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이 역사적인 메이저리그 첫 완봉승을 따냈다. 류현진은 29일(이하 한국시간)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2013 메이저리그 LA 에인절스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9이닝 2피안타 6탈삼진 무사사구 완봉승을 따내며 시즌 6승 달성에 성공했다. 2피안타는 데뷔 후 한 경기 최소 피안타 기록이었으며, 데뷔전이었던 샌프란시스코전 이후 처음으로 무사사구 경기도 펼쳤다. 한국인 코리안 메이저리거로는 통산 다섯 번째 완봉승이었으며(박찬호 3회, 김선우 1회), 지난 2006년 박찬호 이후 6년 만의 쾌거였다. 하지만 2006년 당시 박찬호의 완봉승은 강우 콜드게임으로 인한 6이닝 완봉승으로, 9이닝 완봉승은 2005년의 김선우 이후 처음이었다. 평균자책점을 2.89까지 끌어내린 류현진은 자신이 목표로 내건 두 자리 수 승수와 2점대 평균자책점에 한 발 더 다가섰다. 피안타율 .225, WHIP를 1.13까지 끌어내리며 세부 성적에서도 수준급 대열에 합류했다. 시즌 6승 달성과 완봉승뿐만 아니라 류현진의 이날 투구가 더욱 반가웠던 점은, 그를 둘러싼 많은 의문점들을 단번에 날려버린 호투였기 때문이었다.
류현진이 한국인 메이저리거로는 박찬호, 김선우에 이어 세 번째로 완봉승을 따냈다. 홍순국 순스포츠기자
류현진을 향한 가장 큰 물음표는 체력 문제였다. 하지만 아직까지 원정 경기에서의 시차로 인한 컨디션 조절의 어려움을 제외하면 체력 문제에서 별다른 이상 징후를 보이지 않고 있다. 류현진은 11경기에서 8번 100구 이상의 투구수를 기록했으며, 29일 현재 내셔널리그 전체 투수 가운데 10번째로 많은 공을 던지고 있다(총 1117구).
류현진은 지난 애틀랜타 원정에서부터 6회 이후 직구 구속이 감소하는 증상을 보였다. 심지어 5승째를 따낸 밀워키 전 그의 직구 평균구속은 89마일(143.2km)로, 데뷔 후 가장 낮은 수치였다. 이에 체력 문제가 도마에 오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류현진은 LA 에인절스 전에서 올 시즌 가장 빠른 공을 던지며 이 같은 우려가 기우에 불과했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에인절스전 류현진의 직구 평균 구속은 91.9마일(147.9km)로, 이전까지 가장 빠른 구속을 선보였던 콜로라도전과 같은 수치를 기록했다. 이날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입성 후 처음으로 스피드건에 95마일을 찍었는데, 에인절스전 류현진의 직구 최고구속은 95.4마일(153.km)로 한국 무대에서의 최고 구속과 같은 수준이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류현진의 95마일 직구가 경기 막판인 8회에 나왔다는 점이었다. 류현진은 8회초 선두타자인 하위 켄드릭을 상대로 7구와 8구째 연속 95마일 직구를 꽂아 넣었다. 이날 경기 류현진의 90구와 91구째 공이었다. 류현진은 이후에도 4번의 투구에서 94마일을 기록했으며, 마지막 타자였던 마이크 트라웃에게 던진 2개의 공 역시 94마일이었다.
경기 막판 류현진이 보여준 강속구에 더욱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한국 무대에서와 같이 경기 상황 혹은 타순에 따른 체력 안배를 하지 않고 투구에 임하고 있다는 점이다. 류현진 스스로도 이날 경기를 마친 뒤 “따로 체력적인 안배를 하면서 던지지는 않았다”고 밝힌 바 있다. 체력적인 문제는 앞으로도 그가 부진할 때마다 끊임없이 거론될 것이며, 류현진이 계속해서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까지 그의 체력은 ‘이상 없음’ 이다.
완봉승을 거둔 후 동료들에게 인사하는 류현진. 팀내 친화력이 아주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언급했듯 류현진은 에인절스 전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후 가장 빠른 공을 뿌렸다. 류현진의 이날 직구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직구가 구속뿐만 아니라 제구까지 동반된 공이었기 때문이었다.
류현진의 이날 직구 스트라이크 비율은 75.4%로 11경기 가운데 가장 높았다. 지난 18일 애틀랜타 전의 55.4%와 비교하면 무려 20% 높은 수치였다. 이날 류현진은 2개의 안타를 모두 직구를 구사하다 허용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 전까지 류현진의 직구 피안타율은 .292였으나, 에인절스전 그의 직구 피안타율은 .133에 불과했다. 류현진의 직구 제구가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 무대에서의 그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미국 진출 이후 류현진에게 가장 아쉬운 점이 바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투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타자들의 수준 차이는 차치하고라도, 류현진 본인의 직구 최고 구속이 좀처럼 올라오지 않는 부분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평균 구속은 미국 진출 이후가 더 높게 나오고 있다). 류현진은 매 경기 투구패턴을 달리하며 경기에 임하고 있다. 이는 상대의 분석을 역으로 공략한다는 전략도 있지만, 그의 직구 구위가 생각만큼 올라오지 않아 커브와 슬라이더의 구사율을 높인 부분도 작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직구 구위에 자신감을 가진 류현진은 에인절스전에서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투구로 상대를 몰아붙였다.
