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방미 경제사절단으로 함께 미국에 건너간 이건희(왼쪽서 세 번째), 정몽구(왼쪽서 다섯 번째) 회장 등과 조찬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방중 경제사절단의 면면과 규모는 일단 방미 때와 비슷한 수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지난 방미 때에는 한미수교 60주년이자, 박 대통령의 첫 해외순방이었다는 점에서 경제계가 적극 부응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렇다고 이번 방중의 의미를 그보다 낮춰볼 수도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있는 국면에서 국내 기업들의 돌파구는 세계 최대 시장인 중국일 수밖에 없다. 청와대로서도 중국이 최대 교역국인 만큼 이번 방중이 국내 기업들에게는 대중국 비즈니스를 활성화하는 기폭제가 되도록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5월 31일 현재 방중 경제사절단 구성문제는 청와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 정부 쪽과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단체간 협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방미 때에는 전경련이 중심이었지만, 이번 방중은 대한상의를 중심으로 경제사절단이 구성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방미 때 사상 최대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꾸려졌으나 중국이 우리나라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방중 경제사절단 규모는 방미 경제사절단 규모와 비슷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최우선 참여 대상은 중국에 대한 투자 규모가 크거나 장차 중국에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사업을 추진 중인 기업이다. 이 가운데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은 참여 쪽으로 협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박 대통령의 방미 때에도 수행했던 두 사람은 재계의 실질적인 대표로서 이번에도 중국 지도부와 경제계의 교류에서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사실 5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방중에는 대기업 회장 15명, 경제단체장 4명, 중소·중견기업 사장 14명, 금융인 3명 등 36명이 수행했다. 이건희, 정몽구 회장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 회장은 ‘삼성 특검’의 와중에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여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대신 수행했고, 정 회장은 비자금 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두고 있어 자진해 빠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방미를 기점으로 이 회장은 새 정부가 내세운 창조경제를 지원하기 위한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호응했다. 정 회장도 이미 융합형 인재육성과 일감 나누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발표한 덕분에 박 대통령에게서 모범사례로 거론된 바 있다. 재계의 선두가 박 대통령과의 ‘눈 맞추기’에 경쟁적으로 나선 이상 재계의 적극 부응 분위기는 이번 방중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하지만 방중 성과가 난제다. 그중에서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가장 큰 현안이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간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한-중 FTA가 비중 있게 다뤄지기를 한껏 기대하고 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은 최근 “우리는 기본적으로 박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비해 중국 방문에서 경제분야의 이슈가 더 비중 있게 다뤄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 수석은 특히 한-중 FTA에 대해 “지난해 협상 개시를 선언한 이후 1단계에서 5차 협상까지 했고 1단계에서 2단계로 넘어가는 걸 논의 중”이라며 “한-중 FTA의 방향이나 범위, 깊이 등에 대해 양측이 컨센서스를 완전히 이루지는 못해 의견 차이가 많이 있고, 그 부분을 조금 좁히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산업계와 농업계 등은 한-중 FTA에 이해가 상충될 수 있는 부분이 많아 경제사절단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 철강 산업의 경우 중국산 물품이 가격은 물론 기술 경쟁력까지 갖추면서 국내 산업의 피해를 우려하고 있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대중국 철강 교역이 2006년 적자로 전환된 후 고착화했다”며 “한-중 FTA 협상에서 합금철 등 전략적 보호가 필요한 품목은 우리 측 민감 품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중 FTA로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종은 농업이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15년 동안 약 43조 원의 손해가 예상된다는 보고서도 나와 있다.
더욱이 북한의 핵실험 등 정치 현안이 경제 현안보다 국내외의 관심을 더 끌 수 있는 상황도 걱정이다. 정치 의제에서 ‘빅뉴스’가 나오거나, 돌발 사건이 생길 경우 경제 의제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어 방중 경제사절단의 성과가 또 다시 묻히는 결과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이다. 국민 앞에 내놓을 성과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것은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경제사절단도 마찬가지다.
박웅채 언론인
그녀 관심 한몸에…‘필 받았다’
지난 5월 8일 방미 중 워싱턴에서 열린 경제사절단과의 조찬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최근 대기업들이 일감 몰아주기를 해소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진전된 방향으로 움직여 매우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정 회장을 대놓고 칭찬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정 회장에게 직접 빵을 권하는 등 각별히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박 대통령은 지난 4월 24일 미래창조과학부 업무보고 자리에서도 현대차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일감 나누기 모범사례로 언급한 바 있다.
정 회장이 이번 방중에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배경에 방미 중 받은 ‘느낌’이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박 대통령의 방미 수행 이후 한 달여 만에 이뤄지는 방중인 만큼 스케줄상 무리가 있지만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위해 선뜻 수행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겉으로는 중국 사업의 중요성 때문이라지만 ‘갑’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는 상황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것은 ‘을’ 입장에서 당연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정 회장으로서도 이번이 좋은 기회일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최근 연산 30만 대 규모의 중국 4공장 건설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초까지도 해외 생산능력 확충을 자제해 내실을 다지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과 달라졌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시장을 놓칠 수 없다는 판단이 선 것이다. 공장건설 계획에 대한 중국 측 인사들의 협조를 구하는데 이번 방중 수행은 절호의 기회인 셈이다. 현지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것은 박 대통령의 면을 세워주는 일도 된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