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롯데월드 건설을 놓고 “지켜보자”는 신격호 회장(오른쪽 위)과 “맡겨 달라”는 신동빈 부회장(오른쪽 아래)의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은 제2롯데월드 조감도. | ||
신동빈 부회장이 ‘포스트 신격호’ 시대를 이끌어나갈 후계자라는 데에는 롯데는 물론 재계에서도 큰 이견이 없다. 1988년 롯데에 입사한 이후 경영수업을 받고 1997년 부회장에 오른 신 부회장에게 이제 더 이상 ‘2인자’라는 꼬리표는 어울리지 않을 듯하다. 신격호 회장이 여전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긴 하지만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은 신 부회장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신 부회장은 핵심 계열사인 롯데쇼핑 지분도 14.59%를 보유하고 있어 대부분의 재벌 2세들이 승계를 위한 지분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처럼 일찌감치 ‘대권’을 예약해 둔 신 부회장이지만 그동안 그룹 안팎에서는 그의 경영 능력을 놓고 부정적인 견해들이 심심찮게 제기됐었다. 신 부회장이 주도했던 사업들이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 롯데닷컴 롯데홈쇼핑 코리아세븐 등은 모두 신 부회장이 인수했거나 설립한 업체들이지만 아직도 본궤도에 오르지 못한 상태로 평가받는다. 또한 크리스피크림도넛 T.G.I프라이데이스 엔젤리너스커피 등 외식사업도 실적 부진에 빠져 있다.
롯데쇼핑이 한때 라이벌 신세계에 뒤처지며 ‘유통지존’이라는 명성에 금이 갔던 것도 신 회장에겐 뼈아플 듯하다. 신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롯데쇼핑 경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 2006년 신세계에 1위 자리를 내줬기 때문이다. 더욱이 신 부회장의 누나인 신영자 롯데쇼핑 사장이 회사를 떠났다가 ‘소방수’로 경영일선에 복귀한 2008년 다시 신세계에 앞서자 신 부회장의 경영 능력이 새삼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롯데쇼핑 내에서 신 사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후계 구도에서 사실상 독주해 온 신 부회장으로서는 그리 달갑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롯데그룹 핵심부서 출신 한 인사는 “신 부회장이 아직은 신 회장만큼의 그룹 장악력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적어도 롯데쇼핑에서는 신 사장 입김이 더 세다”라고 귀띔했다.
신 부회장이 글로벌 및 신규 사업 진출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자신에 대한 좋지 않은 평을 불식시키는 동시에 탄탄대로를 달려왔던 경영권 승계에 흠집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 것이다. 그동안 신 부회장은 롯데백화점의 해외 점포 개설과 사업 확장을 위한 M&A를 진두지휘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너무 의욕만 앞섰던 것일까. 우선 중국과 러시아에 들어선 백화점 실적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아직 적응기간일 뿐이다. 차차 개선될 것”이라 말하고 있지만 유통업계에서는 ‘현지화에 실패해 당분간은 적자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신 부회장이 지난해 추진한 M&A도 그룹 내부에서는 그다지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 부회장은 지난해 대한화재(현 롯데손해보험)와 코스모투자자문을 인수하며 본격적인 금융업 진출을 위한 초석을 닦았을 뿐 아니라 두산그룹 주류부문을 사들여 주류업 몸집 불리기에도 나섰다. 현재 오비맥주와 갤러리아백화점의 인수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어 신 부회장의 영역 확장은 올해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를 두고 롯데 계열사의 한 내부 관계자는 “외부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정작 직원들 사이에서는 ‘지금과 같은 경제 상황에서 무리하고 있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신 부회장을 바라보는 신 회장의 시선도 ‘차가워지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지난해 롯데는 ‘보수적 경영의 대표’라는 말과는 달리 공격적인 경영을 했다. 또한 그룹 계열사를 동원해 1조 원에 가까운 돈을 외부로부터 끌어들였다.
‘무차입 경영’을 신조로 하는 신 회장은 이에 대해 다소 부정적인 견해를 내비쳤다는 전언이다. 하지만 신 부회장은 신규자금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 그룹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신 회장의 또 다른 부인 서미경 씨와 딸 신유미 씨가 롯데쇼핑 지분을 사들이며 전면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신 부회장에 대한 불만과 경고를 간접적으로 나타내려는 신 회장의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신 회장은 신 부회장이 추진했던 두산주류 인수전 참여도 만류했다고 한다. 신 회장은 인수 당사자인 롯데칠성음료에서 작성한 인수·합병(M&A) 관련 보고서를 본 뒤 신 부회장에게 ‘재검토’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막대한 현금을 쏟아 부어도 진로가 장악하고 있는 소주 시장에서 흑자를 기록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기 때문이었다고. 결국 롯데가 두산주류 인수에 성공하면서 신 부회장은 결과적으로 다시 신 회장의 뜻을 거스른 셈이 됐다. 더욱이 최근 불거졌던 ‘롯데가 두산에 바가지를 썼다’는 말도 아들에 대한 신 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사실상 허가 방침을 밝힌 제2롯데월드를 놓고도 부자간에 의견충돌을 빚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동안 신 회장 부자 모두 제2롯데월드 건설을 원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다. 신 회장은 지난해 11월경 신 부회장을 비롯한 그룹 경영진들이 모인 자리에서 ‘비난이 거세질 경우 낭패를 볼 수 있으니 허가와 관련한 업무들을 당분간 멈추고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신 부회장은 “지금 중단하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일단 믿고 맡겨 달라”며 사실상 거절 의사를 보였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었던 그룹의 한 관계자는 “신 회장이 더 이상 특별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불쾌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고 당시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어 그는 “그 이후 제2롯데월드 허가 업무를 맡았던 실무진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빨라졌는데 이는 신 부회장의 독려 때문이었다. 반면 신 회장은 허가 소식을 듣고는 오랜 숙원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화를 낸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롯데 측에서는 이런 불화설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두산주류 인수, 제2롯데월드 허가 등 잇따른 낭보에 당연히 축제분위기여야 할 롯데 내부의 분위기는 의외로 썰렁한 것이 사실이다. 특히 최근 롯데가 제2롯데월드와 관련해 신 회장 예측대로 여론의 역풍을 맞고 있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소리도 들린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