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MC증권은 그룹차원의 지원사격을 받아 지난해 공격적으로 사세확장에 나섰다. 사진은 HMC투자증권 전경과 정몽구 회장.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증권업 진출을 호시탐탐 노려오던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월 신흥증권을 인수, 현정은 회장의 현대증권(현대그룹)과 ‘간판전쟁’까지 치르며 HMC투자증권을 설립했다. 신흥증권은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증권사 순위 최하위권이었던 곳. 인수 당시 현대차 측은 “신흥증권을 5년 내에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증권사로 키우겠다”라고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HMC증권은 지난해 상반기 100억 원가량의 손실을 기록하는 등 실적이 썩 좋지 않았다. 신흥증권이 2006년과 2007년 약 90억 원의 흑자를 기록하며 적게나마 이익을 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퇴보한 셈이었다.
하지만 HMC증권의 초반 부진은 ‘불가피한 측면이 많았다’는 것이 증권가의 대체적인 반응이었다. 주식시장 침체로 거래수수료 등이 줄어들면서 대부분 증권사들이 성과를 내지 못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HMC증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 신규조직 구축, IT시스템 개발, 광고비 등 초기투자비용이 들어간 것도 실적 악화 이유 중 하나였다.
HMC증권은 하반기부터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현대차그룹의 한 고위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실적이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HMC증권이 흑자로 돌아선 것은 확실하다”고 귀띔했다.
HMC증권이 ‘턴어라운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때문’이라는 것이 증권가와 재계의 지배적인 평가다. 올해 현대차 기아차 등 그룹의 핵심 계열사들은 금융거래 및 자산관리를 타 증권사에서 HMC증권으로 옮겼다. 또한 지지부진했던 계열사 직원들의 월급 CMA통장 이전도 하반기 들어 대폭 늘어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7월부터는 계열사들이 HMC증권의 상품에 앞 다퉈 투자하기 시작했다. 7월 10일 기아차(200억 원), 현대모비스(2200억 원), 현대차(6600억 원) 등이 HMC증권에 지갑을 열었던 것.
10월에도 현대모비스 2800억, 현대자동차 3600억, 현대제철 800억, 현대캐피탈 900억, 현대카드 900억 원 등 내로라하는 핵심 계열사들이 HMC증권 상품에 돈을 넣었다.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지난해와 같은 암흑기에 계열사가 팔아준 물량과 거래수수료만으로도 HMC증권은 충분히 남는 장사를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7월 25일 실시한 유상증자에는 현대차와 현대모비스가 각각 500억, 300억 원을 들여 참여했다. 이밖에 기아차 현대제철 엠코 등도 HMC증권 지분을 추가로 사들였다. 기존 주주들이 모두 주식수를 늘린 것이다. 이로써 HMC증권 지분율은 현대차가 14.88에서 27.43%로, 현대모비스 8.93%→16.46%, 기아차 2.08→3.84%, 엠코 2.08→3.84%, 현대제철 1.79%→3.29%로 증가했다. 유상증자로 HMC증권의 자기자본도 두 배가량 늘어났다. 증권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자기자본을 기준으로 했을 때 HMC증권의 증권사 순위 중위권 진입이 유력하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계열사 간 거래를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경제 관련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금융계열사를 제쳐두고 제조업체들이 주요주주로 나선 것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증권사가 사금고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러한 지적은 글로비스의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로 곤욕을 치른 바 있는 정 회장으로서는 달갑지 않을 것이다.
어찌 됐건 HMC증권은 그룹의 지원사격을 받은 덕분인지 지난해 잔뜩 움츠러든 증권가에서 가장 공격적으로 사세확장에 나선 곳 중 하나로 꼽혔다. 우선 지점 수가 17개에서 26개로 늘어났다. 울산 광주 등 그룹의 주요 거점지역에 지점을 설립해 시너지 효과를 높였다. 특히 울산에만 세 개의 지점을 세워 각각 10개와 4개의 지점을 거느린 현대증권과 현대중공업의 하이(HI)투자증권과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기도 했다. 또한 인력 확충에도 공을 들여 스타급 애널리스트들을 스카우트하는 데 성공했다. 이 때문에 현재 HMC증권은 리서치부문에서만큼은 국내 어느 증권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현대차가 증권사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정 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란 게 그룹 안팎의 공통된 전언이다. 앞서 언급한 그룹 고위 관계자는 “삼성 SK 등 대기업은 물론 범 현대가인 현대중공업과 현대그룹이 증권사를 소유하고 있는데 우리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며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증권사를 그룹의 ‘캐시카우’(현금 창출원)로 육성한다는 것이 정 회장의 생각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HMC증권 내부에선 불협화음이 들려 눈길을 끈다. 현대차는 신흥증권을 인수한 후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는데 이를 지켜본 기존 직원들의 불만이 끊이질 않았다는 것. 특히 현대차 인수단이 ‘점령군’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참지 못한 일부 직원들은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떠났다는 전언이다. 당시 신흥증권에서 근무하다 다른 증권사로 옮긴 한 직원은 “증권업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치 자동차 만드는 식으로 막 밀어붙이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었다”라고 털어놨다.
HMC증권의 이러한 내부 갈등은 현대중공업이 지난해 7월 CJ투자증권을 인수해 만든 하이투자증권과 비교되기도 했다. 현대중공업은 조직개편 없이 100% 고용을 보장하는 등 큰 마찰 없이 인수를 마무리했다. 지금까지도 어수선한 HMC증권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증시에 한파가 닥치자 HMC증권에서는 연봉을 깎은 반면 하이투자증권은 현 수준을 유지했다. 이는 ‘14년 무분규’의 현대중공업과 ‘매년 파업’의 현대차의 대조적인 노사관계와 맞물리며 재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