에인절스전 류현진의 직구 구사율은 61.1%로 올 시즌 들어 가장 높았다. 그리고 직구 구위가 좋아지면서 자연스레 그의 주무기인 체인지업의 위력도 배가됐는데, 류현진은 27개의 아웃카운트 가운데 22개를 직구와 체인지업으로 잡아냈다. 특히 에인절스 타자들이 류현진의 체인지업을 공략한 타구들은 단 하나도 내야를 벗어나지 못했다. 삼진 7개 역시 직구 4개, 체인지업 3개로 잡아낸 것이었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자 메이저리그 데뷔 후 최고의 피칭이 나온 것이다.
포수 A.J.엘리스와 완봉승의 기쁨을 나누고 있는 류현진. AP/연합뉴스
류현진의 지난 등판이 더욱 주목받았던 것은 시범경기 포함 에인절스와 벌인 세 번째 맞대결이었기 때문이었다. 밀워키전 역시 시범경기 두 차례 등판에 이어 지난 경기가 세 번째 대결이었지만, 시범경기 당시 밀워키는 주전들을 대거 제외한 채 경기에 임했었다.
하지만 에인절스는 이날 류현진이 시범경기 마지막 등판에 상대한 선수 가운데 7명을 선발 라인업에 올렸다. 마이크 트라웃, 마크 트럼보, 크리스 아이아네타와는 벌써 세 번째 맞대결이었다. 그럼에도 류현진은 상대 타선을 9이닝 동안 2피안타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데뷔 후 최고의 투구 내용을 선보였다.
류현진에 대한 현지 평가가 나날이 좋아지는 것은 직구, 체인지업 이외에도 슬라이더와 커브까지 모든 구종을 자유자재로 던질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모습은 메이저리그 전체 투수뿐만 아니라 신인 선수에게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장점이다. 실제 류현진은 시범경기 등판과는 또 다른 투구패턴으로 에인절스 타자들을 요리했다.
모든 신인 투수들에게 희소성은 최고의 무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에 희소성은 신인 선수들에게 자신의 한계를 가늠할 중요한 열쇠로도 작용하기 마련이다. 류현진은 희소성의 지속 가능 시간을 늘려줄 다양성을 함께 갖추고 있는 선수다. 세 번째 상대한 에인절스전에서의 호투가 류현진에게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김중겸 순스포츠 기자
‘실버슬러거’ 향해 쏴라
벌써부터 팬들의 관심은 류현진이 실버슬러거 수상이 가능하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실버 슬러거는 매년 각 포지션에서 최고의 공격력을 보여준 선수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골드글러브가 수비력만을 평가하여 시상한다면 실버슬러거는 공격력만을 평가해 수상자를 결정한다.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는 내셔널리그에서는 투수 포지션에서도 수상자를 뽑고 있다.
6개의 안타를 기록하고 있는 류현진과 최다 안타 공동 1위를 달리고 있는 선수는 클리프 리(필라델피아)와 팀 허드슨(애틀랜타)이다. 리는 타율에서도 .316을 기록하며 10타석 기준 투수 부문 3위에 올라 있으며, 볼넷도 2개나 골라내며 출루율 .350을 기록하고 있다. 대학시절까지 투수와 타자를 병행했던 허드슨도 .286의 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1홈런 3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허드슨이 기록한 홈런은 그의 통산 200승 경기에서 나와 더욱 주목을 끌기도 했다.
타일러 챗우드(콜로라도)와 잭 그레인키(LA 다저스)도 뜨거운 방망이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두 선수는 나란히 5할 타율(10타수 5안타)을 기록하며 투수 부문 타율 1위에 올라있으며, 타석에서의 명성이 남다른 요바니 가야르도(밀워키)는 투수 가운데 유일하게 2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올해도 그만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지난 10년간 실버슬러거를 수상한 투수들의 평균 성적은 타율 .260 2.8홈런 11타점이다(류현진 .250 무홈런 2타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지난 10차례의 수상자 모두 최소 1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냈다는 점이다. 올 시즌 홈런을 기록한 투수는 모두 10명. 이미 밀어치는 타격으로 우익수 키를 두 차례나 넘긴 바 있는 류현진이 담장마저 넘긴다면, 실버슬러거 수상을 위한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추는 셈이다.
김중겸 순스포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