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와 거래하는 협력업체, 농어민 등이 지난달 28일 ‘유통악법 철폐’ 집회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대형마트 쪽에서 서울역 집회에 2명 나갈 것을 권고해왔습니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나가지 않을 수 없죠. 유통업 규제가 강화되면 협력업체도 타격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할 일이 산더미인데 직원이 몇 명이나 된다고 업무시간에 2명을 빼라니요.”
지난 28일 오전 서울역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나가던 한 대형마트 협력업체 직원의 하소연이다. 대형마트에 물품을 납품하는 농어민들과 중소 협력업체 관계자들, 대형마트의 임대 상인들이 중심이 된 이날 집회는 중소 상인들을 살리겠다는 취지로 시행한 유통법에 오히려 중소 상인들이 고사당하고 있음을 알리는 자리였다. 영업시간을 규제하고 의무휴업일을 지정하는 등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것이 결국 재래시장과 골목상인들을 살리기는커녕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과 중소기업만 죽이는 꼴이라는 얘기다.
집회 취지와 이들이 주장하는 바는 충분히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취지를 갖고 있는 집회의 배후에 대형 유통업체들이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예상된다. 앞서 협력업체의 하소연처럼 <일요신문> 취재 결과 대형 유통업체가 협력업체에 업체당 직원 2명씩 집회에 나갈 것을 요구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빅3’ 대형 유통업체에 전부 해당된다.
일부 협력업체의 경우 빅3의 요구에 따라 2명씩 모두 6명의 직원이 ‘차출’되기도 했다. 앞서의 협력업체 직원은 “한창 바쁠 때 6명의 직원을 빼기 힘들어 영업부 직원들 위주로 나왔다”고 털어놨다. 이 협력업체 영업부 직원은 12명. 절반이 집회에 차출된 것이다. 내보낼 직원이 없어 내근 여직원을 내보낸 업체도 적지 않다는 것이 협력업체들 얘기다.
이날 집회는 엄밀히 말해 그 성격상 대형마트 쪽에서 관여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물론 대형마트를 규제하는 유통법을 철폐하라는 주장이긴 하지만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농어민과 협력업체 등 ‘을’의 생존권에 관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주장이 대형마트 규제를 철폐하라는 것이기에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다. 집회 규모와 목소리가 크면 클수록 대형마트 입장에서는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날 집회에는 “대형마트 바이어들도 참여했다”는 것이 협력업체들의 말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대형 유통업체에서 협력업체에 직원 2명을 차출할 것을 직접 지시한 것은 아니다. 협력업체들에 ‘28일 오전 10시까지 업체당 2명씩 서울역으로 오라’는 이메일을 보낸 것은 대형 유통업체가 아니라 ‘벤더업체’다. 협력업체들은 대형마트에 직접 물품을 납품하기도 하지만 소량일 경우 벤더업체에 납품한다. 벤더업체는 여러 협력업체의 소량 물품을 받아 한꺼번에 대형마트에 공급하는 일을 한다. ‘다품종 소량 도매업’이다.
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는 “대형마트가 협력업체에 지시해야 할 사항이나 전달해야 할 일들을 종종 벤더업체가 대신 한다”며 “벤더업체의 전달사항은 곧 대형마트의 의사로 받아들여진다”고 털어놨다. 이렇게 보면 대형 유통업체로서는 직접 지시한 것이 아닌 터라 책임을 회피하면서 효과를 볼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대형 유통업체들은 펄쩍 뛰고 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협력업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 아니냐, 요즘 어떤 세상인데 대형 유통업체가 그런 지시를 하겠느냐”며 “그 같은 지시를 한 적도 없고 할 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롯데마트 관계자 역시 “우리로서는 집회가 있었는지조차 몰랐다”며 “그런 지시를 했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부인했다.
유통업계에서는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해가 생긴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한국유통생산자연합회에서 대형마트·SSM(기업형 슈퍼마켓)과 거래하는 농어민, 중소기업, 영세임대상인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한국체인스토어협회에 참여 협조 공문을 보냈고, 체인스토어협회는 이를 대형마트 3사와 SSM 4사에 내려 보냈던 것. 대형 유통업체들은 이를 또 MD(머천다이저)와 바이어들에 내려 보냈고 MD와 바이어들은 벤더업체와 협력업체에 알렸는데 최종 단계에서 뜻이 변질됐거나 오해가 생겼다는 것이다.
오해가 생겼든 개입하지 않았든, 최종 단계에서 일부 협력업체들은 대형 유통업체의 강요로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