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중소기업에 입사하게 된 A 씨. 수도권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관련 회사에 정규직으로 뽑혔다. A 씨는 운이 좋은 편으로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A 씨는 취업했다는 사실에만 기뻐했지 자신의 급여 관리에 대해선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A 씨는 우선 첫 월급으로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을 하기로 했다. 다름 아닌 노트북 구입.
평소에도 노트북이 갖고 싶었던 A 씨는 월급날 바로 100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노트북을 ‘질렀다’. 그러나 그건 낭비였다. 회사에 오면 넓은 화면에 용량도 큰 최신형 컴퓨터로 업무를 처리했고 집에서도 자신에게 잘 맞는 컴퓨터가 있었으니 노트북은 거의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2개월 만에 80만 원에 팔아버렸다. 두 달 사이에 20여만 원을 쓴 것이나 다름없게 된 셈이다.
A 씨는 “불필요한 소비가 얼마나 큰 손해인가를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는 선배들에게 ‘재테크 레슨’을 요청했다. 선배들은 같은 직장에서 A 씨와 같은 과정을 겪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좋은 재테크 스승이기도 했다. 한 달 실수령액이 대략 150만 원인 A 씨는 우선 실생활비를 계산해 보았다. 따져보니 통신요금 교통비 용돈 경조사비를 포함, 40만 원 정도가 들었다.
아직 사회 초년생이다 보니 특별경비보다 기본경비 소모가 많은 편이었다. 그렇다고 기본경비를 줄이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어서 흡연이나 불필요한 저녁약속을 줄이는 것 이외에는 별로 손댈 만한 것도 없었다. 점심도 구내식당에서 3000원에 해결했다.
기본경비를 제외한 나머지 110만 원은 전액 저축을 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으나 우선 주택청약저축에 10만 원을 가입했다. 주택청약저축은 주택마련의 기본 중의 기본. 월급이 이체되는 통장의 은행이 마침 주택청약저축을 취급해서 무조건 가입하기로 했다. 대학 선배가 월급을 CMA통장으로 만들면 이자가 많이 붙을 거라고 충고했지만 듣지 않기로 했다. CMA라는 상품이 전부 예금자보호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이자가 보통예금보다 많아서 좋기는 했지만 어려운 시기에 취업을 해서 버는 돈이야말로 A 씨에게는 재벌의 재산만큼이나 중요했기 때문이다.
A 씨는 보험에도 가입하기로 했다. 암으로 사망한 가족이 있어서 더 절실했던 것이다. 우선 정액의 보험금을 지급하는 생명보험과 사고시 실제 손실을 보상하는 손해보험으로 구분해서 보험료가 10만 원을 크게 넘지 않는 선에서 가입했다. 아직 나이가 어린 관계로 생각보다 보험료의 부담이 크지 않았다. 대학 선배 등으로부터 종신보험이나 정기보험, 심지어는 변액유니버셜보험에 가입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했지만 왠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 회사 선배들이 앞으로 빨리 내 집 마련에 성공하려면 불필요한 보험 권유는 반드시 거절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저축 가능액은 85만 원. 우선 인근에 있는 신협에 5만 원을 출자하고 매월 각각 20만 원씩 붓는 적금 두 개를 가입했다. 신협은 세금우대도 되지만 일단 금리가 높다.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편리하기도 했다. 나머지 45만 원은 급여통장을 이용하는 은행에 정기적금으로 가입했다. 최근에는 은행들이 고금리로 한도를 정한 예금 상품을 많이 팔고 있어서 평상시보다 높은 금리에 가입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한 달에 총 85만 원이 통장으로 들어간다. 1년이면 원금만 1020만 원이고 3년이면 3060만 원이다. 세후로 계산한다고 해도 3300만 원 정도가 된다. A 씨는 혼자 힘으로 6년 정도만 착실하게 모으면 적당한 아파트 전세라도 얻어 결혼을 할 생각이다. 처음에 멋모르고 낭비했던 그가 비용을 치르긴 했지만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셈이다.
미혼인 B 씨도 요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B 씨는 월세 부담 때문에 전세를 얻으려고 하고 있으나 보증금 마련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고생했지만 지금은 작으나마 안정적인 중소기업에 재직하고 있다. B 씨는 경력 3년차로 실수령 급여가 180만 원 정도. 그동안 지방에 계신 부모님에게 보내는 생활비 때문에 목돈 마련하는 데 애로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모아놓은 자금으로 전세금을 마련하기엔 어려움이 따랐다. 은행 창구에서 상의를 해보니 전세자금 대출에 단독세대주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부모님의 주민등록을 서울로 옮기기로 하고 주민등록상 세대합가를 하기로 했다. 편법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지금 당장 집을 옮기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민등록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다. 서민들의 아픔이 아닐 수 없다.
또한 B 씨는 생활비와 보험료를 제외한 약 100만 원의 저축을 전부 한 곳의 은행으로 집중하기로 했다. 만일 전세자금 대출이 불가능하다면 그나마 신용평가 점수라도 높여 신용대출로라도 시도를 해보겠다는 생각이다.
B 씨는 평소에 자신이 금융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다. 만일 본인이 충분히 준비를 했거나 적어도 대출 기준을 정확하게라도 알고 있었다면 실수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적어도 내년 하반기에는 전셋집으로 옮기기 위해 지금부터 은행에 찾아가서 상담을 하고 인터넷을 열심히 뒤지고 있다. 실질적으로 금융위기 상황에서 은행들이 대출을 해주는 것도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손 놓고 있기에는 너무 불안하다고 한다.
필자는 몇 년 전 사관학교 졸업을 앞둔 생도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다.
“앞으로 3년간은 더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재테크니 뭐니 해서 신경을 쓰게 되면 교육에 소홀할 수도 있다. 이럴 때는 고민하지 말고 그저 교육에 충실해야 한다. 그럼 재테크나 저축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가 문젠데, 그냥 무식하게 적금을 부어라. 남들이 10만 원 할 때 20만 원 넣고, 펀드다 뭐다 해서 막 움직일 때도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결혼 전까지는 저축이나 열심히 해라. 이자 조금 더 받으려고 고민하고 시간 허비하는 것보다도 교육 열심히 잘 받고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이 좋다. 그러다 보면 3년 후 월급이 고스란히 목돈이란 이름으로 당신들을 반겨줄 것이다. 때론 무식한 방법이 좋다.”
한치호 재테크 전문 기고가 hanchi101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