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부진 전무 | ||
지난해 특검 수사를 받는 등 곤욕을 치른 삼성그룹은 지난 1월 세대교체형 대규모 정기인사를 발표했다. 이 전무는 승진을 위한 전무 재직 연한(3년)을 채우지 못해 부사장 진급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이 전무 측근세력이 그룹 내 주요 보직을 차지하게 돼 ‘승계속도 가속화’ 전망을 낳았다.
이 전무의 서울대 동양사학과 선배인 이인용 부사장이 그룹 홍보를 총괄하게 됐으며 이 전무의 ‘가정교사’로 불려온 최지성 사장은 이윤우 부회장과 더불어 삼성전자 투톱체제를 이루게 됐다. 이 전무와 가까운 김인 삼성SDS 사장은 삼성네트웍스 사장을 겸직하게 됐다. 이 전무 중심의 인적 인프라 구축을 통해 ‘그룹 경영권 승계 임박’을 알리는 인사로 풀이되기에 손색이 없었다.
이재용 전무의 이혼 소송 사태가 여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이런 장밋빛 분위기에 예기치 못한 이혼소송이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이번 송사를 계기로 삼성가와 관련된 출처미상의 미확인 소문들이 알파만파 확산되자 삼성 측은 꽤나 곤혹스러워하는 모습이다. 이 전 회장 입원 소식이 화병(火病)설로 확대·재생산됐을 만큼 이 전무 이혼소송 소식이 이 전 회장에게 적잖은 실망을 줬을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재계 일각에선 이번 소송 사태가 이 전무의 여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고 보기도 한다. 그동안 많은 재계 관계자들은 이부진 전무에 대해 “이건희 전 회장의 승부사적 기질을 그대로 물려받았으며 외모도 이 전 회장과 판박이”라고 평해왔다. 이 전 회장의 애정이 각별한 것으로 알려진 이부진 전무는 그동안 황태자 이재용 전무의 그늘에 가려져 있었지만 호텔신라에서 착실하게 경영자적 내실을 키워왔다.
이부진 전무는 2004년 상무보 승진 이후 줄곧 경영전략 담당 임원을 맡아오면서 호텔신라 실적 개선과 사업 확대를 통해 자질을 인정받았다. 신라면세점 리모델링을 통한 샤넬 등 명품 브랜드 매장 확대, 신라호텔 지하 아케이드를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최고급 브랜드 중심으로 탈바꿈시킨 일, 인천공항 면세점 입점 확대 등이 이 전무의 주요 치적으로 꼽힌다.
▲ 이재용 전무의 이혼 소송 사태가 여동생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에 대한 재조명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다. | ||
그동안 재계에선 이재용 전무로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한 두 여동생의 분가 전망이 나돌아 왔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이건희 전 회장에게 그룹 경영권을 물려주는 과정에서 이 전 회장 형제들이 계열분리한 것에 대한 ‘학습효과’인 셈이다. 이부진-서현 자매의 경우는 신세계로 분가한 이 전 회장 여동생 이명희 회장과 곧잘 비교되기도 한다.
그런데 일각에선 경영자로서의 능력을 과시해온 이부진 전무가 과연 호텔신라 하나로 만족할지에 의문을 품기도 한다.
이부진 전무와 이서현 제일모직 상무가 삼성 지배구조 핵심인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각각 8.37%씩 보유하고 있다는 점은 이 전 회장 딸들의 목소리가 커질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삼성에버랜드의 일부 사업권을 이부진 전무 몫으로 하는 방안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지배구조 핵심인 에버랜드의 분할을 이재용 전무가 받아들일지 의문이다.
같은 에버랜드 주주인 이서현 상무보다 이부진 전무가 더 주목을 받는 이유에 대해 재계 인사들은 “전혀 다른 경영스타일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이서현 상무가 남편인 김재열 제일모직 전무와 함께 회사를 이끌어나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부진 전무의 남편 임우재 삼성전기 상무는 표면상으로는 호텔신라 경영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또한 이부진 전무는 최근 들어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 홍콩 중국 싱가포르 미국 등 해외를 자주 드나들면서 왕성한 경영행보를 보이고 있다. 남편과 얼굴 마주치기조차 힘들 정도의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는 셈이다.
이부진 전무에게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지만 이는 이재용 전무 이혼소송으로 인한 일시적 효과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이부진 전무의 위상 변화는 '포스트 이건희' 시대를 바라보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전망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