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송유진 기자 eujin0117@ilyo.co.kr
추경은 정부와 국회가 국가 세입과 세출 등을 고려해 만들어 낸 예산안 외에 추가로 쓸 곳이 생길 경우 편성하는 일종의 ‘비상 예산’이다. 이러한 추경은 국가 재정건전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어 편성 조건이 법으로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국가재정법(89조)에 따르면 추경 편성 요건은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 대량실업, 남북관계의 변화, 경제협력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였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하여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엄밀히 따져보면 이번 추경은 이러한 세 가지 요건 중 어느 것에도 부합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추경 심사를 맡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따르면 이번 추경안에 포함된 220개 사업 중에서 무려 3분의 1에 해당하는 71개 사업에 문제점이 있었다. 71개 사업 중 13개 사업의 경우 집행 가능성이 낮고, 12개 사업은 사업계획이 부실했으며, 10개 사업은 규모가 과다 산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가장 많은 19개 사업의 경우 추경을 할 정도로 시급하지 않거나, 경제 활성화나 일자리 창출 등 추경 목적에 부합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보건복지부는 추경 부적합 사업 19개 중 가장 많은 3개를 추경안에 넣었다. 복지부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의료급여 경상보조 사업(병의원에 미지급된 진료비를 지급해 주는 사업)’으로 추경에 무려 2031억 원을 추가로 편성했다. 이에 예결특위는 “취약계층을 돕는 것이 아닌, 의료기관에 대한 부채를 해소해주려는 것”이라며 “취약계층에 대한 직접 지원을 강화하려는 추경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고용노동부가 추경에 49억 9100만 원을 추가로 넣은 ‘글로벌 취업지원’ 사업도 추경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글로벌 취업지원 사업은 국내 구직자들을 해외에 알선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과 ‘글로벌 스펙초월 취업지원시스템’ 등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포털 구축이 아직 안 된 상태여서 연내 일자리 창출이나 경기부양을 하려는 추경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안정행정부가 과학기술과 교육, 문화, 역사, 행정 등 다양한 자료를 디지털화하겠다는 ‘국가 데이터베이스 구축사업(추경 증액분 60억 원)’도 역시 실제 일자리 창출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지적됐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 농촌진흥청이 함께 진행하고 있는 ‘골든 시드 프로젝트(추경 증액분 150억 원)’는 올해 안에 경기 부양 효과를 거둬야 하는 추경에 맞지 않는 장기 프로젝트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나라를 종자 강국으로 만들기 위해 농식품부는 고추와 배추 등 총 20개 품목, 해수부는 넙치와 김 등 20개 품목, 농촌진흥청은 벼 등 5개 품목 종자 등을 향후 10년간에 걸쳐 연구하는 사업이다. 이는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통해 경기 침체로 어려움이 가중된 서민이나 중산층, 소회계층을 돕는 추경의 목적에 맞지 않고,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해도 연구인력 몇 자리에 불과해 고용창출 효과도 적다는 지적이다.
미래창조과학부가 100억 원을 추경에 추가로 반영한 ‘기가 코리아’ 사업 역시 경기부양 목적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다. 기가 코리아는 2020년까지 개인이 무선으로 기가급 모바일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스마트 IT 환경을 만드는 사업이다. 하지만 이 사업에 대한 연구용역이 5월 말에 완료되고, 본격적인 사업 수행 착수는 9월부터 가능한 상황이어서 예산 자체가 올해 안에 집행될 가능성이 낮다. 자칫 추경을 통해 예산을 추가로 줘도 돈을 쓰지 못하고 묵혀 둘 여지가 많은 사업인 셈이다.
교육부가 추경에 102억 원을 추가로 넣은 ‘국립대 병원 지원’ 사업에는 경기 부양 효과가 적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립대 병원 지원은 서울대와 전남대, 충북대, 경북대, 제주대, 5개 국립대학 병원의 리모델링과 의료장비 교체를 지원하는 사업인데, 대학병원과 같은 3차 의료기관의 경우 외국산 의료장비 구매비중이 90.4%에 달해 국내 경기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이들 중 서울대와 전남대, 경북대 병원의 경우 사업준비금이 각각 2463억 원, 181억 원, 277억 원 적립되어 있어 재정지원 필요성도 떨어진다고 예결특위는 지적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로 낮출 때부터 추경을 하기 위해 엄살을 피운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추경 사업들을 보면 정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실제로 쇼였다는 확신마저 들고 있다”며 “특히 이런 허술한 추경안을 추진한다고 해도 올해 성장률은 정부가 잡은 전망치보다는 무조건 높게 나올 것이다. 경제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꼼수를 부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