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영화 된 공기업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인사들. 배경은 포스코 내부. | ||
사외이사 제도의 본래 취지는 기업의 경영을 직접 담당하는 사내이사 외에 외부 전문가를 이사회 구성원으로 선임, 대주주의 전횡을 방지하면서 경영을 감독하고 조언하는 데 있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은 해당 인물의 전문성을 우선 고려 대상으로 삼는 게 원칙이지만 정치적 고려가 반영되는 경우도 허다했다. 청와대 주인이 바뀔 때마다 정권 친화적 인사들을 사외이사진에 등용, ‘바람막이’ 역할을 맡기는 사례가 빈번했던 것이다.
올해도 이 같은 관행을 피해가긴 어려울 전망이다. 현 정권과 가까운 인사들이 대거 각 기업 사외이사진에 배치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16일 경제개혁연대(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민영화된 공기업의 사외이사직이 논공행상용 전리품으로 전락’이란 제목의 논평을 냈다. ‘포스코 KT KT&G 등의 신임 사외이사 후보 11명 중 5명이 이명박 대통령 측근 인사로 구성돼 공기업 낙하산 인사 구태가 재연되는 동시에 지배구조 악화가 우려된다’는 주장이다.
정준양 신임 회장 체제의 공식 출범을 앞둔 포스코는 최근 공시를 통해 유장희 이화여대 명예교수와 김병기 전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위원(사장급)을 비롯한 5명의 신임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알렸다. 유장희 교수는 지난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 경제부문 정책자문단에 참여했고 김병기 연구위원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자문위원을 지낸 인물. 반면 노무현 정부와 인연이 있다고 볼 수 있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허성관 전 행자부 장관은 사외이사에서 물러났다(<일요신문> 875호 보도).
지난해 이석채 사장 선임 과정에서 낙하산 논란을 낳았던 KT의 경우 일부 신임 사외이사들이 현 정부 세력으로 분류되는 데다 도덕성 논란까지 겪은 공통분모를 안고 있어 눈길을 끈다. 사외이사 후보 추천을 받은 허증수 경북대 교수는 지난 대선 직후 인수위에서 국가경쟁력강화특위 기후변화에너지대책 태스크포스(TF)팀장을 지냈다. 허 교수는 인수위 시절 인천시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나 중도 사퇴한 전력을 갖고 있다. KT 사외이사 명부에 이름을 올리게 될 이춘호 인하대 교수도 현 정부 첫 여성부 장관으로 내정됐다가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제기된 부동산 투기의혹으로 낙마한 바 있다.
KT&G의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는 지난 대선 기간 동안 이명박 후보 싱크탱크 역할을 수행했던 전략홍보기획조정회의 멤버였다. 이 대통령이 1996년 서울 종로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을 당시 선거 자문을 해주면서 인연을 맺은 김 교수는 현 정권과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온 김영삼 정부 세력과도 인연이 깊다. 김영삼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위원과 KBS 이사를 지냈으며 김 전 대통령 차남 현철 씨가 만든 여론조사 조직 ‘광화문팀’의 일을 돕기도 했다.
현 정부와 가까운 인물의 사외이사 후보 추천 사례는 정치 외풍에 민감한, 민영화된 공기업뿐만 아니라 일반 대기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LG그룹 핵심 계열사 LG전자의 사외이사 취임을 앞둔 김상희 변호사는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이른바 ‘이명박 특검법’에 대한 헌법소원 소송 대리인으로 활약했다. 대검찰청 기획과장과 서울고검 검사장, 법무부 차관 등을 거친 김 변호사는 현 정부 첫 조각 때와 올 초 개각 논의 당시 법무부 장관 후보 물망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김 변호사와 함께 LG전자 새 사외이사가 될 이규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지난해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인천 서·강화 을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시 ‘친이’(친 이명박)계로 분류됐던 그는 공천경쟁에서 ‘친박’(친 박근혜)계 중진 이경재 의원을 물리쳐 화제가 되기도 했다.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로 충남 아산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이훈규 전 인천지검 검사장은 SK그룹 핵심 계열사 SK에너지 사외이사진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이 전 검사장은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 씨를 구속시켰던 인물로도 유명하다.
삼성그룹 계열 제일기획 감사로 재직 중인 임진택 한양대 교수는 최근 삼성SDI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됐다. 삼성그룹에서 국내 회계법인 1위 삼일회계법인 전무 등을 역임한 임 교수의 가치를 높이 산 셈이다. 임 교수는 소망교회 신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현 정부 출범 초기 소망교회가 이명박 대통령의 인재풀로 부각되면서 지난 3월 임 교수를 비롯해 소망교회 장로 선거에 나섰던 인사들이 여론의 조명을 받기도 했다.
SK㈜ 사외이사에 새로 선임된 권오룡 전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은 올 초 개각 당시 원세훈 장관의 국정원장 이동으로 공석이 된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군에 오르내렸던 인물이다. 신한금융지주 사외이사로 발탁된 윤계섭 서울대 교수는 지난 연말 금융투자협회 구성을 위한 설립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현대·기아차그룹 계열의 현대제철이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한 오정석 서울대 교수는 부총리를 지낸 오명 건국대 총장의 아들로 이 대통령 형인 이상득 의원의 둘째사위이기도 하다. 오 교수는 올해로 39세(1970년생). 현대제철의 기존 사외이사진 연령대가 50대 초반에서 60대 초반에 이르는 것을 감안할 때 30대인 오 교수의 경우는 파격적 인사로 받아들여진다.
천우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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