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재덕 주공 사장(왼쪽)과 이종상 토공 사장. 통합공사 자리에 누가 오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 ||
주공과 토공은 그동안 통합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서왔다. 지난해 10월 관련 법안이 국회에 상정된 이후 번번이 처리가 무산됐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결국 여야는 임시국회 본회의 마지막 날인 4월 30일 표결을 통해 극적으로 통합 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엔 통합에 반대하던 토공의 입장 변경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관측이다. 토공 노동조합(위원장 고봉환)은 표결 당일 ‘통합을 받아들인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주공과 토공은 국토해양부가 주도하는 ‘설립 사무국’에 참여해 통합공사(가칭 한국토지주택공사)의 기능, 조직, 사규, 정관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여기서 합의된 안은 국토해양부와 민간전문가 15인이 참여하는 ‘설립 위원회’가 확정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오는 10월 1일 주공과 토공이 합쳐진 초대형 공기업이 탄생한다. 통합공사의 자산 규모는 105조 원(주공 64조, 토공 41조 원)에 달하는데 이는 삼성그룹 174조 원과 한국전력공사 117조 원에 이어 재계 순위 3위에 해당한다.
이처럼 우여곡절 끝에 통합공사가 출범하게 됐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은 멀고 험난하기만 하다. 통합 추진 작업이 시작되기 전부터 토공과 주공 내부에서는 이번 결정을 놓고 온갖 억측이 흘러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상대방을 향해 비난도 서슴지 않는다. 하나로 합쳐지더라도 양측의 갈등이 해소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는 대목이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다른 문제들이야 토론과 대화 등을 통해 풀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쌓인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듯하다. 최우선적으로 양사 직원들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토공 내부에서는 사측과 노조 지도부를 향한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법안 통과가 확실시되자 마지못해 찬성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한 것으로 보인다.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직 반대하는 견해가 더 우세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안 통과 후 토공 건물을 뒤덮고 있던 통합 반대 현수막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일부 직원들 간에 실랑이가 벌이지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지금 토공 노조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번 결정을 비난하는 글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고 한다.
반면 통합에 찬성하던 주공은 한결 느긋한 분위기다. 주공 내부에서는 ‘이 여세를 몰아 통합 추진 논의에서 유리한 입지를 차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리고 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토공-정부 밀약설’이 제기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즉, 통합에 반대하는 토공을 달래기 위해 정부에서 당근을 줬다는 것. 주공의 한 직원은 “향후 통합 추진 과정에서 쟁점으로 될 것으로 보이는 사안들에 대해 정부가 토공 손을 들어줄 것이란 말이 파다하다. 결국 우리가 원하던 통합은 얻었지만 더 큰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에 대해 토공 측은 “그런 것은 전혀 없다. 정부와 국회의 결정을 존중해 따른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어찌 됐건 이제 주공과 토공은 통합공사를 놓고 ‘2라운드’를 벌이게 됐다. 양측은 구체적인 통합 논의를 진행하게 될 설립 사무국에 최정예 직원들을 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토공은 통합에 찬성한 만큼 주공 쪽에서 어느 정도 양보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그러나 주공은 토공에 비해 규모가 훨씬 크다는 것을 감안, ‘더 많은 것을 얻어야 한다’는 입장인 듯하다.
우선 구조조정 문제가 최우선 현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주공과 토공의 부채는 각각 51조 8281억 원과 33조 9244억 원이다. 양사 직원들을 합치면 7367명(주공 4385명, 토공 2982명)에 달한다. 주공과 토공이 벌이는 사업 중 상당수가 겹치고 있어 인력 등의 구조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이 과정에서 토공과 주공의 힘겨루기가 펼쳐질 전망이다. 그동안 토공이 통합에 반대했던 이유 중 하나도 주공과 합쳐질 경우 규모 면에서 열세에 있기 때문에 조직 장악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부서장급 인사에서 주공은 ‘인력 비율별 배분’을, 토공은 ‘일대일 배분’을 주장하고 있다.
새롭게 선임될 통합공사 사장 자리를 두고서도 비슷한 논리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찌감치 통합을 받아들이고 내부 설득 작업에 나선 이종상 토공 사장이 그 공로를 인정받아 이미 낙점됐다는 소문이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서울시 균형발전본부장 출신인 이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최재덕 주공 사장 역시 만만치 않다는 평이다. 건설교통부 차관 출신인 최 사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경제2분과 인수위원을 맡으면서 이 대통령의 신임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초대 통합공사 사장 자리는 토공보다 자산규모와 인력 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주공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도 최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본사 이전도 통합 논의의 ‘뜨거운 감자’다. 노무현 정부에서 추진한 지방 혁신도시 건설계획에 따라 2011년까지 주공은 경남 진주로, 토공은 전북 전주로 이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주공과 토공의 통합으로 본사는 전주와 진주 중 한 곳으로 가게 됐다. 이 때문에 진주와 전주는 통합공사 본사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물밑 경쟁을 펼치고 있다. 여기엔 이 지역구의 국회의원들과 유력인사들도 가세한 것으로 알려진다. 통합 과정에서 가장 치열한 공방이 예상되는 문제다.
정치권에서는 통합공사에 2개의 사업부를 만들어 주택사업부는 진주에, 토지사업부는 전주에 두자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지만 본사를 유치하지 못한 지자체의 반발 무마가 관건이다. 현재 전주는 본사를 유치하는 대신 조직과 인력의 20%만 가져오고 80%는 진주에 양보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한 상태다. 이에 대해 경남도청의 한 관계자는 “규모가 큰 주공이 오기로 돼 있는 진주에 통합공사의 본사가 오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도 인력 등은 양보할 수 있으나 본사만은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