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KT의 표삼수 부사장, 서종렬 전무, SK(주)의 권오룡 사외이사, 이훈규 사외이사(위부터 차례대로). | ||
지난 1월 KT의 새 CEO로 취임한 이석채 회장에겐 줄곧 ‘낙하산’이란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이상철-이용경-남중수 등 전직 사장들이 KT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들이었던 반면 이 회장은 정부관료 출신인 데다 KT 재직경험이 없다는 점이 결국 외압설을 낳은 것이다. 그런 이석채 KT 회장이 조직 체질개선 작업의 일환으로 경쟁업체 출신 인사 영입 카드를 뽑아들었다. 이 회장은 통합KT의 핵심 포스트가 될 자리에 표삼수 기술전략실장(부사장)과 서종렬 미디어본부장(전무) 같은 외부인사를 앉히며 KT 내부뿐만 아니라 업계 전반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표삼수 부사장은 삼성전자 시스템사업본부 개발담당 이사를 거쳐 현대정보기술과 우리금융정보시스템의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서종렬 전무는 통합KT의 최대 라이벌로 꼽히는 SK텔레콤에서 차세대무선인터넷사업추진단 사업전략담당 상무와 커머스사업본부장(상무) 등을 거쳤다. 서 전무는 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2분과에서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있다.
이렇게 이 회장이 취임 이후 외부인사 영입에 적극 나서자 ‘조직 내 만연한 KT 순혈주의 희석작업’이란 평이 뒤를 따르기도 했다.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영입인사들이 정보통신업계에서 쌓은 노하우를 흡수하는 동시에 통합조직으로 거듭나는 KT 조직 내 주도권 경쟁에서 ‘정통 KT맨’에게 휘둘리지 않겠다는 이 회장의 의지”로 평가했다.
이석채 회장의 KT가 영입한 주요 외부인사들의 또 다른 공통점은 ‘비 경기고 출신’이라는 점이다. KT는 지난 2001년 초부터 2008년 말까지 8년간 ‘KS(경기고-서울대) 천하’였다. KT 대표이사 사장이 이상철(전 정통부 장관, 2001년 1월~2002년 8월)-이용경(현 창조한국당 의원, 2002년 8월~2005년 8월)-남중수(2005년 8월~2008년 11월)로 이어지면서 조직 내 경기고 인맥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또한 이들은 모두 정통 KT맨이기도 하다.
반면 표 부사장과 서 전무는 각각 부산고-서울대, 경주고-영남대 출신이다. 이에 일각에선 “이 회장이 외부 수혈로 KS라인을 견제하려 하는 것”이라고 관측하기도 한다. 올 초 영입된 정성복 윤리경영실장(부사장)은 서울고-서울대 출신이다. 서울고검 검사 출신인 정 부사장은 영입되자마자 업무추진비로 골프를 친 직원 등의 내부비리를 적발하면서 ‘이석채 KT호’의 새로운 기강을 세우기도 했다.
KT-KTF 합병 성사로 SK텔레콤 성장전략에 대한 고민에 빠진 SK그룹은 최근 들어 정부기관이나 법조계 인사 영입에 공을 들였다. 지난 3월 13일 정기 주총을 통해 SK㈜는 권오룡 공주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했다. 권 교수는 행정자치부 제1차관과 중앙인사위원회 위원장을 거친 인물. SK에너지는 이훈규 법률사무소 다솔 대표변호사와 최명해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신규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이훈규 변호사는 대전지검과 인천지검 검사장을, 최명해 고문은 국세청 조사국장과 국세심판원장을 지냈다.
재계 관계자들은 SK의 관가 출신 인사 중용 배경을 주로 지주회사 전환 작업에서 찾는다. 지난 2007년 7월 지주회사제 전환을 선언한 SK는 현행법상 2년 안에 지주회사 요건을 갖춰야 해 오는 6월까지 관련 작업을 완료해야 한다. ‘SK C&C→SK㈜→SK텔레콤·SK네트웍스→SK C&C’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 해소가 우선과제. 당초 SK C&C를 상장시킨 뒤 계열사들이 보유한 SK C&C 지분을 팔아 순환 고리를 끊으려 했으나 주가 하락으로 상장이 미뤄진 상태다.
SK C&C가 기대만큼 높은 가격에 상장되면 SK텔레콤은 거액의 투자자금을 확보, KT-KTF 합병에 맞설 인수·합병(M&A) 등의 전략 수립이 용이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통합KT와 유무선 통합상품 경쟁에 대비한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 합병설이 줄곧 나돌았지만 정만원 사장이 나서서 합병설을 부인한 상태다.
