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쌍수 한전 사장의 개혁 행보에 대한 불만이 안팎서 나오고 있다. | ||
김쌍수 한전 사장은 한때 침체에 빠졌던 LG전자를 오늘날 세계 정상급 가전업체로 올려놓은 스타 CEO 출신이다. 혁신을 중시했던 김 사장을 재계에서는 ‘혁신의 달인’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지난해 8월 LG전자 고문으로 근무하고 있던 김 사장이 자산총액 112조 원대의 국내 최대 공기업 한전 수장으로 임명되자 일부에서 낙하산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우호적인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복마전’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을 만큼 비리로 얼룩져 있을 뿐 아니라 몸집이 지나치게 비대해 ‘공룡’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는 한전에 새바람을 불어넣을 적임자란 평가가 뒤따랐기 때문이다.
김 사장은 취임하자마자 외부에 경영 컨설팅을 의뢰, 조직 개편 등이 담긴 혁신안을 마련하며 개혁의 시동을 걸었다. 특히 지난 1월 2일부터 6일까지 실시된 주요 직위에 대한 사내 공모제는 ‘파격’이라 불릴 만큼 화제를 모았다. 일반 기업의 임원에 해당하는 처장급 인사서는 팀장급을 임명해 직급파괴를 시도했다. 또한 전국 26개 1차 사업소를 13개로 줄이고 일부 중복되는 부서를 통폐합하며 조직의 무게 줄이기에도 나섰다.
그러나 이러한 김 사장의 혁신 추진은 취임 6개월이 지난 지금 내부에서 예상대로 불만의 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김 사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내 공모제도 그렇다. 당시 7.9 대 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여기서 떨어진 사람들은 대부분 지방으로 발령이 나 김 사장은 이들의 원성을 듣고 있다. 처장 및 팀장급 인사에서도 반응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한전 관계자는 “무늬만 공모지 ‘이미 내정돼 있었던 것 아니냐’라는 말이 끊이질 않고 있다. 사기업식 경쟁 도입도 좋지만 그래도 조직이라면 어느 정도 위계질서가 필요한데 지금 완전 엉망이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이어 “이번 인사는 계획부터 인선까지 김 사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취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직원들을 적재적소에 임명하기는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연과 학연 등이 작용했던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보탰다.
이 때문인지 일각에서는 이번 인사를 ‘김 사장이 조직 장악을 위해 자기 사람을 심으려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김 사장은 올 상반기 자신의 인사에 대해 중간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이런 인사 비판론에 대해 한전 관계자는 “어느 조직이든지 개혁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을 수 없다”고 밝혔다.
조직개편에 대해서도 불만 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비용을 중시한 나머지 공공 기능을 무시했다는 것. 전국전력노동조합(노조·위원장 김주영)의 한 관계자는 “전기는 물과 같은 것으로 단지 수익으로만 따질 수 없는 부분이 크다. 시장 논리가 아닌 공공 수요자 입장에서 구조를 바꿔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이번 조직 개편이 향후 대대적인 구조조정의 전초전 성격을 띠는 것이라고도 본다. 노조 측은 “이번 조직개편은 정부의 공기업 선진화 방안과 맞물려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김 사장은 정부만 대변하지 말고 우리 입장에도 귀를 열어주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조는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날을 세우고 있다. 지난해 2조 원이 넘는 영업 손실을 기록했고 올해도 전망이 불투명한 만큼 추가적인 인력감축과 조직축소 등이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서 김 사장의 고민이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김 사장이 야심차게 선보인 부동산 개발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표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 사장은 지난 1월 21일 “한전이 보유한 부동산을 개발해 투자재원 마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한전이 전국에 보유한 토지와 건물은 1650만㎡(500만 평) 규모로 장부가액만 5조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강남의 마지막 노른자위 땅으로 불리는 삼성동 본사 사옥과 부지는 1조 원을 상회할 전망이다.
정부에서는 김 사장이 내놓은 부동산 개발에 대해 부정적인 분위기가 역력하다. 공기업이 직접 부동산을 개발하는 것에 대한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고 자칫 주변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삼성동 주변 강남 땅값이 들썩거리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전언이다. 또한 부동산 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인력과 조직을 충원해야 하는데 최근의 조직개편을 경험한 노조와 내부에서 이를 수긍할지 미지수다. 그러나 한전 관계자는 “부동산 개발로 이익을 내면 결국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설명한다.
한전이 부동산 사업을 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얻어내야 한다. 한전법에 따라 사업 분야가 전력부문으로 제한돼 있어 법 개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반대 목소리가 높아 법안의 발의조차도 힘겨워 보인다. 이와 관련, 그동안 삼성동 본사를 호시탐탐 노려왔던 것으로 알려진 몇몇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정치권을 상대로 물밑 로비를 벌이고 있다는 소문도 여의도 주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동진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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