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우중 전 회장이 사업재개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8월 공판을 마치고 법원을 나오는 모습. | ||
특히 김 전 회장은 사면 전 핵심 측근들에게 “내 인생과 철학이 맞았다는 것을 꼭 증명해보이겠다”라고 수차례 밝히며 재기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해외체류 두 달 만에 돌아온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 경영 ‘리턴 매치’는 과연 가능할까.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지난 2006년 징역 8년 6개월을 선고받고 형집행 정지로 석방된 뒤 협심증 치료를 받기 위해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장기입원을 했었다. 당시 그는 2007년 말 노무현 대통령이 사면을 해 줄 것으로 예견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최측근들에게 ‘사면 뒤 재기 프로젝트’를 은밀하게 타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그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세브란스 병실에 있으면서도 항상 사면 뒤의 재기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최측근 몇몇 사람에게 ‘내 인생과 철학이 맞았다는 것을 세상에 꼭 증명해보이고 싶다’면서 ‘사면이 된 뒤 다시 한 번 나와 같이 일해 보자’라는 제의를 수차례 했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김 전 회장의 건강이 여의치 않았고 사업 재개에 대한 분위기도 무르익지 않아 제의받았던 사람 대부분이 ‘마음은 있지만 훗날을 기약하며’ 김 전 회장의 뜻을 받들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그 뒤 김 전 회장은 2007년 12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사면을 받은 직후 측근들에게 “비자를 만들어야겠다. 한 바퀴 돌고 와야겠다”라며 재기에 대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당시 그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이 아직 베트남 중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에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가 있으며, 친분을 맺어온 지인들을 만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는 지난 2008년 1월 14일경 병 치료를 위해 해외병원을 예약한 뒤 여권을 발급받으려다 검찰에 의해 출국금지된 사실을 뒤늦게 알고 출국을 단념했던 것. 당시 검찰은 “김 전 회장의 경우 다른 혐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추징금(17조 9200만 원) 미납으로 인한 출금 조처인 것으로 안다. 김 전 회장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고액 추징금 미납자는 출국금지 대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 전 회장은 그로부터 10개월을 기다린 끝에 지난해 11월 어렵사리 검찰로부터 ‘조건부 출국’을 허가받았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일본, 베트남 등지에서 머물다 올해 1월 중순경 ‘조용히’ 귀국해 현재 방배동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김 전 회장이 출국할 당시에는 병 치료가 목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가 베트남을 보름가량 방문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두 달여의 해외 체류가 본격적으로 재기를 준비하기 위한 것 아니었느냐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해외 체류 기간 동안 김 전 회장은 심장병 치료를 위해 일단 일본 도쿄로 갔다. 그곳에서 일주일간 통원 치료를 받은 뒤 자신이 해외 사업에 역점을 두었던 베트남으로 곧장 날아갔다고 한다.
재계 주변에서는 김 전 회장의 베트남 체류에 그의 재기와 관련된 모종의 행보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사면 후 베트남을 베이스 기지로 해서 재기할 가능성이 계속 제기돼 왔다. 그는 베트남 하노이신도시 건설 프로젝트의 입안자로 지금도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히 지난 2005년 귀국 이전 한동안 베트남에 머물면서 베트남의 국토개발 사업을 자문해 왔다. 또한 김 전 회장은 지난 1996년 하노이 대우호텔을 지은 뒤 2020년까지 300억 달러를 들여 하노이를 인구 700만 명 규모의 현대식 도시로 탈바꿈시키고자 했던 그랜드 프로젝트를 추진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베트남은 그에게 제2의 고향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그가 재기를 하게 된다면 그 시발점은 베트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이 김 전 회장의 숨겨진 재산을 찾아 계속 추징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재기를 위한 ‘종자돈’을 마련할지도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김 전 회장의 측근들 중 상당수는 그의 재기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앞서의 한 측근은 이에 대해 “이미 한 번 끝난 것인데 두 번씩 가는 게 아니다, 인생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측근도 이에 대해 “나이도 있고 건강도 그런데 의욕만 가지고 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경제권의 한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옛 측근 가운데 일부가 ‘건강도 좋지 않은 노인을 부추기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우 몰락의 후유증이 여전히 ‘진행형’인 점도 김 전 회장이 재기를 모색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재계 일각에서는 그동안 “김 전 회장의 오랜 기업 경영 경험을 살려 뭔가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라는 의견이 꾸준히 나왔다. 특히 최근에는 글로벌 경제위기와 맞물려 이명박 대통령의 “수출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라는 논리와 맞물려 여전히 세계 인맥을 지니고 있는 그의 ‘역할론’도 거론되고 있다.
그런데 재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재기설에 대해 “그가 사업을 하겠다는 신념이 워낙 강해 병세가 호전되면 사업 재개를 하려 할 것이다. 또한 그 방법은 주로 베트남이나 동유럽권 국가의 유력 인사를 통해 자원개발에 관심이 있는 국내 기업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김 전 회장은 그 자신의 얘기처럼 과연 그의 인생과 철학이 맞았는지를 증명해보일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