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대 한상률 전 청장,16대 전군표 전 청장,15대 이주성 전 청장(왼쪽부터)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박연차 게이트’의 핵심 사안 중 하나인 세무조사 무마로비 의혹이 보여주는 것처럼 국세청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그리 높지 않다. 국세청은 지난 6일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물론 당시 세무조사를 지휘했던 라인도 모조리 수사 선상에 올랐다. 미국에 가 있는 한상률 전 청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머지않았다. 이에 정부 여당은 국세청 전반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정부가 국세청장을 임명하지 못하고 골치 아파하는 것도 실은 국세청 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맥이 닿아 있다는 관측이다.
국세청 내부 인사를 앉히자니 최근 세 명의 청장이 잇달아 비리 혐의를 받은 일이 되풀이될까 두렵고, 외부 인사를 앉히자니 국세청 내부 반발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의 한 인사는 “국세청장 공백이 긴 것은 국세청 개혁 적임자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직 국세청장들의 잇단 비리에서 드러났듯이 수장이 아랫사람들로부터 상납을 받는, 말이 안 되는 구조가 아직 잔재해 있다. 한 명 정도라면 개인비리로 여길 수 있지만 잇달아 일어난다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인사의 말처럼 적잖은 정·관계 인사들은 국세청의 상납 관행 잔재를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다. 자정 노력을 기울여온 상당수 국세청 사람들은 억울한 심정이겠지만 이러한 부패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다.
실제로 15대 이주성 전 청장은 19억 원짜리 아파트를 친지의 처남 명의로 받았다가 구속됐고, 16대 전군표 전 청장은 취임 이후 부하직원들로부터 상납을 받는 등 다달이 뇌물을 챙기다 현직 청장으로는 처음으로 구속됐다. 17대 한상률 전 청장은 전군표 전 청장에 대한 그림 상납 의혹과 이명박 정부 인사들에 대한 로비 의혹으로 사퇴했다. 뿐만 아니라 역대 17명의 국세청장 가운데 절반이 넘는 9명이 비리에 연루돼 퇴진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대부분의 부처의 비리가 위에서 받아서 아래에 내려주는 구조였다면 국세청은 아래에서 받아서 위에 상납하는 구조였다는 데 문제가 있다”면서 “위에서 받는 구조면 개혁이 상대적으로 쉽게 이뤄질 수 있는 데 반해 아래서 받는 구조는 적은 액수에 넓게 퍼져 있는 것이어서 개혁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이러한 구조를 혁파하려면 내부보다는 외부 인사가 적합한데 이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기 때문에 국세청장 인사는 6월 개각 때까지 미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앞의 정치권 인사는 “외부인사가 국세청장을 맡으면 국세청 개혁을 이루는 데 적임이겠지만 국세청은 다른 부처에 비해 상당히 끈끈한 조직력을 가진 곳이다. 과거 외부에서 온 청장이 내리는 지시는 회의 때만 듣고, 청장이 나가면 다시 자기들끼리 회의해서 일을 했다는 소문이 관가에 파다했을 정도다. 국세청은 배타성이 강한 조직이라 강력한 카리스마 없이는 개혁을 이뤄내기 어렵다. 국세청장 임명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도 “국세청 내부나 일각에서는 청장대행을 맡고 있는 ‘허병익 차장을 승진시키지 않겠느냐’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허 차장을 승진시키려고 했으면 벌써 시켰지 지금까지 청장대행으로 놔두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부 인사로는 국세청 개혁이 생각대로 이뤄지기 어렵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면서 “다만 적절한 외부 인사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다고 봐야 한다. 또 내부 승진을 바라는 국세청 분위기도 걸림돌”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장 인선과 관련, 정부에서 일부 인사에 대한 검증을 했으나 갑자기 해당 인사에 대한 투서가 몰리면서 골머리를 앓았다는 이야기가 관가에서 설왕설래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외부 인사 중 한 명이 국세청장 물망에 오르자 이 인사에 대한 각종 투서가 몰려들었다는 말을 들었다. 투서가 너무 많아 청와대 관계자가 해당 인사에게 직접 ‘왜 이렇게 투서가 많이 들어오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전부 해명이 되기는 했지만 이를 두고 말이 많았다. 사정이 이러니 어찌 보면 임명이 계속 늦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한 고위인사는 “최근 영국 국세청을 방문했는데 100년 넘는 건물에 기둥만 있을 뿐 벽이 없었다. 외부에서 영입한 국세청장 두 명이 와서 벽을 허물어 직원들이 하는 일을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개혁한 것”이라면서 “그런데 영국 국세청장이 나를 보더니 ‘한국 국세청은 비리가 많죠’라며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전임 외부 영입 국세청장들이 어떻게 영국 국세청을 개혁했는지 설명했다. 아주 민망해서 혼이 났다”고 전하기도 했다.
이준석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