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금융통화위원회에 들어서는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하는 깜짝 결정을 내렸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새누리당과 정부(기획재정부), 청와대 등의 전방위적인 압박에도 불구하고 기준금리를 동결하는 결정을 내렸다. 17조 3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을 편성하며 경기 부양에 나선 정부의 행보에 찬물을 끼얹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한은과 한은을 제외한 정부와 시장, 즉 한은 대 비 한은 간 대립의 골이 깊어졌다.
당정청의 이러한 노골적인 압박 전략은 오히려 한은의 독립성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상황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끌고 가버렸다. 한은 금통위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 한은의 독립성이 유지되지만, 기준금리를 인하할 경우 한은의 독립성이 무너진다는 식으로 정의 내려져 버린 것이다. 기준금리 결정 방향에 따라 한은이 과거에 가졌던 오명인 ‘재무부 남대문 출장소’를 다시 갖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변질된 셈이다.
이에 한은 금통위는 4월 기준금리를 동결해버렸다. 이를 통해 당정청은 두 가지 교훈을 얻게 됐다. 하나는 한은 금통위 내부도 ‘한은파 대 비한은파’가 대립하게 됐다는 것이다. 한은 금통위 내부에 자신들의 동지를 가지게 된 셈이다.
금통위원은 모두 7명인데 의장은 한은 총재가 당연직으로 맡으며 한은 부총재도 위원으로 임명된다. 이외에 5명은 각각 기재부와 금융위원회, 대한상공회의소, 은행연합회, 한은의 추천으로 임명된다. 지난 4월 기준금리 결정은 3 대 3에서 김중수 총재의 결정으로 동결이 결정됐다. 금통위원 중 하성근 위원과 정해방 위원, 정순원 위원이 기명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한 것이다. 금통위는 회의를 할 때 어떤 위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록에 남기지 않는다. 다만 금통위원이 원할 경우에 한해 이름을 남길 수 있다. 그런데 기명으로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했던 이들은 모두 한은과 관계없는 인물들이었다.
기준금리 인하를 주장한 하성근 위원은 금융위, 정해방 위원은 기재부, 정순원 위원은 상공회의소 추천 인사다. 기준금리 동결을 주장한 4명 중 김중수 총재와 박원식 부총재는 한은 인사고, 문우식 위원은 한은에서 추천했다. 비한은 인사는 임승태 위원(은행연합회 추천)뿐이다. 기준금리 동결과 인하를 놓고 한은과 비한은 출신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다.
정부가 얻은 두 번째 교훈은 압력을 노골적으로 가해서는 한은파를 굴복시키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이러한 금통위 내부의 정치지형(?)을 정확히 이해하고 5월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상태에서는 아무런 압박성 발언을 하지 않았다. 현오석 부총리는 지난 4월 말 국회의원 연구단체인 ‘국회 경제정책포럼’에 참석해 “기준금리 툴(도구)은 금융통화기관에만 있고, 그 툴에 관한 결정과 타이밍은 한은 금통위 고유사항”이라며 몸을 낮췄다. 4월에 기준금리 인하를 이야기했던 조원동 경제수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의를 듣고 아예 입을 다물었다. 당에서만 기준금리 인하 요구가 나왔지만 4월에 비하면 발언 수위는 현격하게 낮아졌다.
이러한 정부의 전략 변화는 결국 5월 금통위의 기준금리 인하라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특히 이번 기준금리 인하 결정은 6 대 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이뤄졌다. 김중수 총재는 “총재가 소수의견을 내지 않는다”고 밝혀 자신도 기준금리 인하에 투표했음을 밝혔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김중수 총재가 인하를 결정했다는 것은 한은 인사인 박원식 부총재와 문우식 위원도 인하로 돌아섰을 가능성이 높음을 의미한다. 임승태 위원만이 여전히 동결에 투표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결국 한은 측 인사들이 ‘비한은 연합’과 정부의 우회적 압박 전략에 사실상 굴복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준겸 언론인
“금통위는 청개구리”
한국은행 금통위가 4월 기준금리를 동결하고, 5월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것을 지켜본 한 금융업계 관계자가 한 말이다. 실제 시장 전문가들의 여론과 한은의 기준금리 방향은 연이어 역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지난 8일 “(한은이) 자칫 청개구리 심리를 갖고 있거나, 또는 호주늘보의 행태를 보이는 그런 일은 없도록 고심하고, 국민경제 활성화를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한 것은 한은이 5월 기준금리를 인하해달라는 표현이었다. 당·정에서 볼 때 한은의 5월 기준금리 인하 결정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보기에는 한은의 이번 결정은 전형적인 청개구리 짓(?)이다. 시장의 예상과 또다시 반대로 움직이는 탓이다.
실제로 5월 기준금리 결정을 앞두고 금융투자협회가 채권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1.3%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은이 4월 정부의 잇단 압력에도 굴하지 않았던 데다 경기 상황이 그다지 악화된 모습을 보이지 않은 탓이다. 또 1분기 경제성장률 수치를 둘러싼 한은(0.8%)과 정부(0.2%)의 대립에서 1분기 성장률이 한은이 예상했던 것보다 높은 0.9%가 나오는 등 한은의 경기회복론에 시비를 걸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은은 이러한 시장의 예상을 깨고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그런데 앞선 4월에는 채권전문가의 57.9%가 인하를 예상했지만 한은은 기준금리를 동결해버렸다.
이러한 현상은 처음이 아니다. 유럽 재정위기 등에도 불구하고 ‘동결 준수’라고 불릴 정도로 기준금리 동결을 고수하던 한은은 지난해 7월에 갑작스럽게 기준금리를 인하했다. 13개월 만에 기준금리에 변화를 준 것이다. 당시 채권 전문가 중에서 무려 93.0%나 당연히 기준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이보다 앞선 2011년 6월에는 채권 전문가의 61.2%가 유럽 재정위기 조짐 등 대외 불확실성 확대를 이유로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전망했지만, 한은은 오히려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금리 정상화 수순을 밟았다.
2011년 이후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이나 인하 결정이 시장의 예상과 맞았던 때는 2011년 3월(인상), 2012년 10월(인하) 단 두 차례밖에 없다.
이준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