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민주통합당 전당대회에서 김한길 후보가 당 대표로 선출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악연도 이런 악연이 또 있을까. 지난해 당대표 경선에서 이해찬 전 대표에 석연찮게 역전패를 당해 울분을 씹었던 김한길 대표가 이번 당대표 경선 직전까지 이 전 대표가 언급된 본인 진영의 전화 홍보원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곤욕을 치렀다. 전당대회는 끝났지만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어쩌면 이 작은 사건 하나가 더 큰 계파 갈등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민주당 5·4 전당대회 이틀 전인 지난 5월 2일. 이용섭 당시 후보 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김한길 후보 측 전화 홍보원이 서울 강북의 한 대의원와 나눈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담긴 김한길 후보 측 전화 홍보원의 발언 중에는 “이해찬이 뒤에서 이용섭 후보를 돕고 있다. 이용섭이 당대표가 되면 이해찬이 뒤에서 조종할 것”이라는 민감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이 후보 측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김한길 후보 측의 즉각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한편, 이를 시행하지 않을 시 검찰에 수사를 의뢰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한길 후보 측 주승용 선대위원장은 “진위는 아직 파악이 안 됐고, 특정인이 거론된 것은 어찌됐건 본부장 차원에서 사과해야 하는 문제”라며 사과 의사를 밝히는 등 발 빠르게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다. 김한길 후보와 이용섭 후보의 네거티브 공방전 속에 뜬금없이 이해찬 전 대표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계파 갈등의 ‘역린’을 건드린 격이다. 이용섭 후보 측의 보도자료가 뿌려지고 불과 몇 시간 뒤, 논란의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이해찬 전 대표 측 역시 ‘정당법 제52조(당대표 경선 등의 허위사실 공표죄)를 인용해 김한길 후보 측에 즉각 사과를 요구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지난해 당대표 경선부터 이어진 김한길 신임 대표와 이해찬 전 대표 사이의 악연이 이번 전당대회까지 이어진 셈이다. 알려졌다시피 두 사람은 각각 비주류와 주류 진영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로 상극 중 상극. 두 사람은 오랫동안 산적해 있던 당내 계파 간 갈등의 불씨를 언제든 당길 수 있는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던 터였다.
한 핵심 당직자는 “김한길 대표는 지난해 당대표 경선에서 당권을 거의 다 잡았다고 생각할 즈음, 당시에도 논란이 됐던 모바일 투표로 이해찬 전 대표에게 석연찮게 역전을 허용했다”며 “김한길 대표 개인적으로는 ‘친노의 장난질’에 본인이 철저히 농락당했지, 절대 졌다고 생각 안 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앙금은 이미 이때를 기점으로 증폭됐고 이번 전당대회 직전 네거티브 공방전까지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한길 대표(왼쪽)와 이해찬 전 대표. 일요신문 DB
지난 3일, 이용섭 후보 측의 황희석 대변인은 “김한길 후보 측의 주승용 선대본부장이 사과의 취지로 말을 했지만, 본인이 직접 나서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를 두고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서 “다만 중요한 기간이기 때문에 지금은 굳이 이 문제를 두고 왈가왈부하진 않겠다. 전당대회가 끝나고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좀 더 두고 보겠다. 지금은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가시적으로 드러난 해당 사건 자체가 전당대회 뒤 확산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지난 3일 중앙당 선관위의 한 실무자는 “원래 당대표 경선이라는 게 치열한 싸움이다. 네거티브 공방전은 매 경선마다 반복된 현상”이라며 “또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상대인 이용섭 후보 측 역시 비합리적인 선거운동 방식을 동원한 사실이 일부 접수됐고 실제 논의 중이다. 이 후보 측도 마냥 떳떳하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사건 자체가 장기화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김한길 후보 진영에서는 “저쪽에서도 김한길이 대표가 되면 당을 안철수에게 팔아먹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사건 자체가 확산되지는 않더라도 김한길 대표의 향후 행보에는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 당직자는 “민감한 시점에 너무나 결정적인 미스플레이를 저질렀다. 김한길 대표로서는 두고두고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무엇보다 계파 문제를 직접 건드렸고, 특히 갈등의 상대 측 핵심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이해찬 전 대표가 직접 언급된 문제기 때문에 사전에 본인이 약속한 ‘계파 청산과 당내 통합’ 행보에 악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5·4 전당대회를 불과 하루 앞둔 지난 3일, 친노 핵심 인사라 할 수 있는 문성근 전 대표권한대행이 민주당을 전격 탈당했다. 일각에서는 문 전 대행의 이번 탈당이 주류에서 비주류로 당권이 넘어간 상황 속에서 친노 인사들의 추가 탈당을 야기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제 막 닻을 올린 김한길 지도부의 출발선 자체가 ‘가시밭’이 된 셈이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