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회장 | ||
일부 언론보도와 업계 일각에 나도는 SK의 은행업 진출설과 관련한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SK가 하나금융지주와 하나은행에서 조만간 별도법인으로 분사할 카드사업부문의 지분 참여를 논의 중이며 하나금융과 손잡고 우리은행 지분 인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동안 통신과 에너지를 주력으로 삼아온 SK가 포트폴리오 확대 차원에서 금융업에 본격 진출한다는 것이다.
우선 SK가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과 사업교류를 하게 될지 주목된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5월 22일 ‘하나금융은 오는 8월 하나은행에서 분사할 하나카드 지분 49%를 SK그룹에 넘기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하나금융 측이 최근 통신 유통 물류 등 타 업종과 교류를 통한 경쟁력 강화 방침을 밝힌 터라 통신강자 SK와의 합작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SK그룹이 지난 2003년 외환카드 인수를 시도했다가 고배를 마신 전력이 있다는 점에서 신용카드사업 진출 여부는 큰 관심을 끈다.
그러나 당사자인 SK와 하나금융은 “사실무근”이라며 펄쩍 뛴다. SK 측은 “카드사업과 관련해 하나금융과 논의 중인 것은 맞지만 지분율 같은 세부적인 조율은 전혀 오가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하나금융 측도 “관계당국에 카드사업 허가 신청서를 낸 것은 맞지만 새로 만들 카드회사와 관련해 SK와 구체적 논의를 주고받은 일은 없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SK-하나금융의 사업 제휴 관측을 넘어 아예 두 회사가 타 은행 지분 인수에 나설 것이란 전망까지 등장했다. SK와 하나금융의 타깃으로 지목받은 대상은 우리은행이다. 최근 국책은행인 산업은행 민영화 작업이 급물살을 타면서 예금보험공사가 최대주주(지분율 72.97%)로 있는 우리금융에 SK가 눈독을 들일 법하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가정은 최근 국회에서 논의 중인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는 전제하에서만 성립이 가능하다. 여당에서 추진 중인 ‘금융지주회사의 일반자회사 소유 허용’ 안에 대해 야당에선 금융사와 비금융사 간 지분구조가 복잡하게 엉켜 있는 삼성의 금융지주회사 전환을 용이하게 하는 ‘삼성특혜법’이라며 비판 목소리를 높이는 중이다. 반면 ‘산업자본의 은행지주회사 지분보유 한도 4%를 9%로 상향 조정한다’는 안에 대해선 이미 여야 간 공감대가 형성돼 재계의 기대감을 부풀리고 있다.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 보유한도가 확대될 경우 SK가 우리은행 지분 인수에 나설 것이란 관측에 대해 SK 측은 “은행업에 관심 없다”며 “거기에 돈 쓸 바엔 통신과 에너지에 더 투자할 것”이라 못 박았다. SK그룹 관계자는 “법이 개정돼도 지분 보유한도가 9%밖에 안 되는데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SK의 투자파트너로 거론된 하나금융 측도 “사실무근”이라며 “SK와 (은행) 관련 내용을 협의한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인수대상으로 지목된 우리금융 측도 “SK와 하나금융이 함께 카드사업을 할 것이란 소문이 점점 부풀려지다 보니 은행 이야기까지 나온 것 같다”며 “(SK의 지분 인수) 관련한 이야기를 접한 것이 없다”고 밝혔다.
SK의 은행 지분 인수설이 나돌면서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의 주가가 급등세를 보이기도 했지만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지난 5월 19일 한국투자증권은 ‘SK와 하나금융의 사업 제휴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있지만 우리금융 지분 인수까지 확대해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내용의 분석을 내놓았다. 앞서 SK 관계자의 말처럼 금융지주회사법이 개정돼도 산업자본의 지분보유한도가 9%로 제한되는데 이는 경영권을 행사할 만한 지분율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금융권과 재계 일각에선 국내 대표적인 금융지주회사들의 최대주주 지분율이 모두 10% 이하라는 점을 들어 ‘우호지분 포섭 여부에 따라 경영권 행사도 가능할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실제로 공시에 따르면 현재 KB금융의 최대주주는 지분 6.33%를 보유한 국민연금공단이다. 신한금융에선 프랑스 금융자본 BNP파리바그룹이 지분율 8.13%로 최대주주에 올라있다. 하나금융 최대주주인 싱가포르 투자회사 안젤리카인베스트먼트PTE의 지분율은 9.06%다.
