계 어느 지역에 투자한 것이나, 어느 분야에 투자한 것이나 모두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했기 때문에 어떻든 손해를 피할 수 없었던 셈이다.
사정이 이렇지만 이 대통령의 자신감은 식을 줄을 모른다. 이 대통령은 지난 10월 30일 언론사 경제부장단 오찬에서 “주가가 올랐다고 일희일비해선 안 된다”며 “분명한 것은 지금은 주식을 살 때”라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 발언 당일 코스피지수는 전날 900포인트(p)대에서 1084.72p로 상승하며 1000p선을 회복했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말에 주식을 산 투자자라면 역시 펀드투자자와 마찬가지로 가슴을 졸이는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다. 이후 주가는 1000p선 후반과 1100p선 전반을 오고가더니 11월 20일 948.69p로 급락, 1000p선 아래로 다시 내려갔기 때문이다.
이처럼 서민들이 가슴을 졸이는 동안에도 이 대통령의 주식투자 독려는 계속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미주 순방 마지막 날인 11월 25일 로스앤젤레스 지역 재미교포 400여 명과의 간담회에서 “국내 주가가 많이 떨어졌으나 지금은 주식을 팔 때가 아니라 살 때”라면서 “지금 주식을 사면 최소한 1년 내에 부자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워싱턴에 잠시 있었는데 그때 한국에 가서 주식 사고 부동산도 사고 해서 큰 부자가 된 사람을 봤다”면서 “자기 이익 때문이지만 어려울 때 사주는 것도 하나의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의 자신감과는 달리 코스피지수는 여전히 1000p선 내외에서 게걸음을 하고 있다.
물론 이 대통령이 ‘최소 1년 이내’라는 전제를 붙였다는 반론도 가능하지만 1년 후 사정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각 증권사가 내놓은 내년 전망은 ‘우울’ 그 자체다. 신영증권은 11월 21일 ‘2009년 전망 : 부분적 구조조정, 일파만파?’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국내외 경제 환경이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1997~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당시처럼 전 방위적 구조조정이 이뤄질 경우 2009년 코스피지수는 510~1020p에 장기간 머물 것”이라고 내다봤다. 굿모닝신한증권도 11월 24일 내놓은 ‘2009년 펀드시장전망’ 보고서에서 “글로벌 자산시장의 부진이 계속될 것으로 보여 내년 펀드 시장에서 활발한 투자가 이뤄지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국 경제의 2009년 성장률 전망치도 이 대통령의 자신감과 달리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10월 31일 성장률 4%를 예고했지만 골드만삭스 3.9%, LG경제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 3.6%, 한국개발연구원 3.3%, JP모건 3.0%로 국내외 연구소와 금융권은 3%대의 성장률을 예상했다. 특히 모건스탠리가 2.7%를 전망한 것을 비롯해 무디스·시티그룹 2.2%, 메릴린치 1.5%, 스탠더드차터드 1.4%에 불과했으며 유비에스(UBS)는 아예 -3.0%까지 들고 나왔다.
한편 이 대통령이 공언했던 펀드 가입은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고 오히려 물 건너가는 분위기다. 청와대 실무진에서 이 대통령의 펀드 가입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최근 언론에 “대통령이 펀드에 가입할 경우 특정 상품 선전으로 이용돼 다른 금융상품에 누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아 보류됐다”면서 “경제비서관실에서도 이 같은 이유로 반대하는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증권가에서는 이 대통령의 이런 증시관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대형 건설사 사장 출신이라고는 하지만 정주영이라는 거목 밑에서 비바람을 받지 않고 자랐다는 특징이 있다”며 “이런 탓인지 내놓는 정책도 시장을 앞서가기보다 따라가기 급급하고 그나마 찔끔찔끔이라 효력도 거의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시장 신뢰를 찾는 데 주력하기보다 필요 없는 곳에서 고집을 부리는 듯 보이기도 한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이 대통령이 지금 펼치는 낙관론은 정부 여당이 무책임한 유언비어라고 비판해온 ‘미네르바’의 비관적인 경제 진단과 비교된다”며 “대통령이라면 주식을 사라고, 사라고 이야기하기보다 투자자들이 주식을 사고 싶은 마음을 들 수밖에 없는 정책을 펴는 것이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이의순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