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동부지검은 9월 9일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 A 전 부장의 사위 홍 아무개 씨(41)를 구속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홍 씨는 세계적인 음식 프랜차이즈 업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에게 거액을 투자받아 이를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홍 씨는 자신의 장인뿐 아니라 정·재계의 온갖 유력인사들의 이름까지 팔고 다니며 사기행각을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A 전 안기부장 사위의 사기행각 속으로 들어가 봤다.
홍아무개 씨(41)가 J 업체 한국지사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2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호주 국적의 변호사였던 홍 씨는 그해 초 한국으로 건너와 11월 처음으로 한국에 J 업체 지사를 만들었다. J 업체는 홍콩의 한 유명 영화배우가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설립해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프랜차이즈 업체다.
요식업계 측 관계자들에 따르면 J 업체가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업계의 반응은 상당했다고 한다. 사업설명회 등을 열면 투자를 하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상당수였을 정도로 높은 수익률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J 업체에서 근무했던 이 아무개 씨에 따르면 특히 홍 씨의 J 업체가 성공적인 출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운영방식이 아닌 특이한 구조로 운영됐던 덕이 컸다고 한다. 일반 요식업체들처럼 프랜차이즈 형태로 사업권을 개인에게 내 주는 것이 아니라, 투자자를 모집해 그 돈으로 홍 씨가 직접 지점을 개설하고 지점에서 나온 수익금을 가지고 투자금에 비례해 배당금을 주는 구조였다는 것이다.
이처럼 일대일 방식이 아니었던 탓에 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는 비록 가게가 한두 개밖에 없었지만 투자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이 씨에 따르면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프랜차이즈 운영으로 2006년 말까지만 해도 홍 씨의 사업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고 한다. 불과 4년 만에 서울 번화가를 중심으로 개설된 지점만 여덟 곳에 달했고, 원금을 보장해 주는 구조 덕에 이때까지만 해도 투자자들이 상당히 몰렸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J 업체는 배당금 형식으로 운영되는 구조와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운영자금에 문제를 겪기 시작했다. 특히 서울 일대의 일명 ‘알짜배기’ 지역에만 급격하게 가게수를 늘리다보니 오픈 과정에서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는 바람에 위기를 맞았다.
그러다보니 새로운 투자자들을 계속 끌어 모아 적자를 해결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2007년 J 업체를 퇴사한 이 씨는 “J 업체를 퇴사한 이후 회사의 부장 등 친분이 있던 사람들로부터 얘기를 들어보니 지난해 초부터 직원 급여가 밀리고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4월 J 업체는 실질적으로 부도를 맞았다.
그런데 홍 씨는 부도가 난 이후에도 계속해서 투자자를 모집하는 기이한 행각을 벌였다고 한다. 지난해 2월부터 10월경까지 이미 없어진 J 업체를 가지고 투자자들에게 사업설명회를 열고 투자유치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이때부터 홍 씨가 투자자를 모은 것은 무너진 업체를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순전히 돈을 사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사기행각을 벌였던 것. 실제로 검찰 수사 결과 홍 씨는 투자받은 돈의 상당부분을 주식투자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홍 씨가 투자했던 주식이 올해 초 상장폐지가 되면서 홍 씨는 투자했던 원금을 모두 날려버린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특이한 것은 J 업체가 이미 없어진 회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홍 씨의 투자유치 홍보가 성공했다는 점이다. “회사 측에 전화 한통만 하면 홍 씨의 사업에 문제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투자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홍 씨는 여섯 달 만에 5명의 투자자로부터 15억여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투자자들은 무얼 믿고 확인도 않고 홍 씨에게 ‘묻지마 투자’를 한 것일까. 실상은 이랬다. 홍 씨가 이때부터 전직 안기부장이었던 장인의 이름을 팔아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안기부의 전직 고위급 인사와 친인척 관계”라고 공공연히 떠들고 다녀 투자자들을 쉽게 모을 수 있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확인결과 홍 씨는 실제로 A 전 부장의 사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A 전 부장은 이른바 ‘북풍’ 사건으로 지난 DJ 정권 때 구속됐던 인물이다. 홍 씨는 98년경 A 전 부장의 장녀와 결혼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홍 씨의 부인은 자녀들과 함께 호주에서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홍 씨는 또 장인의 이름뿐만 아니라 유력 정·재계 인사들의 이름을 상당수 거론해가며 투자자들을 모집했기 때문에 이들은 아무런 의심 없이 투자를 했다는 후문이다. 홍 씨는 “장인인 A 전 부장을 통해 소개받은 고위층 인사들도 사업에 투자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사업이 상당한 수익성을 지닌 것처럼 위장한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검찰 수사결과 홍 씨가 투자자들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한 말은 모두 거짓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계좌추적 결과 홍 씨의 사업에 투자한 사람은 사기를 당했던 일반인 5명이 전부였다.
검찰에 따르면 홍 씨는 사업 초기에는 투자자들에게 정확한 날짜에 배당금을 나눠주는 등 깊은 신뢰감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수사 결과 홍 씨가 투자자들로부터 받았던 원금에서 일정액을 배당금인 것처럼 속여 건네줬던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입소문을 내 더 많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려 했던 것”이라고 전했다.
또 홍 씨는 배당금이 끊기고 피해자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오히려 “당신들 회사를 망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협박까지 해가며 고소를 막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 K 씨는 “지분 투자 과정에서 돈이 안 들어와 함께 찾아가 항의하자 장인의 이름을 대며 ‘당신 회사를 망하게 만들어 버리겠다’며 오히려 협박을 했다”고 밝혔다.
이런 홍 씨의 ‘만행’을 참다못한 피해자들은 8월 초 서울동부지검에 홍 씨를 고소했고, 결국 홍 씨는 ‘사기혐의’로 지난 8일 검찰에 구속됐다. 검찰은 홍 씨가 장인인 A 전 부장의 이름을 팔며 사기행각을 벌였던 점에 비춰 여죄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 중이라고 밝혔다.
김장환 기자 hwan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