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7일과 3월 2일, 국민연금의 5% 이상 지분보유 종목이 공개되자마자 나오기 시작한 가장 큰 지적은 ‘과연 국민의 노후 대비책인 국민연금을 주식투자에 사용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였다. 그동안 수익률에 대한 억측이 난무해온 상태에서 국민연금이 주식투자에서 예상보다 큰 손해를 입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비난이 더욱 거세진 것이다. 보건복지가족부가 지난 4일 심의, 의결한 ‘2008년 국민연금 기금 결산안’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연금의 운용수익률은 역대 최악인 0.01%였다. 간신히 플러스에 턱걸이는 했지만 지난해 물가 상승률 4.7%를 감안할 경우 실제로는 마이너스를 기록한 셈이다. 이처럼 국민연금 수익률이 역대 최악을 기록한 것은 우려했던 대로 주식투자 때문이었다.
국민연금은 기금 적립액 중 99.8%인 235조 5208억 원을 채권과 주식 등 금융 부문에서 운용했다. 이 금액은 채권 81.9%(국내 77.7%, 해외 4.2%), 주식 14.4%(국내 12.0%, 해외 2.4%), 대체투자 3.7%로 나뉘어 투자됐다. 이 가운데 주식투자에서 19조 3564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그나마 이것도 국민연금이 주식투자를 대폭 확대하려다 여론의 비난에 못 이겨 주식투자 금액을 2007년 33조 원(15.1%)에서 2008년 28조 원(12%)으로 줄이고, 해외 주식투자 비율도 2.5%(5조 3812억 원)에서 2008년 2.4%(5조 6683억 원)로 낮춘 덕에 피해가 감소한 것이다. 여기에 채권 부문에서 19조 1524억 원의 이익을 거두면서 간신히 플러스 수익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자통법을 시행하면서 정부는 투자자들의 투자성향을 분석해 보수적인 투자자의 경우 주식 같은 고위험 금융상품 가입에 제한을 두고 있다. 그런데 가장 안정적으로 운영해야 할 국민연금이 가장 고위험 상품인 주식에 집중 투자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라고 밝혔다. 그는 또 “국민연금이 벤치마킹한 일본후생연금과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네덜란드 직역연금 등은 주식비중이 높아서 20% 안팎의 손해를 입었다. 국채 등 안정된 투자처로도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데 당장 증시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식에 국민연금을 쏟아 넣는 것은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금융업계 종사자도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는 당장 증시 하락을 막아서 투자자들에게 안심을 줄 수는 있겠지만 향후 추가 하락시 그 피해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러한 고위험 논란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철저한 위험관리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어서 문제될 게 없다”는 반응이다.
‘증시부양을 위해 무리한 투자’라는 비판론에 대해서도 국민연금 측은 “국민에게 더 많은 혜택을 돌려주기 위해 오로지 수익률만 보고 투자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그러나 시장의 평가는 다르다. 사실 증시가 하락세를 보이면 증권가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은 ‘국민연금이 언제 증시에 들어오나’ 하는 것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국민연금을 증시의 버팀목으로 당연히 여기고 있는 셈이다. 정부도 지난해 금융위기로 증시가 급락하자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확대를 공공연하게 부르짖었다. 결과적으로 지난해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증시 하락 때 국민연금이 홀로 주가를 떠받치는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증시는 국민연금의 주식투자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지수 1000포인트(p) 선이 무너지는 등 끝없이 하락했다. 또 올해도 동유럽발 금융위기와 미국의 금융기관 부실위험 증가로 인해 장중 1000p 선이 붕괴되는 등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익률만 보고 투자했다는 국민연금이 오히려 손해만 잔뜩 떠안은 셈이다. 이것이 지난해 20조 원에 육박하는 국민연금 주식투자 손실이라는 현실로 나타났다.
국민연금은 비록 지금은 정부의 지시로 중단하기는 했지만 공매도(자신이 보유하고 있지 않은 주식을 남에게서 빌려 파는 것)를 위한 주식대여를 하면서 오히려 증시하락을 부채질하는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에 전 세계 증시에서 공매도로 인한 증시 급락이 속출하자 미국 등 세계 각국이 공매도를 금지했다. 우리나라도 공매도를 막기 위해 국민연금에 대해 공매도를 위한 주식대여는 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
당시 상당수 외국인 투자자들은 국민연금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빌려 공매도를 해 투자위험을 회피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나라 증시가 세계 다른 나라 증시보다 지나치게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일부 증권사가 국민연금이 보유하고 있는 종목 중 쇼트커버링(빌린 주식을 되사서 갚는 일)이 일어날 만한 종목을 선정하기도 할 정도였다. 국민연금은 수익을 얻기 위해 주식 대여 수수료를 받아 챙긴 셈이지만 의도했든 아니든 결과적으로 우리나라 증시 하락에 일조한 셈이다.