SK가 과연 은행 지분 인수를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 출혈을 감수할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SK는 지금 KT-KTF 합병법인 출범을 앞두고 ‘통신대전’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우리금융지주의 주가 1만 2150원(5월 21일 종가)을 기준으로 환산해보면 우리금융 지분 9%를 사들이는 데 약 9000억 원이 소요된다. 여기에 하나금융과의 카드사업 제휴를 위한 지분 매입비용까지 고려한다면 단순 계산만으로도 1조 원이 넘는 금액이 필요한 셈.
이와 관련해 SK텔레콤 등이 조만간 거액을 벌어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SK C&C의 상장 재추진을 두고 하는 말이다. SK C&C는 지난 5월 15일 한국거래소에 주권상장예비심사청구서를 접수했다. SK C&C는 지난해 상장을 추진했지만 증시 악화로 SK의 공모희망가액(주당 11만 5000~13만 2000원)에 상장을 할 수 없게 돼 지금까지 미뤄왔다.
이미 지주회사제 전환을 선언한 SK는 ‘SK C&C→SK㈜→SK텔레콤·SK네트웍스→SK C&C’의 순환출자 고리를 끊어 지주사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SK C&C를 상장시켜 SK텔레콤과 SK네트웍스가 SK C&C 지분을 매각, 상장이익을 취하는 동시에 순환 고리도 끊는 방법을 택한 셈. 정상적으로 진행될 경우 심사와 승인 등을 거쳐 오는 9월 중엔 상장이 이뤄질 전망이다.
SK C&C는 지난 2월 27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당 액면가액을 500원에서 200원으로 액면분할하기로 결의했다. 이로써 SK텔레콤의 SK C&C 보유주식 수는 종전의 600만 주에서 1500만 주로, SK네트웍스의 주식 수는 300만 주에서 750만 주로 각각 늘어났다.
비상장법인인 관계로 액면분할에 따른 주당 가치 하락은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상장을 앞두고 주식 수를 늘려 SK텔레콤이나 SK네트웍스가 누릴 상장차익을 극대화시키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만약 SK C&C 상장 공모가가 6만 6000원 이상만 되면 SK텔레콤의 보유주식 평가액이 1조 원에 이르게 된다.
SK C&C는 상장을 앞두고 회사 가치를 높이려는 듯 지난 5월 15일 SK E&S 주식 245만 주(지분율 32.45%)를 신규 취득했다. 그동안 SK텔레콤과 SK네트웍스가 SK C&C 상장으로 장착하게 될 ‘실탄’이 M&A에 투입될 것으로 관측돼 왔다. 때문에 SK C&C 상장작업 재개와 비슷한 시점에 불거진 SK의 은행업 진출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난 2월 최태원 회장이 보유하고 있던 SK㈜ 주식의 대부분을 매각한 점도 은행업 진출설과 맞물려 다시 조명 받고 있다. SK㈜는 그룹의 새 지주사가 될 회사지만 최태원 회장이 지분 44.5%를 보유한 SK C&C가 SK㈜를 지배하고 있는 만큼 최 회장의 그룹 장악엔 큰 문제가 없다. 최 회장의 주식 매각대금은 약 1000억 원. 아직까지 SK㈜ 지분 매각대금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최 회장이 혹시 은행 대주주명부에 이름을 올리려는 건 아닌지, 호사가들의 입이 바쁘게 움직이는 중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