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무 LG 회장(오른쪽)과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 ||
얼마 전 LG그룹 지주사인 ㈜LG는 공시를 통해 구본무 회장과 장남 구광모 씨 관련 지분변동 내역을 알렸다. 공시에 따르면 지난 3월 13일 구본무 회장은 ㈜LG 주식 15만 주를, 구광모 씨는 14만 8000주를 사들였다. 이들 부자의 지분 매입은 구 회장의 여동생 구미정 씨 지분매각을 통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3월 13일 구미정 씨는 구 회장 부자가 사들인 주식 수와 같은 29만 8000주를 팔았다. 지난 2004년 11월 구 회장의 양자가 된 이후로 구광모 씨는 총수일가 인사들이 내놓는 지분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지주사 지분율을 높여왔다. 입양 전 구광모 씨의 지분율은 1.63%. 4년여 만에 세 배가량 늘어난 셈이다.
구광모 씨의 지분율 상승이 있을 때마다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곧잘 비교대상으로 오르내리는 인물이 있다. 바로 구본준 LG상사 부회장. 구본무 회장 형제들 중 셋째인 구본준 부회장의 현재 ㈜LG 지분율은 7.58%. 구 회장에 이어 2대주주에 올라 있지만 구광모 씨 입양시점의 지분율(6.64%)에 비해 채 1%포인트도 늘어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을 받는다.
구 회장 형제들 중 둘째로 구광모 씨의 생부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과 넷째 구본식 희성전자 사장이 일찌감치 분가한 반면 구본준 부회장은 LG그룹 경영의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아왔다. LG가는 대대로 원활한 장자승계를 위해 아들들을 계열분리시켰지만 구본준 부회장만큼은 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LG그룹 2대 총수)이 그룹경영에 계속 참여토록 했다고 알려진다.
구본준 부회장은 미국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과정(MBA)을 마친 뒤 미국 AT&T와 한국개발연구원을 거쳐 1986년 금성반도체에 입사했다. 그는 이후 LG전자 LG화학 LG필립스LCD 등 전자·화학 분야에서 20년여를 보냈다. 활발한 성격에다 그룹 주력회사 현장을 오랫동안 누빈 덕에 구본준 부회장을 따르는 사내 인맥도 꽤 많다. 지난 2006년 12월 실적부진 논란 속에 LG필립스LCD 대표이사직을 내놓고 LG상사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그룹 내 위상은 여전하다고 한다. LG상사 내에서만큼은 구 부회장의 위용이 그룹총수 이상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구본무 회장이 구광모 씨를 입양한 지 4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공식 후계 발표를 하지 않은 것을 “구본준 부회장의 벽이 높기 때문”이라 진단하는 시각이 있을 정도다. 올해 31세가 된 구광모 씨가 아직 경영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구본준 부회장의 위세를 감안한 것’이란 해석이 조심스레 제기되기도 한다. LG그룹 사정에 밝은 재계 관계들은 “구자경 명예회장의 결단이 있기 전까진 구광모 씨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100% 장담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삼촌-조카 간의 지주사 지분율 증가속도를 비교하면 여전히 ‘구광모 승계론’이 힘을 얻는다. 지난 연말 단행된 구본무 회장의 세대교체형 인사 역시 구광모 씨로의 승계 발판 다지기로 풀이된다. 구 회장은 정기인사를 통해 조준호 ㈜LG 부사장(50)을 대표이사로 발탁하는 파격인사를 단행했다. 조 부사장은 ㈜LG를 비롯해 LG이노텍과 LG CNS, LG생명과학 등 계열사의 사내 등기이사를 맡고 있다. LG전자와 구본무-광모 부자 등 총수일가 일원들이 주주로 참여 중인 LG이노텍은 지난해 미뤄진 LG마이크론과의 합병작업을 곧 재개할 태세다. ㈜LG가 지분 82.67%를 보유한 LG CNS는 증권가에서 상장소문이 끊이지 않는 회사다.
이들 회사들의 합병이나 상장작업은 구 회장 일가와 ㈜LG, LG전자에 큰 차익을 안겨줄 수 있다는 점에서 조 부사장 향후 역할이 주목을 받는다. 재계에선 올해 50세인 조 부사장을 일컬어 강유식 ㈜LG 대표이사 부회장(61)이나 남용 LG전자 대표이사 부회장(60) 같은 노신들을 향한 세대교체의 기수로 표현하곤 한다. 한때 구 회장의 ‘가정교사’로 불린 강 부회장이나 오랜 비서실 생활로 구자경 명예회장의 신뢰가 두터운 남 부회장 이후를 준비하는 조 부사장의 약진이 ‘포스트 구본무’ 연착륙을 위한 과정으로 여겨지는 셈이다.
일각에선 원활한 승계를 위해 구본준 부회장이 언젠가 다른 형제들처럼 한두 사업군을 갖고 나갈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그러나 LG전자 LG화학 등에 일정 세력을 형성해온 구본준 부회장의 그룹 내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 구 회장 입장에선 그룹의 근간이 되는 핵심 계열사를 내줄 수도 없는 노릇. 이렇다 보니 구광모 씨 지주사 지분율 상승속도가 아무리 가파르더라도 승계 작업에 당장 가속을 붙이기엔 무리가 따를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