현재 지주회사 요건 충족기한을 1년 더 늘리는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돼 있지만 여·야 힘겨루기 등의 여파로 일정이 미뤄져 6월 내 통과 전망이 불투명하다. 현행법상 SK가 6월까지 지주회사 전환 작업을 완료하지 못할 경우 기한 연장(2년까지 가능)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 심사를 거쳐야 한다.
만약 공정위에서 불허할 경우 지주회사 요건 충족을 위해 SK C&C 상장 없이 순환 고리를 끊어야 하는데, 이럴 경우 SK C&C 대주주인 SK텔레콤이 막대한 상장이익을 놓치게 된다. 지금 상황에서 무리하게 상장을 추진할 경우 SK텔레콤의 예상 이익은 당초 기대치에 못 미칠 전망이다. 결국 공정위 등 정부부처에 SK그룹의 사정을 얼마나 잘 이해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수 있는 셈이다.
이런 까닭에 입사 1년 만에 최태원 회장 최측근(비서실장)으로 자리 잡은 윤진원 부사장에게 많은 시선이 쏠렸다. 지난해 2월 SK C&C 윤리경영실장으로 영입됐다가 올 초 비서실장이 된 윤 부사장은 서울중앙지검에서 공정거래 관련 업무를 담당했던 부장검사 출신이다. SK C&C로 옮겨간 김신배 부회장 후임으로 SK텔레콤 대표이사직에 오른 정만원 사장이 관료 출신이란 점도 눈길을 끈다.
통신업계 경쟁에서 KT와 SK에 뒤져온 LG는 최근 들어 한국전력(한전) 출신 인사들 영입에 팔을 걷어붙였다. 인터넷업체 LG파워콤은 지난 3월 5일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장완성 한전 남서울본부 강남전력소 관리역을 경영지원담당 상무로, 김동휘 한전 그룹경영지원처장을 비상임이사로 선임했다. 한전 외자처장을 지낸 허진행 씨와 한전 남부발전사업단장을 역임한 신현재 씨는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LG파워콤이 신규 선임한 사내·외 등기임원 네 명 모두 한전 출신이다.
KT-KTF 합병이 성사되면서 업계엔 LG데이콤과 LG파워콤의 합병 추진설이 나돌고 있다. LG데이콤은 LG파워콤 지분 40.87%를 보유한 최대주주. 합병과정에서 2대주주인 한전(지분율 38.80%)의 승인 여부가 최대 관건이 될 전망이다. 두 회사의 합병이 이뤄지고 나면 LG텔레콤이 이를 흡수해 초대형 유무선 통신사업자로 거듭날 가능성도 거론되는 만큼 한전과의 우호적 관계 조성에 LG가 심혈을 기울일 법하다.
LG-한전 관계는 KT-KTF 합병 추진 과정에서 불거진 필수설비 논란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다. 필수설비란 각 지역 전화국(교환국)에서 가정까지 연결된 구리선, 광케이블 같은 통신주와 지하에 매설된 통신관로, 지상에 세워진 전주(전봇대)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통신업체가 각 가정에 초고속 인터넷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설비인 셈. 필수설비 중 통신주와 관로를 독점하고 있는 KT의 KTF 합병에 대해 SK텔레콤 등은 필수설비 분리 주장을 펼쳤다. SK텔레콤이 SK브로드밴드를 앞세워 유선시장을 공략하려면 KT가 꿰차고 있는 통신주와 관로 확보가 필수적이다. 이에 KT는 필수설비를 사유재산이라며 개방 반대의사를 피력해왔다.
그런데 최근 한나라당과 방송통신위원회가 KT와 한국전력, 지방자치단체 등이 보유한 통신 관련 필수설비 개방 의무화를 추진하고 나섰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SK브로드밴드 LG파워콤 등 후발 유선사업자들이 일정 대가를 치르고 KT와 한전 등이 보유해온 필수설비를 사용할 수 있다. LG파워콤은 한전이 보유한 필수설비(전주)를 사용하는 데 우선순위를 차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그동안 통신사업 경쟁에서 KT-KTF와 SK에 철저하게 밀려온 LG가 한전과의 파트너십 강화로 반격에 나설 수 있을지 업계의 시선이 쏠리는 중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