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좌),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우) | ||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외아들 조원태 상무(33)는 최근 임원인사를 통해 상무B에서 상무A로 승진했다(한진의 상무직제는 ‘상무보→상무B→상무A’로 이뤄져 있다). 지난 2003년 한진정보통신 차장으로 입사한 조원태 상무는 2007년 1월 인사에서 상무보로 승진한 뒤 지난해 상무B를 거쳐 올해 상무A에 오르는 3년 연속 승진을 기록하게 됐다.
조원태 상무는 지난해 8월 대한항공 자재부 총괄팀장에서 핵심보직인 대한항공 여객사업본부 부본부장으로 옮겼으며 이번 승진과 함께 ‘부’자를 떼고 본부장 발령을 받았다. 여객사업본부는 조양호 회장을 비롯해 그룹 핵심인사들이 고위임원으로 가는 과정에서 거치는 요직. 이를 감안할 때 이번 인사로 조원태 상무가 경영권 승계에 한 걸음 더 다가섰다는 평을 낳기도 한다.
그런데 조양호 회장 자녀들 가운데 경영자로서의 두각을 먼저 나타낸 것은 장녀인 조현아 상무였다. 올해 35세로 조원태 상무보다 두 살 위인 조현아 상무는 동생보다 4년 빠른 1999년 대한항공 호텔면세사업본부 대리로 입사,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경영수업을 받았다. 먼저 입사한 만큼 승진 속도 역시 조원태 상무보다 빠르긴 했다. 2006년 대한항공 기내식사업본부 부본부장(상무보)에 오른 뒤 2007년 상무B를 거쳐 2008년 상무A로 올라섰다.
단순 계산으로 조현아 상무가 조원태 상무보다 입사는 4년 빠르다. 승진은 1년 빠르지만 입사 시점을 감안하면 조현아 상무의 승진 속도는 남동생보다 느린 셈이다. 게다가 조현아 상무가 대한항공에서 맡고 있는 보직은 기내식사업본부 본부장. 이는 조원태 상무의 보직인 여객사업본부 본부장 자리에 비해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두 사람은 대한항공 지분 0.09%씩을 나란히 보유하고 있다. 지난 10월 하락장세 속에 각각 4만 6000여 주를 매입해 지분율을 끌어올렸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외에도 두 사람은 비상장 계열사 유니컨버스 지분 10%씩을 갖고 있다. 한진그룹 지배구조 핵심은 정석기업이다. 조현아 상무나 조원태 상무 몫으로 된 정석기업 지분은 아직 없다. ‘정석기업→㈜한진→대한항공→정석기업’ 형태의 순환출자구조하에서 조양호 회장은 정석기업 지분 25.53%, 대한항공 지분 9.63%를 보유해 그룹을 장악하고 있다. 지분 1% 사들이는 데 270억 원가량 드는 대한항공의 최대주주가 되는 것보다는 비상장기업인 정석기업 지분을 증여하는 방법이 경영권 승계 통로로 쓰일 전망이다. 조 회장이 정석기업 지분을 누구에게 얼마만큼 넘겨줄지에 대한 잣대를 무엇으로 삼을지 관심이 쏠린다.
고 이양구 창업주 슬하에 두 딸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위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아 ‘사위경영’으로 유명한 동양그룹에서도 지난 1일 의미 있는 인사가 있었다. 현재현 회장의 장녀 현정담 동양매직 부장이 상무보로 승진한 것. 올해 32세인 현정담 상무보는 지난 2006년 동양매직 차장으로 입사했으며 이듬해 마케팅실장을 맡으며 능력을 인정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로써 지난해 부장으로 승진한 데 이어 입사 3년 만에 임원에 입성하는 초고속 승진사례를 남기게 됐다.
현 회장 자녀들 중에 가장 활발한 경영행보를 보여 온 현정담 상무보는 현 회장 외아들인 현승담 동양메이저 차장과 곧잘 비교대상에 오르곤 한다. 현정담 상무보의 세 살 아래 동생인 현승담 차장은 2007년 6월 입사했다. 직급에선 누나인 현정담 상무보에 못 미치지만 현승담 차장은 경영권 승계의 척도가 되는 지분율에선 이미 누나를 앞선 상태다.
현승담 차장은 동양그룹 지배구조의 핵심이랄 수 있는 동양레저 지분 20%를 보유해 현재현 회장(지분율 30%)에 이은 개인 2대주주에 올라 있다. 동양레저의 최대주주는 지분 50%를 보유한 동양캐피탈인데 이 회사의 지분 100%가 동양메이저의 소유다. 동양그룹 지배구조는 동양레저를 축으로 ‘동양레저→동양메이저→동양매직·동양시스템즈’와 ‘동양레저→동양메이저→동양캐피탈→동양레저’ 등으로 짜인 순환출자구조로 돼 있다.
현승담 차장이 현재현 회장으로부터 동양레저 지분을 상속받으면 단번에 그룹 경영권을 꿰찰 수 있는 셈. 동양레저는 비상장법인이라 상장법인에 비해 증여가 용이한 편이다. 반면 현정담 상무보는 동양레저 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현승담 차장은 조만간 동양그룹의 지주사가 될 것으로 평가받는 동양메이저 지분율을 최근 수개월 사이 하락장세 속에서 크게 올려놓았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현정담 상무보가 보유한 동양메이저 주식은 71만 7502주로 72만 6634주의 현승담 차장과 9132주 차이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달 사이 현승담 차장이 10만 5120주를 사들이면서 보유주식총수를 83만 1754주까지 끌어올렸다. 거의 차이가 없었던 지분율에서도 현승담 차장이 0.97%에 올라서면서 0.84%의 현정담 상무보와 격차를 넓혀가게 됐다.
동양그룹은 동양메이저를 중심으로 한 지주사제 전환을 계획 중이다. 이 경우 현재현-현승담 부자는 동양레저를 상장한 뒤 보유지분을 팔아 그 차익으로 지주사 동양메이저 지분을 사들여 그룹 지배력 강화를 도모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순환출자구조 고리를 끊어 지주사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현승담 차장은 지난 2007년 입사하자마자 동양그룹 창립 50주년 행사에 현재현 회장과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며 첫 공식석상 나들이를 했다. 입사가 빠른 누나 현정담 상무보에 비해 업무실적이나 경영활동 면에서 아직 뒤지지만 동양의 지주사 전환과정에서 현승담 차장의 그룹 내 비중이 점차 확대될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