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31일 신한은행의 한 지방 지점장 A 씨가 자신의 선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A 씨는 고객 돈을 빼돌린 혐의로 내부 감사를 받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A 씨의 돈 씀씀이가 수상하다는 내부 제보를 받고 감사에 들어갔지만 갑작스런 A 씨의 사망으로 감사에 다소 차질을 빚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A 씨 사망 소식이 알려진 후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도 황급히 사태파악에 나섰다. 횡령금액이 수백억 원대에 이르렀기 때문. 신한은행 내부감사 결과에 따르면 A 씨는 그 지역의 우정사업본부가 맡긴 400억 원 중 225억 원가량을 횡령했다고 한다. 돈은 자신이 개설한 타 은행 계좌에 넣고 우정사업본부 측엔 가짜 통장을 만들어 주는 수법이었다. A 씨는 이렇게 해서 빼돌린 돈의 대부분을 주식과 펀드에 투자했지만 지난해 주가 폭락으로 170억 원가량의 손실을 입었고 신한은행 본점이 내부감사에 착수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자인 우정사업본부도 사건 발생 후 자체 진상 조사에 나섰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정사업본부는 “모든 것을 검토해본 결과 원금을 모두 돌려받을 수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신한은행에도 그러한 내용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신한은행 역시 우정사업본부가 입은 손실을 조건 없이 보전해 줄 예정이라고 한다.
금융감독원은 신한은행 내부감사를 토대로 지난 1월 말부터 이 사건에 대해 부문검사(횡령사고 금액이 크고 은행 내부 통제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될 때 하는 검사)에 착수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신한은행의 내부 감사 부실로 금융당국이 나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기도 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횡령금액이 크기도 했지만 신한은행의 내부 감사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것으로 판단해 검사에 나섰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신한은행 관계자는 “내부감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금융감독원과는 별개로 진행 중이고 그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라응찬 회장 | ||
신한은행은 이번 사건으로 동종업계에서도 ‘공공의 적’이 됐다. 금융당국이 시중은행들을 대상으로 내부 통제시스템 작동 여부와 금융사고 등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여기엔 신한을 비롯해 국민 우리 하나 등 ‘은행 빅4’가 모두 포함됐다. 특히 금융당국은 A 씨의 경우처럼 고객의 돈으로 주식투자를 한 또 다른 은행 임직원들이 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원래 신한은행은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의 종합검사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금융위기 등을 이유로 당분간 연기됐었다. 이는 금융감독원이 지난 2007년 10월에 밝힌 ‘금융감독 선진화’ 로드맵의 일환이었다고. 당시 금융감독원은 은행들에 대한 종합검사를 ‘2008년 60건→2009년 50건→2010년 40건’으로 줄일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은 이러한 계획을 수정, 올해 은행들에 대한 감독을 강화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은 상태라고 한다. 이는 기업 구조조정으로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대두됐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금융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또한 지난해 종합검사를 연기해준 신한은행에서 거액의 횡령사건이 발생했던 것도 금융감독원의 입장 변화를 가져온 이유 중 하나일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감독원이 올해 첫 종합검사 대상을 신한은행으로 정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은행 영업점에 대한 현장검사도 실시할 예정이다. 이는 금융감독원 전신인 은행감독원 시절 이뤄졌던 것으로 10년 만에 부활한 것. 이것 역시 신한은행에서 발생한 횡령사건이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는 후문이다. 전국에 영업점을 두고 있는 시중은행들이 신한은행을 ‘원망’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은행업계의 한 관계자는 “잘못한 게 없더라도 괜히 꼬투리 잡힐까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신한은행을 향해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일각에서는 현장검사 부활을 두고 ‘과거로의 회귀’ ‘금융당국의 은행 장악 음모’라며 반발하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불거진 ‘스톡옵션 논란’은 신한은행을 더욱 궁지로 몰아세웠다. 지난 3월 17일 신한금융지주는 라응찬 회장을 비롯해 경영진 107명에게 스톡옵션 61만 주가량을 부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신한지주의 지난해 순이익은 전년에 비해 15.8% 감소했고 주요 자회사인 신한은행 역시 29.5% 급감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스톡옵션 부여는 ‘도덕적 해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이번 결정은 미국 정부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은 AIG가 보너스 잔치를 벌여 거센 비난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결국 지난 3월 22일 신한금융지주는 경영진이 부여받은 모든 스톡옵션을 자진반납하기로 결정했다. 경제위기에 동참한다는 것이 명목상 이유였지만 ‘현 상황에서 경영진이 스톡옵션을 챙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금융당국과 언론의 압박에 못 이겨 마지못해 내놓은 고육책이란 게 지배적인 평가다. 은행권에서는 신한은행이 재빨리 스톡옵션을 반납한 것을 두고 볼멘소리도 들린다.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려는 것인데 신한은행이 너무 몸을 사렸다”는 것이다.
이처럼 횡령사건 스톡옵션 논란 등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검찰도 신한금융지주를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정치권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박연차 리스트’ 수사에 신한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일요신문> 880호 보도). 검찰의 한 관계자는 “지금 수사 초점이 정치권에 맞춰져 있지만 (신한으로) 언제든 불똥이 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한금융지주 관계자는 “검찰 수사와 관련해선 아는 바 없다”라고만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