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이 폴리실리콘 사업에서 전격 철수했다.
유럽 재정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태양광 시장은 극도의 침체기를 겪고 있다. 바닥을 찍었다는 분위기가 조금씩 고개를 들고 있지만 여전히 시장 상황은 불투명하다. 지난 2008년 1㎏당 가격이 400달러에 육박하던 폴리실리콘 가격은 10달러대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예측할 수 없었던 지난 2008년, KCC는 충남 서산의 대죽산업단지에 연간 생산량 6000톤(t) 규모의 폴리실리콘 생산 공장을 짓는다고 발표했다. 이 중 절반인 3000톤 규모는 KCC가 독자 투자하고 나머지 절반인 3000톤은 KCC와 현대중공업이 51 대 49 비율로 투자하는 내용이었다. 당시 KCC와 현대중공업의 조합을 두고 태양광 수직계열화를 계획 중이었던 현대중공업과 실리콘 제조업체인 KCC의 사업적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는 분석 외에도, 범현대가인 두 그룹 간 그 이상의 끈끈함이 바탕이 됐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그런데 지난 6일 KCC는 공시를 통해 “합작법인 KAM의 결손 보전 목적의 자본감소와 관련해 합작 파트너인 현대중공업이 소유 주권 49%에 대해 무상소각에 참여키로 함에 따라, KAM은 지배회사의 100% 종속회사로 편입된다”고 밝혔다. KAM이 자본잠식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감자를 결정하고 여기에 현대중공업이 무상소각에 응한 식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로써 1176억 원의 손실을 떠안게 됐다.
KAM은 지난해 2275억 원에 달하는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누적된 적자로 인해 지난해 말 기준 총부채가 1937억 원, 자산총계가 1977억 원이었다. 2400억 원으로 시작한 이 회사의 자본금이 40억 6000만 원으로 급감하며 완전자본잠식을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럼에도 업계에서는 KCC와 현대중공업 모두 태양광 사업에서 손을 떼지는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 KAM의 사업 정상화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현대중공업의 경우 지난 2010년 말 태양광과 풍력 사업을 전담하는 ‘그린에너지사업본부’를 신설할 정도로 태양광 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특히 폴리실리콘은 잉곳, 웨이퍼, 셀, 모듈, 발전시스템까지 태양광의 모든 가치 사슬(밸류 체인)을 보유한 현대중공업이 완전한 수직 계열화를 이루는데 필수적인 사업부문이었다는 점에서 현대중공업으로서는 폴리실리콘 사업에서 쉽게 손을 떼기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됐다. 또한 KCC도 정몽진 회장이 일찌감치 폴리실리콘 사업을 회사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할 계획을 갖고 큰 애착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업 정상화의 방법으로 KAM이 택한 방법은 증자가 아닌 감자였다. 재계 관계자는 “지분 구조상 추가 자금 출자 현황에 따라 현대중공업으로 회사의 지배권이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KCC가 증자가 아닌 감자를 선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KCC 관계자는 “서로의 이익과 미래 전략적 관점에서 한 결정”이라며 “현대중공업이 지분을 전량 무상소각함으로써 우리는 감자를 안 해도 되게 됐다”고 밝혔다.
비록 KCC가 KAM에 대해 보유한 지분이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지분보다 2%포인트 더 많아 실제적인 지배 기업이 KCC라고 하더라도, 49% 지분의 현대중공업이 전량 지분을 소각한 반면 KCC는 감자에 전혀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현대중공업과 KCC의 특수한 관계, 그 중에서도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인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 KCC그룹의 정상영 명예회장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현대중공업 및 범현대가 사정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오래전부터 정몽준 의원이 가장 믿고 따르는 삼촌이 정상영 명예회장 이었고, 이 같은 이유 등으로 그룹의 덩치를 떠나서 KCC는 현대중공업의 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며 “현대중공업은 합작회사 출범 시 지분율 결정이나 감자 등 모두 KCC의 결정에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사업 철수에 특수한 관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며 “다만 시장 상황이 너무 안 좋아 폴리실리콘까지 갖고 갈 수 없었고, KAM이 KCC의 100% 자회사가 될 경우 신속한 의사 결정을 통해 공장 정상 가동을 좀 더 빨리 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
현정은의 현대엔 ‘딴죽’
정 명예회장은 고령(1936년생)임에도 서울 서초동 KCC 본사 사옥에 일주일에 두세 번 출근할 정도로 회사에 애착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명예회장은 아들 셋을 두고 있는데, 정몽진 KCC그룹 회장이 장남, 정몽익 KCC 대표이사 사장이 차남, 정몽열 KCC건설 대표이사 사장이 삼남이다. 한편 KCC는 정 명예회장이 지난 2003년 현대엘리베이터 경영권을 두고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을 상대로 ‘시숙부의 난’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최근 현대상선의 주주총회 주요 안건에도 반대표를 던지는 등 현대중공업과 함께 현대그룹에 지속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이연호 기자 dew90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