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경제수석실 산하 금융팀이 인물난으로 한 달 넘게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3월 위기설’로 금융시장이 불안한 조짐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 금융팀장의 빈자리는 더 크게 느껴지고 있는데도 말이다. 지난해 6월 ‘촛불’ 여파로 사라진 금융비서관의 부활 격으로 지난 1월 21일 신설된 금융팀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된 내막을 들춰봤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실은 산하에 재정경제 금융 지식경제 중소기업 국토해양 농수산식품 이렇게 6개 비서관을 뒀다. 때문에 1기 청와대 참모진에서 경제정책은 현재 국정기획수석실 산하 국정과제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긴 김동연 비서관이, 금융정책은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로 돌아간 김준경 비서관이 각각 맡는 구조였다.
이 같은 경제수석실의 진용이 변한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따른 촛불시위로 인해 청와대 참모진이 전격 사퇴하고 2기 참모진이 출범하면서부터다. 2기 경제수석실은 재정경제와 금융을 경제금융비서관으로 통합하면서 5개 비서관으로 줄었다. 이는 홍보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수석비서관급인 홍보기획관을 신설하면서 늘어난 비서관급 자리를 다른 부문에서 줄여야 했기 때문. 이번에 다시 경제금융비서관을 경제비서관과 금융팀장으로 나눔에 따라 청와대 경제수석실 진용은 사실상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상황으로 되돌아가게 됐다.
금융비서관 부활의 목소리는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금융정책에 대한 중요성을 실감하면서 커지기 시작했다. 당시 경제금융비서관실이 경제와 금융을 총괄, 금융을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면서 지난해 ‘9월 위기설’을 잘 넘겼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워낙 덩치가 커 챙길 일이 많다 보니 좀 더 세밀한 대응을 못했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에서도 직·간접적으로 청와대에 금융비서관의 부활을 건의했다고 한다. 결국 반년 만에 ‘태스크포스(TF) 형태의 비서관급’이라는 전제를 달아 금융팀이 신설됐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금융팀이지만 아직까지 적임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박병원 전 경제수석 당시 금융비서관 신설을 염두에 두고 후보자 10여 명을 물색, 이 가운데 3명을 최종 후보군으로 압축한 것으로 알려졌다. 3배수에 최명주 GK파트너스 대표가 물망에 오르는 등 인선이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박 수석이 지난 1월 19일 전격적으로 물러나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경제수석에 윤진식 전 장관, 경제비서관에 기획재정부 임종룡 기획조정실장이 각각 임명되면서 또 다시 인선 작업에 들어갔지만 한 달째 윤곽조차 안 나오고 있는 셈이다.
금융팀장의 기준은 ‘민간 분야 전문가로 금융산업과 구조조정에 대한 이해는 물론 해외 금융기관 근무 경험이 있으면 더욱 좋다’는 정도. 이처럼 단순한 듯하면서도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금융팀장 인선은 차일피일 늦어지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조건을 갖추고 있는 금융 전문가들이 ‘보수는 적고 짐은 무거운’ 청와대를 좀처럼 택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 물론 애국심에 호소하고 있지만 세월이 변해 7000만∼8000만 원 안팎의 비서관 연봉에 선뜻 ‘궂은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청와대 경제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금융팀장 자리를 탐내는 사람들은 많지만 금융정책을 총괄하기에는 역부족인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반대로 능력이 뛰어나면 수억 원대에 달하는 연봉을 받으며 현업에서 잘나가고 있어 쳐다보지도 않는다”며 속사정을 털어놨다. 인물난과 함께 역설적으로 윤진식 수석과 임종룡 비서관이 금융 분야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점이 인선을 늦추고 있다는 관측도 있다.
우선 윤진식 수석은 행정고시 12회로 재무부에서 금융정책과장, 국제금융국장 등을 거친 금융통이다. 이후 대통령비서실 조세금융비서관으로 근무하면서 외환위기를 직접 경험하기도 했다. 재경부 차관, 산업자원부 장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지난해 한국투자금융지주 회장을 지낸 뒤 10년여 만에 청와대에 다시 입성했다. 관에서 조세·금융 분야 요직을 거쳤고 민간에서도 최고경영자로 재직하며 미국발 금융위기를 몸으로 겪었다.
임종룡 비서관의 프로필도 화려하기는 마찬가지. 임 비서관은 행시 24회로 공직에 발을 들인 대표적인 기획·금융통으로 재무부 이재국과 세제실,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 종합정책과장, 금융정책심의관, 경제정책국장 등을 거쳐 이번에 청와대에 들어왔다. 임 비서관은 청와대 입성 직후 “은행권의 리스크를 줄여줘서 은행권에 묶여 있는 자금이 돌게 해야 한다”고 첫 일성을 밝힐 정도로 금융 분야에 정통하다.
이처럼 관료 출신의 금융 전문가가 이미 포진한 만큼 금융팀장으론 민간 출신의 금융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게 청와대의 입장.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적당한 인물을 찾지 못하면서 ‘금융팀장을 못 뽑는 것이 아니라 안 뽑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로 다른 때 같아선 한 달 이상 인선이 늦어지면 발을 동동 구를 만도 하지만 그러한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그 이유는 경제수석실에 이미 금융전문가가 있어 금융정책을 챙기고 있고 급하게 금융팀장을 구할 만큼 상황이 절박하지 않다는 것. 기획예산 전문가로 이름을 날린 김동연 국정과제비서관이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있을 때와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금융팀장을 비서관급에서 선임행정관급으로 낮출 것이라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즉, 금융정책을 ‘조율’하기보다는 ‘조언’하는 것으로 역할이 축소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위기 상황에서는 여러 의견을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사결정을 신속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서 “한쪽에서는 ‘금융을 살리자’라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구조조정을 신속하게 하자’라고 각각의 목소리를 내면 의사결정이 늦어질 수도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같은 청와대 안팎의 분위기에 대해 청와대 경제수석실 측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백지 상태”라며 손사래를 친다.
경제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금융팀장이 관료 몫이었다면 안 뽑을 수도 있겠지만 금융팀을 신설한 목적이 민간의 시각에서 금융을 바라보며 해법을 찾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안 뽑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다만 민간에서 어떤 경력을 가진 인사가 오느냐에 따라 대우가 비서관급 혹은 선임행정관급으로 달라질 수는 있다”고 말했다.
전용기 파이낸셜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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