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 서울모터쇼에 등장한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 | ||
세계적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미국과 일본, 유럽 등 덩치 큰 자동차산업 선진국이었다. 미국의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완성차 업체 ‘빅3’는 현재 경영에 비상등을 켜고 정부에 구제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세계 1위의 생산판매 업체인 도요타조차도 지난 3월 말 끝난 2008 회계연도에 4500억 엔 규모의 사상 첫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미국 신용평가회사 무디스는 도요타의 장기채무등급을 Aaa에서 Aa1으로 1단계 강등했다. 2003년 8월 이후 꾸준히 유지해 오던 최상위 등급을 놓치게 된 것이다. 도요타는 그동안 S&P, 피치와 같은 국제신용평가사들로부터 최고 신용등급을 받아 왔지만 최근 4개월 사이 모든 신용평가사들로부터 등급이 강등됐다.
이는 실물경제가 타격을 입으면서 세계 곳곳에서의 자동차 판매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동차시장은 최악의 침체 국면에 진입했다. 미국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급격한 판매 감소가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10월 이후 4개월 연속으로 전년 동월대비 판매 감소율이 30%를 넘고 있다.
특히 올해 1월 판매가 27년 이래 최저 수준인 65만 6000대에 그쳤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KAMA)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 미국시장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대비 15~20% 감소한 수준에 머물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과 더불어 양대 자동차 시장인 유럽 역시 지난해 5월 이후 10개월 연속으로 전년 동월대비 판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에서도 연간 자동차 판매량이 지난해보다 약 20%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것. 이는 2000년대 들어 최저 수치다. 일본시장도 지난해 자동차 총 판매량이 전년대비 6.5% 하락한 321만 대에 머무르면서 5년 연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불황이 자동차업계를 강타하면서 선진업체들이 잇따라 공장 폐쇄 감원 등 강력한 구조조정안을 발표하고 있다. 지난 2월 GM은 ‘회생계획안’을 내놓고 216억 달러에 달하는 추가자금을 정부에 요청했다. 그 대가는 4만 7000명 감원, 미국 내 5개 공장 폐쇄, 일부 브랜드 매각 등 강경한 조치다.
크라이슬러도 같은 날 제출한 회생계획안에서 3000명을 연내에 추가 감원하겠다면서 정부에 50억 달러의 추가 자금지원을 요청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바람은 지난 몇 년간 탄탄한 영업실적과 재무구조를 자랑해 왔던 일본 업체들에도 불어 닥쳤다.
도요타 혼다 등 유명 메이커들의 실적 부진에 회사 안팎에서 자구책 마련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 지난 2월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도요타 등 일본 8개 승용차 메이커가 3월 말까지 2008 회계연도에 세계시장에서 판매한 승용차 대수가 총 1940만 대로 전년에 비해 13%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세계 1위 판매업체인 도요타자동차도 최대 시장인 북미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한다고 발표했다. 4월부터 북미공장 가동을 줄여 생산량을 감축하기로 한 것이다. 또 북미법인 임직원들의 보너스를 삭감하고 임원 연봉은 깎는 동시에 직원 연봉은 동결하기로 했으며 희망퇴직 신청도 받기로 했다.
혼다도 미국 및 일본에서의 판매 부진과 엔화 강세 등의 원인으로 15년 만에 처음으로 분기 손실에 직면했다. 혼다는 올 1분기(1~3월) 약 2430억 엔 규모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혼다는 비용 절감을 위해 비행기 생산 계획을 축소하고 미국에서 처음으로 자발적인 퇴직을 제안할 예정이다.
이런 세계적 불황 속에서 주요 자동차 메이커들은 물론 각국 정부가 나서 새 시장 개척에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친환경차 개발에서 생존경쟁의 해법을 찾아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이용하겠다는 전략이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 ‘그린카’ 열풍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 잡고 있는 가운데, 미국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이후 친환경차에 대한 지원책이 발표되는 등 친환경차 개발에 대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1월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는 미국 메이커들이 친환경 전기차 등을 속속 선보이며 이 같은 흐름에 합류하고 있다.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주요 메이커들이 친환경차들을 다양하게 선보여 그린카 경연장을 방불케 했다.
특히 GM은 글로벌 대형 자동차 메이커로는 가장 이른 2010년에 글로벌 전기차 ‘시보레 볼트’를 양산, 판매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또한 LG화학에서 배터리 셀을 공급받고 자체적으로도 배터리 팩 공장을 세우겠다고 발표해 국내외의 눈길을 끌었다. 이 자리에서 릭 왜고너 회장은 “GM은 최첨단 배터리 설계, 개발, 생산 능력을 GM 핵심 역량으로 키워나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우리의 자원과 역량을 빠르게 집중시켜 왔다”고 말했다.
▲ 현대차의 준중형 모델들. | ||
스포츠카와 디젤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ℓ당 23㎞에 달하는 연비를 선보였다.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메이커들은 전기차보다는 하이브리드차 쪽에 집중하고 있다. 도요타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하이브리드차를 양산, 판매해 성과를 거둔 업체답게 지속적으로 하이브리드차 기술을 업그레이드 중이다.
