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가 광주 서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 2일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숨진 채 발견된 소속 공무원의 자살경위에 대한 ‘진실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지난 2일 낮 12시 5분 광주광역시 남구의 한 야산에 세워진 승용차에서 한 남성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는 광주 서구청 회계과에 근무하던 오 아무개 씨(40)였다. 오 씨는 지난달 29일 집을 나간 뒤 연락이 끊겨 경찰이 수사에 나섰었다. 승용차 안에는 타다 남은 연탄이 놓여 있어 경찰은 오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했다.
그런데 오 씨가 일하던 광주 서구청에서는 올해 초부터 5개월 사이에 이미 2명의 공무원이 더 목숨을 잃은 일이 있었다. 앞서 지난 1월 14일에는 7급 공무원인 A 씨(46)가 자신의 집에서 목을 매 숨졌다. 또한 지난달 중순에는 구청 과장인 B 씨(59)가 아침에 출근을 준비하다 뇌출혈을 일으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2주 만에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들 죽음의 원인을 두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광주본부 서구지부와 유가족 측은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 씨는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회계과 관급계약자로 발령을 받은 후 과중한 업무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오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인사발령을 받은 뒤 예산 조기 집행 등 실적을 내기 위해 자정이 넘는 새벽 시간에 퇴근하여 2~3시간 쪽잠을 자고 다시 출근하는 격무에 시달렸다”고 전했다.
결국 이를 견디다 못한 오 씨는 상급자에게 동사무소로 전출 보내줄 것을 건의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다음 정기인사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말뿐이었다. 아들의 모습을 보다 못한 오 씨의 부모가 지난달 22일 직접 구청을 찾아가 “아들이 사표를 쓰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힘들어 한다”고 하소연을 하고 나서야 구청에서는 과내에서 부처 직원과의 업무를 바꾸는 미봉책을 내놓았다. 그런데 오 씨와 업무를 바꾸게 된 직원마저 인수인계 시기에 항의성 휴가를 떠나버리자 오 씨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난 29일 가출을 했다. 노조 관계자는 “오 씨가 갑자기 모습을 보이지 않자, 구청 측은 그제야 가출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오 씨에게 동사무소 발령을 냈다. 문제가 불거질 것을 우려해 뒤늦게 책임을 회피하는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7급 공무원 A 씨 역시 정기인사에서 부서를 옮긴 뒤 새로 발령받은 부서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난 뒤 3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전해진다.
그렇다면 죽음에 내몰린 공무원들은 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야만 했을까. 2007년 이후 만들어진 총액인건비제도(정해진 한 해 인건비 총액으로 각 정부기관이 자율적으로 정원과 인력을 운영하는 제도)로 인해 무기 계약직이 증가해 공무원들의 노동 강도가 커졌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무원노조의 한 관계자는 “행정이 복잡해지면서 업무는 많아지는데 총액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비정규직의 채용을 늘리고 있는 게 문제”라며 “무기 계약직은 행정에 대한 책임을 지기 어려워 보조 업무에 머물기 때문에 공무원들의 업무 부하를 덜어주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서구청의 직원들이 보통 1년 동안 정해진 보직 업무를 봤는데, 2011년 이후엔 6개월마다 인사이동이 이뤄지는 등 무원칙한 인사가 계속되고 있다”며 “자치단체들이 ‘장’들의 의중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데, 현재 서구청이 다른 기관들보다 상명하복의 조직문화가 심하게 굳어져있다고 생각한다”고 귀띔했다.
류정수 광주 서구의원 역시 서구청이 공무원 수에 비해 무기 계약직 비율이 가장 높으며, 이에 따른 정규직의 행정 노동 강도가 가장 세다고 지적했다. 류 의원은 “광주의 다른 구청의 경우 무기 계약직 비율이 평균 19% 정도인데 비해, 서구청은 전체 공무원 902명 중 무기 계약직이 217명으로 약 24%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몇 년 전부터 서구청 직원들로부터 ‘사람이 없어 일을 못 하겠다’는 말을 지속적으로 들어왔다. 이에 구청에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해 왔으나 개선이 되지 않았다”며 “무기 계약직 수의 증가로 인해 정규직의 노동 강도가 심해진 것이 이번 공무원들의 죽음에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오 씨의 유족들은 더 나아가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아야겠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나섰다. 그들은 “오 씨가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성격이 아니다”라며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업무 외의 다른 원인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했다. 오 씨의 어머니는 “아들이 마지막에 ‘내 후임자가 내가 맡았던 업무를 할 수 없다’, ‘내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등의 말을 한 바 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맡은 업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오 씨가 회계과에서 일했던 만큼 횡령 등 돈과 얽힌 문제에 연루되어 있진 않았을까. 이에 대해 노조는 “오 씨의 유서가 따로 발견되지 않아 현재까지는 그의 죽음에 대한 직접적 원인을 밝혀내긴 쉽지 않다”면서도 “구청에 대한 내·외부 감사를 통해 횡령 등의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고, 오 씨의 경우 회계과이긴 하지만 계약을 연결시켜주는 업무여서 돈을 직접 관리하진 않아 돈 문제 의혹에 대한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 6일 전국공무원노조 광주본부 서구지부는 서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죽은 오 씨에 대한 구청장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했다. 노조는 “김종식 서구청장이 오늘 아침 정례조회 때 고인의 사망은 개인의 우울증에서 비롯됐다”며 “공개적으로는 한마디 유감 표시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구청의 한 관계자는 “김 구청장의 정례조회 때 발언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현재 구청에서 노조, 유가족 측과 오 씨의 죽음과 관련해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따로 할 말이 없다”고 말을 아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