국민연금은 매달 10일 이전 5% 보유종목 지분율을 공개해야 한다. 그런데 전달엔 5% 이상 보유해 공개했던 종목이 한 달 동안 매도 등의 이유로 5% 미만으로 떨어지면 이번 달엔 공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런 경우 투자자들이 ‘국민연금이 매도했다’라고 받아들이면서 투매현상도 발생할 가능성마저 있다. 이렇게 되면 해당 종목 주가가 폭락하고 지분 5% 이하라도 상당한 양을 보유한 국민연금으로서는 상당한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증시 투자 형태를 보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증시 부양에 일조하겠다는 것인지 방향을 알기가 어렵다. 공매도 문제만 해도 증시부양을 위해서는 주식대여를 그만둬야 했지만 수익 측면에서는 주식대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하락장에서 유리한 것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또 “증시 투자로 당장 증시 하락을 막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저점 확인을 방해함으로써 투자기회를 노리는 투자자들의 증시 진입 시기를 왜곡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설령 증시 하락을 막아도 그것은 다른 투자자, 특히 우리나라 주식을 연일 매도하고 있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배만 불리는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보탰다.
증시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국민연금이 공개한 5% 이상 보유종목 132개로는 높은 수익률을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이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종목들은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중공업 KT&G 현대자동차 KT KB금융 신한지주 신세계 SK에너지 하이닉스 등 시가총액 상위인 대형 우량주들이 대부분이다.
대형 우량주이기 때문에 하락장에서는 어느 정도 안정성을 유지하지만 이후 상승장에서 큰 이익을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이 증시에 투자하는 것이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이처럼 대형 우량주 위주로 투자해서는 기대했던 수익률을 거두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렇게 대형 우량주로 안전하게 투자하겠다면 굳이 국민들을 불안에 빠뜨리면서까지 주식에 투자할 필요가 없지 않느냐”면서 “지난해 40% 가까운 수익률 손해를 본 점을 감안하고, 앞으로 이 대통령이 말한 10%의 수익을 거두려면 주가가 현재보다 두 배가 올라야 한다. 지금처럼 증시 상승세 전환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이들 대형우량주들로 두 배의 수익을 얻으려면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융업계 관계자도 “국민연금이 이런 종목들에 투자하기 위해 기금운용본부를 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이들 종목은 시가총액이 크기 때문에 수익률이 인덱스(주가지수)를 따라갈 수밖에 없다. 이럴 바엔 차라리 인덱스 펀드에 묻어두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면서 “높은 수익을 거두기 위해서라며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고위험 상품인 주식에 투자한다면서 안전한 대형 우량주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으로 채권에 투자하는 것만 못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대형 우량주는 공개된 종목 중 일부일 뿐이다. 5% 미만이라 공개되지 않은 보유 종목 중에는 고수익을 낼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밝혔다.
한편 국민연금이 5% 이상 보유하고 있는 일부 중소형주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 종목에 키코(통화옵션파생상품) 피해를 입은 종목들이 포함된 데다 불성실공시를 한 전력이 있는 종목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6.54%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진성티이씨의 경우 키코 손실과 관련해 의도적으로 공시를 지연했다가 코스닥시장본부로부터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된 바 있다.
진성티이씨는 키코로 인한 손실을 감춘 채 지난해 11월 3분기 당기순이익을 ‘46억 원 흑자’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한 달 뒤에서야 키코 손실로 인해 당기순이익에서 ‘54억 원 적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주가가 5거래일 만에 50%나 하락하기도 했다. 최근 중국 내 대규모 가뭄으로 황사 우려가 커지면서 주가가 상승하고 있는 위닉스도 키코 손실을 기록한 종목이어서 증시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 이런 의문에 대해 국민연금 측은 “우리가 금융감독당국은 아니기 때문에 거기까지는 알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의순 언론인·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