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가운데)과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아래) 등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춰온 인물들이 포스코 사외이사로 새롭게 발탁돼 눈길을 끌고 있다. | ||
지난 1월 29일 포스코 차기 회장으로 내정된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의 회장직 임기는 전례에 따라 이구택 회장의 잔여임기 1년일 것으로 예측됐다. 이구택 회장도 지난 2003년 중도하차한 유상부 전 회장의 잔여임기 1년을 채운 뒤 이듬해 재신임을 받았던 전례를 감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스코 이사회는 외풍 의혹을 고려한 듯 정준양 내정자의 정식임기 3년 보장을 결정했다. 아울러 사외이사진에 대한 대폭 물갈이도 결정했다. 포스코 사외이사진은 총 9명으로 구성되는데 전광우 사외이사가 지난해 이명박 정부 초대 금융위원장에 발탁되면서 8명으로 꾸려져 왔다. 이들 중 4명이 사임하고 경제전문가 5명이 새로 추천돼 사외이사 절반 이상이 새 얼굴로 바뀌게 된 셈이다. 정 내정자의 회장 선출과 임기 보장, 새 사외이사진 구성은 오는 27일 주주총회를 통해 최종 결정된다.
그런데 이구택 회장 사퇴에 대한 외압 논란 잔향이 짙은 까닭에서인지 이번 사외이사 교체를 두고도 ‘외풍이 작용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포스코 이사회는 정기적이진 않지만 보통 한 달에 한 번꼴로 개최되는데 사외이사들은 한 번 참석 때마다 300만~400만 원의 ‘보수’를 받는다고 한다. 각계 저명인사들이 돈 욕심 때문에 탐낼 만한 자리는 아니다.
그러나 위상 면에선 충분히 눈독을 들일 만하다. 포스코 이사회는 포스코 측 인사 6명과 사외이사 9명으로 구성되며 이사회 의장은 사외이사진에서 선임된다. CEO후보추천위원회는 9명의 사외이사들로 구성되는 만큼 사외이사진이 경영에 미치는 영향이 다른 기업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있다. 포스코에 대한 정치권력의 외압이 실존한다면 회장 인선은 물론 사외이사진 구성이 그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한 셈이다.
이번에 퇴임이 결정된 포스코 사외이사진은 이사회 의장을 맡아온 서윤석 이화여대 교수와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그리고 허성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 등 4명이다. 이들 중 우선 박원순 상임이사와 허성관 전 장관은 현 정부와 숙명적 라이벌인 노무현 정부와 코드가 가깝거나 인연이 깊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 허성관 전장관(왼쪽), 박원순 상임이사(오른쪽) | ||
그런데 포스코 사외이사들 중 잔여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이번에 물러나는 인사로는 박원순 상임이사가 유일하다. 사외이사 임기 1년을 남겨놓은 제프리 존스 전 주한미국상공회의소 회장, 그리고 2년 임기가 남은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과 손욱 농심 회장은 계속해서 사외이사로 활동하게 돼 대조를 이룬다.
노무현 정부에서 정부각료를 지낸 허성관 전 장관의 사외이사 퇴임도 관심거리다. 지난 2006년 2월부터 사외이사 활동을 해온 허 전 장관은 올해로 3년 임기를 마치게 돼 있다. 포스코 측은 이번에 사외이사에서 물러나는 서윤석 교수나 박영주 회장과 마찬가지로 허 전 장관의 퇴임 사유는 ‘임기 만료’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서 교수나 박 회장은 허 전 장관과 달리 두 번의 사외이사 임기를 채운 인사들이다. 포스코 정관에 따르면 사외이사 임기를 세 번 이상 이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두 번째 사외이사 임기를 마친 서 교수나 박 회장의 사임은 회장 교체나 외압 여부와는 무관한 셈이다.
지난해 11월 공시의 2008년 9월 기준 포스코 임원 현황에 따르면 허 전 장관과 박상용 전 한국증권연구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사외이사들은 모두 중임을 통해 두 번째 사외이사 임기를 보내고 있다. 박상용 전 원장도 사외이사 임기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됐으니 결과적으로 허 전 장관만이 한 번의 사외이사 임기만을 채우고 물러나게 된 셈이다.
신임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받은 인사들은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장급), 한준호 삼천리 부회장과 이영선 한림대 총장, 이창희 서울대 교수 이렇게 5명이다. 이들 중 유장희 교수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 캠프 경제부문 정책자문단에 참여했으며 지난해 대한민국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 위원을 역임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김병기 연구위원은 언론 인터뷰 등에서 노무현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론을 펼쳐왔으며 현 정부 출범 이후 수출입은행장 후보에 오르내린 바 있다.
노무현 정부와 관련된 인사들이 포스코 사외이사 명부에서 이름을 내리면서 현 정부와 코드를 맞춰온 인물들이 새롭게 발탁된 점은 ‘정치적 고려’가 반영됐다는 관측을 낳게 한다. 지난 1월 이구택 회장 퇴임 선언으로 수면 위에 떠오른 포스코 외압 논란은 정준양 신임 회장 체제가 자리 잡히기까지 포스코 주변을 맴돌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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