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KT&G 사옥. | ||
오비맥주를 놓고 롯데와 외국계 사모펀드들이 치열한 입찰 경쟁을 벌이던 지난 2월 중순 KT&G에서는 곽영균 사장을 비롯한 고위 임원들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KT&G는 오비맥주 인수전에 뛰어들기로 의견을 모았고 그 후 실무 작업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회의장에서는 “담배를 팔아 번 돈으로 주류업체를 인수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뒤늦게 참여해봤자 승리 가능성이 별로 없다”는 반대 견해도 나왔지만 “민영화된 지가 6년이 넘었는데 더 이상 눈치 보지 말고 수익 극대화를 위해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KT&G는 지난 3월 13일에 열린 주주총회에서 ‘맥주 위스키 소주 등 주류제품 및 부산물의 제조 가공 판매’를 사업목적에 추가하기도 했다.
결국 오비맥주는 KKR이 차지했지만 KT&G의 참여는 재계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동안 담배·인삼을 주력으로 삼아 보수적인 경영스타일을 고집하던 KT&G가 영역확대를 위한 신호탄을 쏘아올린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KT&G는 공식적으로 “논의된 바 없다”며 부인했지만 내부의 한 관계자는 “첫술에 배부를 순 없는 것 아니냐. 앞으로 진행될 M&A에서 KT&G의 이름을 자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첫 M&A 도전은 비록 실패로 돌아갔지만 주류 업계에서는 ‘KT&G가 향후 KKR로부터 오비맥주를 재매입할 것’이란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오비맥주 M&A 과정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롯데와 AB인베브가 내세우는 가격차가 심해 협상 도중 양측이 감정싸움을 벌일 정도로 사이가 틀어졌지만 KT&G와는 끝까지 좋은 분위기였던 것으로 안다. KKR이 되팔 경우 우선협상권을 가지고 있는 AB인베브가 KT&G에 오비맥주를 넘길 가능성이 있다”고 귀띔했다.
KT&G의 사업 확장은 비단 주류업에 국한되는 것만은 아닌 듯하다.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36개의 새로운 사업 목적을 정관에 추가한 것. 여기에는 금융·보험을 비롯해 건설 영화 출판 교육 게임 미용 화장품 브랜드사업 등 다양한 분야가 포함됐다. KT&G는 “불확실한 기업환경 변화에 따른 기업가치 창출 기반 강화 필요시를 대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KT&G가 각종 M&A에 참여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러한 KT&G의 모습은 롯데그룹과 견줄 수 있을 것 같다. 롯데는 M&A 물건이 나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자천타천으로 이름이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이는 롯데가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룹을 물려받을 것이 확실시되는 ‘황태자’ 신동빈 부회장이 M&A를 통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KT&G는 자금만 풍부한 것이 아니라 M&A에 대한 의지 역시 남다른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KT&G는 민영화된 이후 호시탐탐 사업 규모를 확장하려고 시도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여전히 공기업적 성격이 짙을 뿐 아니라 담배 사업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정부의 반대로 번번이 수포로 돌아갔다는 전언이다. 그러나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명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분위기는 달라졌다고 한다. 지난해 KT&G는 내부에 M&A를 전담하는 TF팀을 신설하고 사전 준비 작업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그 첫 작품이 오비맥주 인수전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풍부한 현금유동성과 사업 확장에 대한 각별한 의지로 인해 재계에서는 KT&G가 앞으로 치러질 M&A에서 돌풍을 일으킬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M&A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담배라는 안정적인 수익원을 통해 롯데 못지않은 현금을 가지고 있는 KT&G가 본격적으로 M&A에 뛰어들면 재계 판도가 달라질 것으로 본다”면서 “다만 M&A에는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데 이를 뒷받침할 인력 확보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KT&G도 이 부분을 공감하고 현재 M&A 전문가 스카우트를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김원용 이화여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임명한 것도 ‘M&A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김 교수는 지난 대선에서 전략홍보기획조정회의 일원으로 이명박 당시 대통령 후보에게 여론조사를 직접 보고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는 지난 1996년 이 대통령이 종로구에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 때 선거 자문을 해주며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이명박 대선후보 선거 캠프에 몸담았던 한 인사는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김 교수는 이 대통령이 신임하는 최측근 중 한 명으로 분류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KT&G 관계자는 “정상적인 절차를 거쳐 임명됐다. 정치적인 것과는 관련이 없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그러나 정치적인 고려는 국내 M&A에서 승리를 위한 또 다른 전제 조건이 되기도 한다. 특히 굵직굵직한 매물이 나온 M&A일수록 더욱 그렇다. 보통 인수전이 끝나고 정치 관련 각종 의혹이 불거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동안 민영화됐으면서도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던 KT&G로서는 이러한 정치적 고려의 필요성을 더욱 뼈저리게 느꼈을 수도 있다. 어찌 됐건 KT&G는 현 정권의 유력인사를 사외이사로 선임하면서 든든한 원군을 얻은 셈이다.
한편 KT&G 측은 M&A과 관련한 여러 관측에 대해 “최근 일부에서 KT&G의 OB맥주 인수 참여 소문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면서 “지난해 중반부터 IB(투자은행)으로부터 OB맥주 인수에 대한 제안은 있었지만 회사 상황을 고려할 때 적합지 않다고 판단, 인수는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KT&G 측은 또 “KT&G는 앞으로 상당 기간 M&A 계획이 없다. 이는 인수자금 및 주주이익 등 여러 제반 사항을 고려한 결과”라며 “정관상 사업 목적에 포함된 ‘주류제품의 제조 및 판매’는 담배사업의 한계로 향후 장기적 안목에서 사업다각화 가능성의 대비 차원에서 추가된 다양한 목적사업의 하나일 뿐, 단기적 인수 목적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