올해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도 ‘프리우스’ 새 버전을 선보였다.국내 자동차산업의 선두주자인 현대자동차도 올 여름 아반떼 LPI 하이브리드차를 양산, 시장에 내놓는다. 이로써 현대차의 친환경차 양산화 꿈이 실현되는 셈이다.
현대차의 첫 양산형 그린카가 되는 이 모델은 LPG를 연료로 사용, 연비를 가솔린 차량 기준으로 환산해 21.3㎞/ℓ를 실현함으로써 기존 내연기관 모델에 비해 53%가량 연비를 향상시킬 계획이다.
이기상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개발실장(상무)은 “아반떼 하이브리드는 세계 최초로 리튬폴리머 전지를 탑재, 기존 전지와 비교해 성능은 동일하면서 원가는 절반으로 낮춘 획기적인 방식”이라며 “이는 하이브리드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도요타도 아직 적용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2010년에는 쏘나타급 중형 하이브리드차로 북미 그린카 시장의 문을 두드릴 계획이다. 기존 가솔린 모델보다 60∼70%가량 연비가 향상된 20㎞/ℓ 정도가 될 중형 하이브리드차로 저속 단계에서 내연기관의 도움 없이 모터만으로 차를 주행할 수 있는 ‘풀 하이브리드’ 방식을 채택, 본격적인 글로벌 그린카 경쟁 대열에 뛰어든다.
현대차는 하이브리드차의 양산을 위해 배터리 및 컨트롤러 등 대부분의 핵심 부품 개발을 마쳐 국산화에 성공하는 등 가격과 품질 면에서 충분한 시장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특히 현대차는 정밀 전자제어기술을 바탕으로 한 클러치 접합방식, 연비와 양산성을 동시에 향상시킬 수 있는 6단 변속기 채택 등 도요타 등의 경쟁업체와는 차별화된 기술을 적용할 방침이다.
이를 바탕으로 현대·기아차는 중장기적으로 2010년에 하이브리드 양산차 3만 대, 2018년에는 50만 대까지 생산을 늘릴 계획을 갖고 연구인력 및 조직 보강을 통해 그린카 시장에서 선두 업체로 도약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고 한다.
한편 지난해부터 글로벌 경기 불황과 고유가로 인해소형차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전통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던 중·대형차의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반면 경차를 포함한 소형차의 국내시장 판매 비중이 40%대로 올라섰다.
해외시장에서도 소형차의 판매비중이 높은 업체들이 선전하고 있다. 특히 미국시장에서 현대차는 올 3월 시장점유율이 4.8%로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판매대수 면에서도 GM(-42.5%)과 포드(-38.1%) 등 대형업체들이 두 자릿수 감소를 기록한 반면, 현대차는 1% 감소하는 데 그쳤다.
미국시장에서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린 주역은 소형차였다. 3월 액센트(국내명 베르나)는 미국시장서 5829대가 팔려 전년 동기대비 판매량이 48%나 증가했다.현대차는 수요가 급감하고 있는 선진국 판매 비중은 낮은 편이고 불황 속 인기차종인 소형차 생산 및 판매 비중은 높은 편이다.
경제 전반에 걸친 침체로 인한 단기적인 고통은 감수해야겠지만 이와 같은 환란이 현대차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1, 2차 세계 석유위기 때 일본 자동차 산업이 소형차종의 자체 경쟁력 강화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극복, 세계 자동차 산업의 선진국 대열에 올라섰던 바 있다.
실제로 현대자동차는 미국 빅3의 위기를 틈타 고연비, 고품질 및 고급화한 디자인을 갖춘 소형차 개발을 통해 소형차 경쟁력을 높이고 이번 위기를 기업의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고 있다. 현대차는 소형차 고객 공략을 강화하기 위해, 지난해 소형차인 베르나와 클릭에 동승석 및 사이드&커튼 에어백 등 안전사양을 전 트림에 확대 적용한 2009년형 베르나와 클릭을 출시, 소형차 상품 경쟁력을 강화시켰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지난 연말 서울 양재동 본사에서 열린 글로벌 R&D센터 회의에서 “최근의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영위기를 근본적인 기업 체질개선과 경쟁력 강화의 계기로 삼고 소형차 경쟁력을 키워 미래의 새로운 성장을 창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을 강조한 바 있다.
정 회장은 이날 “환경친화적인 차량 개발을 통해 미래시장을 선도하고 고연비, 고품질 및 고급화한 디자인을 갖춘 경쟁력 있는 소형차 개발을 한층 더 강화해 가야 한다”면서 “현재의 위기를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신흥시장을 공격적으로 개척해 시장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 회장은 특히 “20~30대 지향의 소형차는 활동성이 강한 젊은 소비자의 요구사항을 적극 반영해야 한다. 해외 디자인센터에서는 현지 실정에 맞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지속적으로 개발할 것”을 당부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고유가 영향으로 소형차로 수요가 이전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판매 추세”라며 “상대적으로 소형차 판매가 부진하던 우리나라도 판매구조에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고 현대차도 이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영업 전략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