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내가 부동산에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일하고 싶고 살고 싶은 곳에 투자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생각한다.”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자신의 저서 <돈은 아름다운 꽃이다>에서 밝힌 부동산 투자론이다. 특히 박 회장은 주택보다는 오피스 빌딩에 관심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래에셋의 부동산 시장 공략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부동산 정보 제공업체 ‘부동산114’를 인수한 데 이어 부동산 개발업체인 ‘미래에셋D&I’를 설립한 것. 재계와 부동산 업계에서는 이를 미래에셋이 펀드상품을 통한 간접적인 부동산 투자에서 벗어나 직접 투자를 하기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였다. 지난해 5월 미래에셋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부동산 자산관리 프로그램 ‘미래에셋 랩스’는 업계에서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 미래에셋은 매물로 나온 국내와 해외의 대형 빌딩들에 대한 매입 계약을 잇달아 체결하며 부동산 시장에서도 큰손의 명성을 떨쳤다.
미래에셋의 거침없던 행보는 그러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꺾이기 시작했다. 글로벌 경기침체로 부동산 시장이 급격히 위축됐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소의 한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이 어려웠던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수익률 악화에 따른 펀드판매 저조로 그룹의 자금 흐름이 예전처럼 원활하지 않자 부동산 투자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대두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인사이트펀드 등 펀드 환매가 한꺼번에 몰릴 경우를 대비한 유동성 확보 차원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 박현주 회장 | ||
그러나 지난해 말 미래에셋은 이 계약을 해지했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경기 침체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수익 전망이 확실하지도 않은 곳에 거액을 투자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투자자를 위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미래에셋은 2200억 원가량에 사들이기로 했던 홍콩의 한 고급 아파트 단지 매입도 규모를 축소했다. 부동산은 아니지만 미래에셋은 지난해 8월 보유 중인 골프 회원권도 대부분 판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3월 5일 미래에셋은 계열사인 미래에셋캐피탈이 보유한 대치동 미래에셋타워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이 건물의 구매자가 33세에 불과한 허민 전 네오플 대표라는 것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미래에셋타워가 지리적 요건이 양호한 데다 공실률이 거의 없고 임대 수익이 꾸준해 노른자위 건물로 평가받던 곳이어서 의외라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더군다나 시세보다 30% 이상 낮은 가격에 팔렸다고 한다.
미래에셋생명도 지난 9월 마포 사옥을 매물로 내놨지만 아직 구매자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일본계 자본이 인수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긴 하지만 한때 1200억 원 이상으로 평가받던 이 건물의 현재 가치는 700억 원대로 하락해 그만큼의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래에셋은 서울 수하동 ‘청계스퀘어가든’(가칭), 경기도 성남시 판교상업용지 개발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각각 4200억 원과 1547억 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현금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는 미래에셋이 이러한 투자 사업들에 대해서도 ‘규모를 줄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본다.
미래에셋의 부동산 투자는 계열사인 미래에셋맵스가 운용하는 부동산 펀드 ‘아시아퍼시픽부동산공모1호투자회사’를 통해 모은 자금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투자 계획에 차질을 빚으면서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의 불만도 점점 커지고 있다는 전언. 몇몇 투자자들은 미래에셋 측에 ‘당초 약속한 포트폴리오대로 하지 않을 경우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민원을 제기했다고 한다. 미래에셋생명과 미래에셋캐피탈 등이 사옥 등을 팔아 마련한 돈으로 이 펀드에 투자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처럼 미래에셋이 부동산 투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안에도 그룹 계열사 KRIA는 지난해 눈부신 성장을 기록했다. 당기순이익이 전년도 230억 원가량에서 지난해 430억 원으로 무려 200억 원가량 증가한 것. 부동산 관련 사업을 주로 하는 KRIA는 미래에셋캐피탈과 더불어 박 회장의 그룹 지배 구조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사실상 박 회장 개인 회사(박 회장 가족 지분율 78.49%)나 다름없다. 때문에 증권가 일각에선 ‘투자자들이 부동산에서 손실을 보더라도 박 회장은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