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동빈 롯데 부회장(왼쪽)/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 ||
롯데쇼핑은 이미 지난해 호남(광주)과 영남(김해)에서 아웃렛을 열어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에서는 여주에 위치한 신세계 첼시 아웃렛이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수도권 시장 진출을 위해서라도 파주 아웃렛의 성패는 롯데쇼핑에게 절실한 과제였을 것이란 관측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서울과 근접하고 교통도 좋을 뿐 아니라 휴양시설도 많아 전망이 밝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귀띔했다.
유통업계에서도 롯데쇼핑의 파주 아웃렛 사업은 그동안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다. 롯데쇼핑은 지난 1월부터 CIT랜드의 요구에 따라 당초 맺었던 임차 계약을 매입으로 변경하는 협상도 진행해왔다. 이는 우선수익권을 가지고 있는 통일동산 시공사 대림산업이 임차보다는 매매를 희망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지난 3월 롯데쇼핑과 CIT랜드의 불화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양측이 원하는 가격차가 너무 커 협상이 결렬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3월 중순 CIT랜드는 신세계와 은밀히 접촉했다. 그리고 3월 23일 신세계는 롯데쇼핑이 거의 손에 쥘 뻔했던 땅을 326억 원에 사들이기로 CIT랜드와 계약했다. 신세계는 지난 2006년에도 이 부지를 매입하려 했으나 당시엔 땅값이 너무 높아 무산된 바 있다. 그러나 최근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가격이 낮아져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졌다고 한다. 신세계 관계자는 “예전 매매 협상 때보다 3.3㎡(1평)당 50만 원을 낮게 제시해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갑작스런 신세계의 등장에 롯데는 발칵 뒤집혔다. 롯데쇼핑 측은 “동종업계 상도의상 있을 수 없는 행위”라며 “당초 예정대로 사업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을 들은 롯데그룹 경영진도 화를 감추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아웃렛사업에 애착을 보였던 신동빈 부회장 역시 불쾌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그동안 업계 선두로서 많이 양보도 해주고 그랬는데 이렇게 뒤통수를 치다니 정말 어이없다. 적어도 우리 측에 먼저 문의는 할 수 있는 문제 아니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신세계는 이러한 롯데의 반응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세계 측은 “CIT랜드 측에서 먼저 롯데쇼핑과의 협상이 결렬됐다며 땅을 살 것을 제시했고 그것을 받아들였을 뿐이다. 파주시로부터 허가까지 다 받았고 자체적인 법률 검토 결과 계약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신세계는 롯데쇼핑이 마치 피해자인 것처럼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것을 두고 ‘언론 플레이일 뿐’이라며 일축하는 분위기다.
CIT랜드도 신세계의 손을 들어줬다. 롯데쇼핑이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땅을 팔라고 주문해 협상이 결렬됐고 신세계와 접촉할 당시엔 이미 롯데쇼핑 측에 계약해지를 통보한 상태였다는 것이다. CIT랜드의 한 관계자는 “롯데쇼핑이 먼저 판을 깨놓고 왜 뒤늦게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강하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까지 고려하던 롯데쇼핑은 지난 3월 30일 보도자료를 통해 ‘국내 유통업 발전을 위해 대승적 차원에서 파주 아울렛 부지 관련 논쟁을 종결한다’며 종전의 입장을 바꿨다. 그러나 ‘신세계답지 못한’ ‘상식적으로 이해가지 않는’ 등과 같은 표현을 쓰기도 해 여전히 앙금은 남아 있는 듯했다. 이에 대해 신세계는 측은 “어찌 됐건 원만히 해결돼 다행”이라고 밝혔다.
이처럼 롯데쇼핑이 ‘양보’로 가닥을 잡은 것은 싸움을 길게 끌어봤자 ‘실익이 없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언론에 자꾸 싸우는 모습이 나오면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우려했다”고 말했다. 또한 법률적 검토를 한 결과 ‘승산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통업계에서도 이번 논란에 대해 신세계보다는 롯데쇼핑의 태도를 비판하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공’을 택하기엔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롯데그룹 내에서는 파주 땅과 관련해 몇몇 인사들에 대한 문책론도 불거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신세계는 겉으로는 표정관리에 나섰지만 속으로는 환호를 지르고 있는 듯하다. 이번 ‘파주대전’ 전까지만 해도 신세계는 롯데와의 총 다섯 차례의 부지 확보 대결에서 ‘2승 3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는데 이번 승리로 동률을 기록하게 됐다. 지난 2007년 황학동 롯데캐슬 내 상가를 따낸 이후 2연승이다. 더군다나 최근 부산에 세운 신세계 센텀시티가 돌풍을 일으키며 롯데백화점의 아성을 위협하고 있어 기쁨은 두 배로 다가올 듯하다.
재계와 유통업계 등에서는 신세계의 이번 계약 체결 성공을 두고 ‘신세계 특유의 신속한 의사결정 때문’이라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롯데쇼핑이 수개월 동안 끌던 문제를 불과 일주일 만에 일사천리로 해결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아웃렛 사업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황태자’ 정용진 부회장의 주가도 덩달아 상승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정 부회장의 라이벌 신동빈 롯데 부회장이 ‘지나치게 신중한 나머지 때를 놓친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이번 땅 대결은 신세계의 승리로 끝났지만 ‘유통 라이벌’의 경쟁은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롯데쇼핑은 통일동산 내 부지는 내줬지만 파주의 또 다른 지역에 아웃렛사업을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은 상태다. 또한 신세계 센텀시티에 맞서기 위해 올해 말 부산에서만 롯데백화점 4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신세계 역시 오는 8월 롯데백화점이 장악하고 있는 서울 영등포에 대규모 쇼핑몰을 열 계획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